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05월21일(수) 09시15분16초 KDT 제 목(Title): [일요신문]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 발행일 : 97/05/25 제 목 : <일본현지 긴급리포트>선동열, 나고야의 태양으로 다시 떴다 ‘번쩍’ 섬광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표창, 그리고 칼바람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쓰러지는 열도의 내로라 하는 사무라 이들…. 지난해 갖은 수모를 겪으며 ‘지는 태양’으로 용도 폐기될 뻔했던 선동열. 그가 다시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올랐 다. 11세이브, 게다가 구원연승. 그 신화의 발자취를 나고야돔 으로부터 생생하게 지상중계한다. 이 정말 대단한데. 1백50㎞나 나왔다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아니 정말이야. 어제 TV 안 봤어? 그저께는 1백51㎞나 나 왔다니까.” “걔가 지금 몇살인데? 서른여섯?” “뭐 그쯤 되겠지. 하여튼 그 나이에 대단해. 옛날 곽원치(지 난 88년 주니치에서 맹활약했던 대만출신 투수)만 한가벼.” 새벽 해산물 도매시장이 열리는 일본 나고야역 앞 중앙시장 의 5월12일 늦은 아침. 새벽 바쁜 일과가 끝나고 느지막이 아 침식사를 하고 가볍게 커피 한잔 하러 들어온 시장사람들의 청량한 목소리가 기자의 귓전을 때렸다. 전날 선동열이 11세 이브를 올린 것이 야구와 그리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화 젯거리임이 분명했다. 선동열을 취재하기 위해 이곳 나고야에 온 기자 역시 선동열 의 11세이브에 들떠 친한 일본인 야구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아침식사를 같이하고 막 커피숍에 들어섰다가 주워들은 대 화다. 이미 아침을 들면서 식당 아줌마들로부터 입에 침을 튀겨가 며 들었던 선동열 얘기를 식당을 나선 지 채 5분도 안돼 또 듣게 되니 마치 한국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 분이 들 정도다. 하기는 취재차 나고야돔 근처에 다다르면 도 중에 길거리나 전철 안에서 ‘손’(일본사람들은 ‘선’ 발음 을 못한다)이라는 말을 듣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나고야돔 구장을 찾는 주니치팬들은 골수팬도 많지만 초현대 식 구장을 관광삼아 한번쯤 와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이 제는 나고야돔 구경 다음으로 ‘선동열의 강속구를 보고 싶 어’ 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올시즌 현재 일본프로야구 무대에서 1백50㎞의 쾌속 직구를 뿌리는 투수가 선동열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진귀한 구경거리를 즐기는 일본사람들로서는 입맛이 당길 만 도 하다. 11세이브를 올리던 지난 11일 선동열이 등판했을 때는 최고 조의 열기를 몸 전체로 느낄 수 있었다. 주니치가 히로시마에 3대2로 뒤지고 있던 8회말이었다. 게임 도 종반에 접어들어 거의 패색이 짙어가고 있을 즈음 주니치 거포 다이호의 극적인 역전 3점포가 터져 단박에 5대3으로 전 세를 뒤집었다. 9회초 히로시마의 마지막 공격이 돌아오자 이미 분위기가 고 조된 나고야돔 스탠드의 팬들은 일시에 일어나 “손(선)!”을 연호하면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주니치 덕아웃을 향한 이 들의 함성과 박수는 결국 호시노 감독에게 ‘선동열을 등판시 키라’는 무언의 압력이나 마찬가지. 모처럼 찾아온 돔구장인 데다 선동열의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볼 수만 있다면 일부러 비싼 돈 들여 돔구장을 찾아온 보람이 배가되는 셈이니까. 이처럼 지난해 ‘지는 태양’으로 전락했던 선동열이 올해 들어 나고야의 진정한 수호신으로 떠오르면서 보수적이며 조 용한 나고야 사람들에게 서서히 열기를 불어넣는, 좀처럼 식 지 않는 용광로로 뜨겁게 부각돼가고 있다. 전날 같은 히로시마로부터 기념비적인 10세이브를 올리며 센 트럴리그 전구단을 상대로 세이브를 올린 뒤 구장내 단상에 올라 장내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선동열을 향한 스탠드의 열 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지난해 나고야팬들에게 너무 부진한 모습만 보여드려 죄송 합니다. 이제는 정말 멋진 피칭을 선사할 테니 많이 사랑해주 십시오”라는 선동열의 말이 통역을 통해 장내에 방송되자 늦 은 시각까지 귀가하지 않고 남아 선동열의 멘트에 귀를 쫑긋 하고 있던 관중들은 일제히 두손을 번쩍 치켜올리며 “손(선 )!”을 연호했다. 일부 백네트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은 선동열 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돌려세우려 목청을 높이느라 야단이 었다. 지난해엔 개막전의 구원실패에서 시작해 줄곧 얻어맞기 일쑤 였고 시즌 초반인 4월20일 팔꿈치 부상으로 재활군에 떨어졌 다가 다시 1군에 복귀하기까지 무려 한달여를 기다려야 했다. 5월29일 복귀한 뒤에도 여전히 두들겨맞았던 선동열. ‘한국 의 국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아, 한국야구가 고작 이 정도였던가” 하는 탄식이 절로 쏟아지기도 했던 한해였다. 그러더니 시즌 막판에 요미우리와 우승다툼을 치열하게 벌이 던 8월 말 다시 2군행 명령이 떨어졌다. 계속 감추고 있던 감 기가 도져 악화되는 바람에 컨디션 유지를 우려한 선동열이 트레이너에게 말을 건넸다가 단박 괘씸죄에 걸려 호시노 감독 을 화나게 만든 탓이었다. 선동열의 실전 컴백은 그뒤로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호시노 감독의 “선동열 없이 우승전 선에 나선다”는 고집스런 방침에 따라서였다. 나고야에서 재활군 코치와 홀로 투구폼 교정과 체력훈련에 참여, 고독한 시즌 막판을 보내고 가을캠프에 참가했다가 오 른발목에 염증이 생겨 그것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등 지난해엔 막판까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고 나서 선동열은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다른 보통 선 수와 다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야구에 철저하게 젖어 재 출발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고 2년째인 올해 2월 초 실천에 옮겼다. 나고야구장 캠프에 이어 오키나와 캠프에서 조금의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체력훈련이면 체력훈련, 피칭이면 피칭, 물불 안 가리고 시키는 대로, 또 해야 할 모든 것을 다했다. 무엇보다 선동열을 참지 못하게 한 것은 자신으로 인해 실추 된 한국프로야구의 현주소였다. 한국의 대표라는 각오로, 또 그런 국내팬들의 성원을 잔뜩 등에 업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 선 이국땅 일본을 찾았던 선동열이 아니던가. 자존심을 반드 시 되찾고 말겠다며 입술을 깨무는 각오가 없었다면 선동열은 아마 도중에 도망치듯 귀국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선동열은 캠프에서부터 시작된 시범경기에만 무려 9경 기나 등판했다. 천하의 선동열이 한국에서 과연 시범경기 때 그토록 진지하게 많이 던져본 적이 있었던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막에 앞서 실전에 자꾸 등판해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호시노 감독의 충고를 머리숙여 받아들인 것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배수진의 각오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힘겨운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찾아오는 법. 선동열의 직구가 살아 들어가기 시작하고 주무기 슬라이더가 점점 날카로워지 면서 호시노 감독은 시즌에 들어가기 직전 “막판에 승리의 패턴을 만들 수 있어 다행”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선동열의 부활을 어렴풋이 예견해주는 장면이었다. 4월4일 개막전에서 폭투를 하긴 했지만 홈커버에 성공, 운좋 게 첫 세이브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5월11일까지 무려 11세이 브째 단연 군계일학이다. 일본에 내로라 하는 특급 마무리 투 수들도 선동열의 페이스 앞에서 주눅이 들었을 정도다. 11세이브의 인터뷰 때 일본의 한 기자가 “일본에서는 매년 5월 둘째주 일요일(5월11일)이 어머니날로 돼 있어 카네이션 을 어머니에게 달아드리고 작은 선물도 하는데 선상은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셔서…”라는 질문을 던졌다. 물론 지난해 2 월 캠프 때 돌아가신 선동열의 어머니를 염두에 두고 던진 질 문이었다. 선동열은 잠시 표정이 처연해지더니 “한국에서는 5월8일이 어버이날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10세이브를 올리고 구단으 로부터 받은 상금 봉투를 어머니 사진 앞에 바쳤다”고 대답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 돌봐주시고 있는 덕분이라고 본다”고 덧붙이고는 그대로 기자실을 빠져나갔다. 가장 가까 운 사람이었던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채 삭일 새도 없이 줄곧 부진에 빠졌던 지난해의 선동열. 하소연할 곳조차 제대로 없 었던 외로운 고난의 하루하루를 그 누가 알아주기나 했겠는 가. 하지만 한국의 국보답게 모든 형극을 헤쳐나와 의연하게 일본프로야구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우뚝서 있는 모습이 늠름 하다. 8연속 세이브. 과거 한국에서와 같은 위용을 되찾은 선동열 이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지난해의 빚을 이제 막 갚기 시 작했으니 말이다. 한국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그를 노리는 수 많은 열도의 사무라이(타자)들을 거꾸러뜨리고 일본의 최고기 록을 하나씩 깨나가야 할 것이다. 연속경기 세이브, 시즌 최다 세이브 등 관련된 기록을 모두 ‘선동열’이라는 이름 세글자 로 바꿔나가야 한다. 선동열의 올시즌 최대목표는 주니치를 우승으로 이끄는 일이 다. 주니치는 곽원치라는 대만 출신 투수의 어깨를 등받이삼 아 지난 88년 팀창단 이래 네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 선동열은 당시 곽원치와 같은 뜨거운 성원을 받고 있 다. 나고야팬들이 그토록 선동열에 열광하는 것도 바로 10년 이 넘게 돌아오지 않는 주니치 우승에 대한 바람 때문이다. 선동열의 구원왕 달성과 거기에 맞물린 주니치 우승. 그것은 선동열의 부활을 몇십배 빛나게 할 것이다. 지금 나고야는 선 동열 열기로 용광로가 돼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