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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parkeb ()
날 짜 (Date): 1998년 6월 21일 일요일 오후 12시 30분 38초
제 목(Title): [축구] 또 하나의 글..


#26007   한상우   (340032  )
[축구] 0 : 5 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는 것       06/21 12:24   110 line

0 : 5 라는 스코어가 말해 주는 것.


차마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눈을 띌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TV로 보는것도 괴로운데, 이
역만리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은 어땠을까요? 그 생각을 하니 도
저히 TV에서 눈을 띌 수가 없었습니다.

5:0. 지난 54년 스위스대회때 헝가리, 터키에 0-9, 0-7로 진 이
후의 최다 실점경기였습니다. 네덜란드는 왜 네덜란드가 우승후
보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한국은 한국축구의 한계를 극명
하게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전술, 체력, 개인기술, 그리고 근성
까지 한 두어수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 여실했습니다.

전반전은 대단히 훌륭하게 싸웠습니다.  비록 두골을 먹기는 했
지만 네덜란드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살렸으며, 간간히 날카로운
역습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습니다. 후
반전에 들어와서 세번째 골을 먹은 후, 정신적인 면에서 완전히
붕괴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찌보면  이번 월드컵에 진출한 32개국중에 한국팀만큼 불운한
팀도 없을 것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조배정에서부터 시작해
서 무리한 평가전으로 인한 주전 스트라이커의 부상과 병앓이.
강화된 벌칙 규정의 첫번째 희생양이 되어서 한 경기를 완전 날
려버리고, 이번 네덜란드전에서도 이를 너무 의식해서 한국팀의
특유한 컬러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새색시 축구하듯이 조심스레 
경기를 하다가 대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과연 이 5:0 이라는 경기결과가 감독의 무능, 혹은 선수들의 부
진으로 인해서 나온, 정상적인 스코어가 아닌 나와서는 안될 스
코어였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징조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지난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앙리에게 헤트트릭을 당하면서 4:2로 졌을
때, 브라질과 10:3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깨졌을 때,  아니 월
드컵 지역예선에서 일본에게 2:0으로 허물어질 때 이미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근원적으로 월드컵이라는 것을 개최한 나라에서
'주경기장 지어서 뭐하냐? 그냥 대충 있는 것에다 페인트칠이나
해서 쓰지'라는 소리 자체가 나왔을 때, 그리고 그 구장 - 명색
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다는 구장에서 잔디에 파란색 페인트를
칠하고 경기를 가지면서도 '보기 좋으면 됐지 뭐.' 하며 아무말
없이 지나갔을 때에도 이 결과는 예견되었습니다.

이제 한국축구는 그 거품을 완전히 벗어버렸습니다.  쉽게 말해
아시아에서나 통하던 '안되면 되게하라' 식의 근성과 깡으로 선
배들이 이룩해 놓은 것들은 이제 모두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경
기가 끝난 후에 짜장면 한그릇에 목을 매는, '지면 현해탄에 빠
져 죽겠다'라는 식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축구에서 그러한 근성축구가 없어지고,  아니 더이상 그 깡
축구가 통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과연 무
었을 했습니까?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때,  아무리 히트상품이고 잘 만든 소프트
웨어라도 때가 지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계
속해서 새 기능을 개발하고 업그레이드를 시키면서 시장성과 상
품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도태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옛날에 잘
나가던 프로그램인데..." 라고 해봤자 아무도 귀를 귀울여 주지
않습니다. 한국 축구는 과연 업그레이드를 했습니까? "예전에는
그래도 날랐는데 말야..."  라며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영화
를 회상하며 볕드는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의 넋두리 말고 한 일
이 과연무었이 있습니까? 

청소년 축구가 브라질에 10:3으로 깨질 때, 모든 축구계와 언론
들이 발칵 뒤집혀졌습니다.  "한국 축구 이래선 안된다." "이대
로 나가다간 더이상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 며 나오던 수많
은 발전안, 장기투자계획, 사흘이 멀다하고 개최되던 공청회들.
과연 이중에 감독 갈아치고, 찬스 몇번 놓친 선수들을 역적으로
몰아붙인 이외에 한 일이 무었이 있습니까?  하다못해 축구협회
의 담당자나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시늉이라도 했었습니까?

이제 그 선수들이 2002년 월드컵을 맞게 됩니다. 지금같은 상황
에서 그들이 지금의 선배들 이상의 실력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골백번 떠들었던 시설얘기뿐만이 아닙니다. 파벌
싸움에 학연별로 파워 게임만 벌이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는 협회와 '왜 그런 추측성 기사를 싣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럼
안보면 될꺼아뇨!'라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언론. 그리고 잘하면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가 한번 실수하면 매국노,  배신자가 되어
버리고, 우리 축구선수가 못하는 것은 절대 용서못하면서 내 자
식은 절대 축구선수를 안시키는,  앞에서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
는 자랑스런 태극전사라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오죽 공부를 못
했으면 공이나 차고 다녔겠어.' 라는 분위기 아래에서 과연 무
었을 바랍니까? 월드컵 1승? 16강 진출? 혹시 아직도 매년 나오
는 수능 전국수석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구요, 과외는 안했구
요. 학원같은데도 안다니고 TV과외만 보면서 예습, 복습에만 철
저했어요.'라는 인터뷰를 믿으십니까?

제가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번 대패로 인해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나마 겨우 국민들 사이에 이루어 졌던 축구에 대한 관심이 썰
물빠지듯 사라져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며, 예전에 언제나 그래왔
듯이 차범근 감독 단 한명을 희생양으로 몰아서 모든 책임을 떠
넘기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유야무야하다가 영원히 일어
설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지나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그·래·왔·던·것·처·럼·요.


이제 마지막 벨기에전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어차피 16강의 꿈
이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남은 것은"아시아의 대표선수"로서의
자부심입니다. 더이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습니다.
'월드컵 32장의 티켓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를 대표
해서 여기에 서 있다.'라는 것만 보여주기만을 바랍니다.
 



From Dol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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