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Leisure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05월17일(토) 13시08분50초 KDT
제 목(Title): [해태] 임창용 스토리


[경향신문]

  -‘SUN’잇는 ‘호랑이 수
호신’-

   95년 3월 어느날이었다.

   연습장에 들어섰다. 사흘만이
었다. 선배들이 못마땅한 듯 힐
끗 쳐다보았다. 조마조마한 마음
으로 슬금슬금 유니폼을 갈아입
었다.

   김성근 2군감독이 다가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너 같은 놈 필요없어. 가버
려』

   그러고는 휙 고개를 돌려 저
쪽으로 가버렸다. 순식간의 일이
었다.

   「감독 말대로 정말 가버린다
면…」

   이 자리를 피한다면 야구인생
은 끝장이었다. 아득해졌다. 감
독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꼭 그
래야 할 것 같았다.

   『감독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연습이 끝나고 흩어질 때까지
김감독은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
다. 저녁때 감독이 묵고 있던 시
티호텔로 찾아갔다. 감독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감독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어린 마음에도 이러지
않으면 두고 두고 후회할 것 같
았다. 기약없이 서 있으려니 갖
가지 생각이 다 났다.

   돌이켜보면 참 한심한 나날들
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야구
를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은 싸움
질만하고 「땡땡이」를 잘 치는
「문제꼬마」 때문에 골치를 앓
았다. 마침 야구팀이 생기자 선
생님은 그 문제꼬마를 야구팀에
밀어넣었다. 「공부는 안되니 운
동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선생
님의 뜻이었다.

   말썽꾸러기는 야구에 제법 소
질이 있었는지 동성중에 스카우
트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
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방학때 원없이 놀기 위해」 야
구를 그만뒀다.

   화순중에 다시 스카우트되기
까지 6개월을 놀았다. 그같은 「
농땡이」 기질은 진흥중으로 전
학하고 진흥고를 졸업한 뒤까지
도 계속됐다.

   94년말 계약금 3천만원을 받
고 해태에 입단했지만 마찬가지
였다. 3개월동안 신나게 놀았다.
같이 어울렸던 친구는 입단동기
생인 ㄴ선수와 이용훈이었다. ㄴ
선수는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9
5년 초에는 얼마나 연습을 빼먹
었던지 한달 월급 1백만원을 고
스란히 벌금으로 바친 적도 있었
다.

   『들어와 봐』

   기약없이 서 있은지 3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문이 열렸다. 김
감독은 말썽만 피우던 새까만 후
배를 그제야 받아들였다.

   『창용아, 우리 눈 딱감고 2
년만 해보자』

   김감독은 사이드암이면서도
구속 140㎞를 넘나드는 임창용의
성장가능성을 이미 읽고 있었다.
다만 부족한 제구력과 정신자세
가 문제였다. 그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내동댕이치기
」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방황을 끝낸 임창용은 비로소
프로선수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 95년시즌 동안 14게임에 나와
2패를 당했다. 일단은 패전처리
투수로 뛰었지만 팀내에서는 「
진흙속의 진주」로 여겨졌다.

   96시즌엔 중간계투요원으로
나서 7승7패를 마크, 성장 가능
성을 확인시켰다. 지난 동계시즌
은 임창용이 「해태 수호신」으
로 탈바꿈한 계기가 됐다.

   치명적인 약점을 이때 완전히
고쳤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상대
타자들은 임창용의 투구모습만
봐도 커브인지 직구인지 다 알았
다. 팔이 사이드암으로 나오면
직구, 스리쿼터나 언더핸드로 나
오면 커브였다. 코칭스태프는 동
계훈련 내내 임창용의 폼을 고정
시키느라 땀깨나 흘렸다.

   폼이 교정됐고 호랑이는 날개
를 달았다.

   97시즌. 사이드암이지만 공을
던지는 순간 손목을 채는 능력이
빼어나 최고시속 147㎞의 스피드
가 나왔다. 거기에 좌우코너를
콕콕 찌르는 커브가 타자들의 혼
을 뺐다. 직구인가 싶은데 타자
앞에서 싱커처럼 휙휙 휘어들어
가니 속수무책이었다.

   세이브포인트를 차곡차곡 쌓
아갔다. 굴곡 많았던 과거를 상
징하던 「김밥」 「제비」 「걸
레」 「숭구리당당」등 갖가지
별명들이 어느덧 사라졌다.

   대신 「선창용」이라는 별명
이 붙었다. 프로야구의 국보(國
寶)라는 선동열의 「선」과 임창
용의 「창용」을 합친, 그로서는
꿈의 별명이었다.

   친구가 그냥 좋아 친구가 만
나자면 글러브를 내팽개치고 달
려갔던 말썽꾸러기 임창용. 이제
는 야구가 재미있어 죽겠다고 말
한다. 비록 휴대폰과 「삐삐」를
신주모시듯 하고 머리에 「젤」
을 바르고 다니지만 이제 제 할
일만은 확실하게 할줄 아는 진정
한 신세대가 된 것이다.

  /이기환기자/

발행일97년 05월 17일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