|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parkeb () 날 짜 (Date): 1998년 7월 7일 화요일 오전 09시 35분 41초 제 목(Title): [축구] 재밌는 두 언론의 기사.. 스포츠서울(SS) 98/07/03 제 목: 월드컵 리포트-무책임한 한국언론 월드컵 경기를 참관하면서 제일 곤혹스러울 때가 아시아기자들을 만날 때 다.선수시절의 모습을 기억해서인지 경기장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하 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이 문제다. "한국 축구관계자들은 몇명이나 대회를 보고 있느냐?" "한국 기자들은 모두 돌아갔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축구관계자들에 대한 질문은 나를 포함해 몇명이 남아서 결승전까지 경기 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받아 넘기면 되지만 기자들에 관한 질문은 정말 대답 하기 곤란하다.일간지의 기자중에선 뻔히 스포츠서울 취재기자 한명만이 남 아서 대회를 취재하고 있는 줄 알고 있는데 거짓말을 하자니 종교인의 양심 이 허락하질 않는다. 단 한명이라니..그것도 다음 월드컵대회를 개최할 나라의 취재기자가 단 한명뿐이라는 사실은 정말 나를 슬프게 한다.IMF체제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의 발전은 더욱 없는 것이 아닐까.프랑스월드컵의 경제적 대회운영이나 경기장시설,교통,통신,숙 박시설 등 좁은 소견으로도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닐 텐데 한국의 탈락과 함께 돌아가버린 한국취재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한국이 툭하면 경쟁 상대국으로 삼는 일본의 현실을 보면 더욱 가슴이 답 답해진다.2002년월드컵의 공동개최국인 일본의 취재진은 신문방송기자들을 합쳐 모두 280여명 정도가 결승전까지 취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ID카드를 발급받지 않은 기자 150여명이 돌아가고도 그 정도 숫자라고 하니 일본기자 들을 대하는 것 자체가 쑥쓰러워질 뿐이다.일본 뿐만 아니라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도 못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권 국가들의 취재진도 많게는 30여명 정 도가 결승전까지 취재할 예정이라고 하니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궁색한 대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경제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인도 네시아 취재진이 18명에 달하며 태국에서 파견된 취재진도 16명이라니 차라 리 쥐구멍을 찾고 싶다. 물론 취재진의 숫자가 그 나라의 축구문화를 절대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 닐 것이다.하지만 한 나라의 축구발전을 위해선 축구계의 노력뿐만 아니라 잘못된 부문을 지적하고 옳은 길로 방향을 제시하는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으 로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FIFA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예우하는 부문이 바로 매스컴이다. 스 포츠와 매스컴은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적 발전관계임을 이번 월 드컵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한국이 멕시코전에서 역전패를 당하고 네 덜란드전에서 참패를 당할때 한국축구를 질타하던 한국의 취재기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끝** 일간스포츠(DS) 98/07/06 제 목: [기자의 눈] '축구가 내 인생'이라는 기술위원의 언행 오지랍 넓어서일까. 국내의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한달 보름에 걸친 프랑스 월드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어찌보면 선택받은 이들이다. 최순호씨(36)도 그 하나. 기술위원이란 자격으로 특전을 누리면서도 남들은 조예선서 탈락한 대표팀과 함께 돌아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정을 애써 외면한 채 자기만은 남아 월드컵을 즐긴다는 생각에 어줍잖은 언행으로 선택받은 자의 오만을 뽐내고 있다. 월드컵 현장에 남았다는 자만 탓일까. 그는 세계 수준에 뒤처진 한국축구 기술보단 2002년 월드컵에 대한 걱정이 앞선 모양이다. 엄연히 2002년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20여명에 가까운 대규모 조사단을 파견해 프랑스 월드컵 개폐막식 진행, 경기장 시설과 운영, 안전, 수송, FIFA 집행위원회 및 총회 개최 등 세부사항 등을 꼼꼼히 체크하고 있는데도 "현장서 한 수 배우라"며 엉뚱한 현장 진단을 늘어놓았다. 나라 걱정 혼자 다하는 격인가. 최순호씨의 기술위원 자격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2회 월드컵 출전이란 화려한 경력 등 서류상 자격엔 하자없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숙히 숨겨진 어설픈 스타 의식과 "남들 하는 일 나도 한다"는 "미 투(Me Too)"식의 남 따라하기 행동은 그를 늘 그늘지게 해왔다. 선수 시절을 되돌아보자. 83년 LA올림픽 1차예선전에 대비한 박종환 대표팀시절, 태릉선수촌을 탈주한 5인방에 "나도 한자리"라며 합류했고 178일동안 족쇄가 채워졌다. 이로 인해 그는 번민에 찬 햄릿처럼 일련의 파문에 휩싸였다. 부진한 성적 탓에 굴복과 은퇴를 오가다가 91시즌 청주 연고의 럭키금성으로 이적했다. 이후 "축구계 미아"가 될 뻔한 사건서 그의 외진 성격을 엿볼 수있었다. 91년 말 럭키금성서 내몰려 포항체철로 돌아갔지만 1년 반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또다른 사례. 95년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던 청주서 기초의원에 출마, 낙선했다. "내길은 오직 축구"라는 평소 소신과는 어긋난 외도였다. 이후 그는 자주 축구판아닌 곳을 기웃거렸다. 왜였을까. 그의 굴절된 선수생활을 잘알고 있는 축구인들은 유달리 잿밥에 관심있었던 탓이라고들 한다. 축구협회는 그러나 올 "조중연 체제"를 새로 출범시키면서 말 그대로 실업자인 그를 기술위원으로 선택했다. 분명 잘못된 선택인줄을 알면서도. ------------------------------- @두개의 재밌는 기사를 올립니다. 첫번째 것은 현재 축협 기술위원인 최순호씨가 쓴 글입니다. 두번째 것은 체육부 차장대우인 김경환씨가 쓴 글입니다. 아무리 봐도 언론은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