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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Param)
날 짜 (Date): 2007년 1월 25일 목요일 오후 10시 40분 21초
제 목(Title): 펌/ 미들스브러와 코리아의 인연 


미들스브러와 코리아의 인연 - 축구장의 로맨스
  
 
[2007년 01월 14일 16시 18분] 
이동국의 미들스브러 이적설이 축구팬들을 살짝 흥분시키고 있다. 아직 그 
진위나 성사 가능성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가게 된다면 기존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충분히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내게 이동국의 
미들스브러 행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건 아마 1966년 월드컵 북한 
대표팀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1966년 7월, 영국 북동부의 공업도시 미들스브러(Middlesbrough). 그 해 여름, 
이 도시는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코리아가 있었다. 
그것도, 적성국가로 분류되던 노쓰 코리아(North Korea). 

1966년 영국 월드컵 본선에는 주최국 잉글랜드를 포함해 모두 16개국이 
출전했다. 이들은 4개팀씩 4개조로 나뉘어 7개 도시(런던, 버밍험, 맨체스터, 
리버풀, 세필드, 선더랜드, 미들스브러)에서 조별 리그를 치렀다. 이 중 
미들스브러는 4조에 속한 팀들의 경기가 주로 열렸다. 4조에는 강호들이 
즐비했다. 지금도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불리는 레프 야신(Yashin)이 버틴 
소련(USSR), 이탈리아 축구의 레전드 중 한명인 산드로 마졸라(Mazzola), 
리베라(Rivera) 등을 앞세운 이탈리아, 전 대회인 62년 월드컵 3위에 빛나는 
남미의 강호 칠레. 이런 팀들과 한 조에 속한 북한은 당연히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더군다나 북한은 (당시 FIFA가 아프리카-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을 통합시킨 것에 반발한) 아프리카 팀들의 무더기 기권, 북한에 질 것을 
우려한 남한의 불참 등으로 인해 비교적 쉽게 예선을 통과한 팀이었다. 물론 
당시 전력상 아시아 최강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보다 더 아시아 
축구에 관심이 없던 당시 세계축구 강호들에게 북한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했다.

여하튼, 4조에 속한 팀들이 치른 예선 6경기 중 3경기는 선더랜드, 3경기는 
미들스브러에서 치러졌는데 공교롭게도 북한은 3경기 모두를 미들스브로의 홈 
구장에서 치르도록 배정받았다. (당시 북한이 예선 3경기를 모두 뛴 
미들스브러의 홈 구장 Ayresome Park는 1995년 이 곳을 홈으로 쓰던 미들스브러 
축구팀이 새로 지은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으로 이전한 뒤 97년 철거됐다.)

북한의 출발은 예상대로였다. 소련은 야신을 벤치에 앉혀두고도 북한을 3-0으로 
완파했다. 하지만 3일 뒤에 치러진 칠레와의 경기에서는 종료 직전에 터진 
박승진의 동점골에 힘입어 1-1 무승부를 거둔다. 마지막 경기는 다시 4일 뒤에 
열리는 이탈리아전. 이미 월드컵 우승 2차례를 차지한 바 있는 우승후보와의 
대결은 당연히 북한의 패배로 점쳐졌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로 
일컬어지던 이 경기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미들스브러 시민들의 열렬한 반응이었다. 

앞선 2경기를 통해 투지 넘치는 경기를 보여준 북한 선수들에게 미들스브러 
시민들은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다. 게다가 월드컵 예선 3경기만을 유치한 
미들스브러 시민들에게는 그 3경기 모두를 자신들의 도시에서 치르는 북한 
선수들에게 인정 넘치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게다가 북한 선수들은, 이변을 
능히 일으키고도 남을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북한의 1-0 승리. 고국으로 돌아가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패배는 우울한 이야기지만 누구도 
예상못했던 북한의 승전보는 그 자체로 이미 상식을 뛰어넘는 신화였다. 전반 
42분에 터진 박두익의 첫 골은 전설로 남았고 미들스브로 팬들은 자신들 도시에 
여장을 푼 북한 선수들의 기적같은 승리에 그 누구보다 뜨거운 환호로 축하를 
보냈다. 미들스브러 시장을 비롯한 시의 각계 인사들도 북한 선수들을 만찬에 
초청해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시민들도 북한 선수들에게 사인 공세를 퍼부으며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대회 개막 얼마 전까지만해도 '적성국' 북한의 입국 
허가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영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후대다. (리버풀에 사는 아는 동생이 미들스브러 출신 여인과 결혼하는 바람에 
몇가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동네 사람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여전히 그 무렵 일들을 생생히 추억하며 'Korea'란 단어를 들으면 감상에 
젖는다고 한다. 축구장 로맨스의 주인공은 피렌체와 바티스투타만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기세 등등한 북한 선수들 못지 않게 그들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여긴 미들스브러 
시민들은 4일 뒤 리버풀 구디슨 파크(에버튼의 홈 구장)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도 '북한 서포터'를 자처하며 원정 응원길에 나섰다. 5~6시간 정도 되는 
이동 거리를 감안하면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무려 3천명이 넘는 미들스브러 
시민들이 북한 인공기를 손에 쥔 채 그 먼거리를 이동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감동적인 사건이다. (다들 알다시피, 북한은 전반 25분까지 
세 골을 몰아넣으며 3-0으로 앞서 나갔지만 이후 30분간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에게 무려 4골을 연달아 내주며 역전당했고 결국 3-5로 패했다. 
월드컵 사상 최대의 역전극을 이끌어낸 에우제비오는 대회 통산 9골로 이 대회 
득점왕에 등극했다.)

영화 <천리마 축구단>에는 미들스브러 팬들과 북한 대표팀 간의 인간적 교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동국이 미들스브러에 가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덕분에 이 도시가 군사분계선 너머 북쪽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코리안'들에게 베푼 호의와 잊지 못할 추억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겐 의미있는 소식이다. 더불어, 그가 미들스브러에 입단하게 된다면,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내가 어줍짢게 느끼는 이 미묘한 감정들이 지금도 그 도시에 
살아 숨쉬는 수많은 시민들의 가슴에서도 우러나와 이동국에게 더 큰 성원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물론, 그렇다고 이동국이 골을 넣었을 
때 41년전 그때처럼 인공기를 흔든다면 조금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_^ 

여하튼, 스포츠란건 결국 이런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어우러질 때 더욱 큰 
감동과 추억을 안겨준다. 그러니 이동국이 바로 그 장소에서 그 마을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골을 펑펑 터뜨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모양이다. 현재 그 곳에 머물고 있다던 이동국.. 그를 데려간 에이전트가 
이번에 일을 잘 성사시켜서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억 더 많이 안겨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그래서 다시 이렇게 꾹꾹 눌러 남겨본다.

 

원문출처 : 토탈사커 
http://totalsoccer.news.empas.com/forum/pro/read.html?_bid=forum_benign&asn=54 
서형욱님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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