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Quixote (방랑소년) 날 짜 (Date): 1996년09월19일(목) 03시30분18초 KDT 제 목(Title): 노모 히데오와 박동희의 비극의 역사... 비록 노모는 생애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등 지금 메이저리그, 즉 내셔널리그 아메리칸 리그 통털어서 Prime 10 안에 드는 최고의 투수중한명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걸 지켜보는 노모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박동희의 기분은 어떨까 궁금하다. 박동희와 노모. 둘은 아마야구에서 각기 자신의 나라를 대표했던 대표팀의 에이스 투수였다. 아니, 둘은 그전부터 라이벌이 될 운명을 지니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박동희의 이름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릴기회가 찾아왔었다. 봉황대기. 박동희는 그 대회에서 드디어 박동희는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었다. 봉황대기 5승무패. 모두다 완봉승아니면 7-8회까지 무실점. 결국 박동희는 소속팀을 봉황대기에서 우승시켰고 자신은 5승무패에 방어률 0라는 엄청난 대기록을 세우면서 MVP, 최우수 투수상을 휩쓸었다. 올시즌은 백차승이란 투수가 봉황대기에서 4승에 1점대후반의 방어률로 미국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았던거에 비하면 박동희의 그당시의 기록은 백차승의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다. 한편 일본에서는? 똑같은 80년대 중반. 일본 고등학교 야구선수라면 꿈에서라도 한번쯤은 등판을 한다는 고시엔대회. 그 대회는 또한명의 스타를 배출해냈다. 그의 이름은 노모 히데오. 총 전일본 3,000개의 야구팀이 쿤, 켄, 시, 도 의 피튀기는 예선전을 거친팀들끼리 맞붙는 고시엔대회. 지는팀들은 통곡을하고 가고 시골팀들은 흙이라도 퍼간다는 그 대회. "Ima adarashi nantsuga hajimaru" 란 구호에 걸맞게 고시엔대회는 숱한 야구의 스타들을 배출해냈었다. 그렇게 해서 배출된 두나라의 스타들은 꼭 한번은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이었다... -쫌있다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