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chang (장상현) 날 짜 (Date): 1997년08월12일(화) 21시12분05초 KDT 제 목(Title): 김건우선수에 대한 기억 김건우 선수는 아마 선동렬선수보다 한해 정도 후배였을 겁니다. 선린상고를 당대 최고의 스타 박노준과 함께 이끌었었죠. 80년대 초반에 아마 81년쯤이 아닐까.. 투타에서 최고를 자랑하던 박노준과 김건우가 한팀에 있었고, 고교선수로는 최초로 노히트 노런을 했던(바로 제 모교가 당했습니다.) 선동렬이 졸업하여, 당연 선린상고의 우승이 기대되었는데. 천재 유격수 유중일과, 막강한 성준 문병권의 투수진을 자랑하던 경북고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당시 사람들 말이 현재 박노준이 더 잘하는데 타고난 재주는 김건우가 낫다. 또 사람들이 말이 김건우의 공은 무언가 다른것이 있다고들 했습니다. 김건우가 고3 그리고 아마 선동렬이 대 1학년일 때로 기억하는데 두선수가 미국서 청소년 야구대회에 나란히 출전하여, 미국을 연달아 노히트 노런으로 막은 쾌거를 이뤘죠. (어쩌면 선동렬 선수는 1안타를 내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건우 선수는 확실한 노히트 노런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선발을 노히트 노런으로 잡을 수 있는 투수가 한국에 두명이나 있었다는 것이 당시에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고, 미국팀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죠. 김건우 선수의 고등학교 때 약점은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 었죠. 하지만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 당시에는 에이스가 전게임을 완투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무식한 고교야구에서.. (부산고의 김종석 선수는 5연속 완투승에 타격, 타점 홈런상까지 독차지 하고, 조계현 선수도 4경기인가 완투를 했죠. 후일 이게 금지 되었지만.) 오히려 완투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건우 선수는 자신의 어깨를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된것이죠. 그들의 고교 마지막 경기에서 전날 김건우선수가 완투승을 거두자. 다음날 당연히 박노준 선수가 선발이 될 줄 알았죠, 그런데 예상을 깨고 김건우 선수가 선발로 출장했습니다. 감독의 생각이 김건우선수의 상태가 좋으니, 그가 잘 던질때까지 계속 던지게 하고, 흔들리면 박노준으로 바꾸어 경기를 끝내자는 것이었는데, 그만 경기 초반 홈에 뛰어들던 박노준 선수의 발목이 360도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어서. 막판에 힘이 떨어진 김건우선수가 점수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대학에서는 투수로 전념하던 박노준선수에 비해, 체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던 김건우선수는 주로 타자로 활동했습니다. 물론 당시 한양대가 투수가 무척 풍부했던 이유도 있었고, 김건우 선수가 4번 타자로 최강의 타력을 보여 주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두 선수가 프로로 들어 왔을때, 이미 박노준 선수는 어깨가 많이 상해 있었는지 투수로는 별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타자로 전향했고 김건우 선수는 투수로 등장 대단한 기록인 신인 18승을 거두고 선동렬과 어깨를 나란히하여 한국 최고 투수의 길로 접어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불행히도 그해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지고, 잇단 부상으로 재기에 실패하여 이제는 잊혀진 선수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프로 데뷔할때까지 선동렬 선수와 함께 정상을 다투던 김선수는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능력을 펼쳐보이지 못한 불운한 선수로 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장상현 e-mail : schang@phys.ufl.edu http://phyp.snu.ac.kr/~schang (korea) http://www.phys.ufl.edu/~schang (US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