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portsLeisure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GoSeahawks) 날 짜 (Date): 2006년 3월 10일 금요일 오전 04시 36분 02초 제 목(Title): Re: 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한일전... 노히트노런 기록은 있는데, 광주일고 재학중 선동렬은 대통령배 우승 하나만 했었나봅니다. 저도 준결승이던가 경북고 게임에 서울운동장에 구경간 기억이 나네요. 81년 대통령배인지 청룡기인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류중일이 그때 한참 날렸던 것 같은 기억이 국민학교 때인데, 생각해보니 여자친구랑 갔었네요. ㅎㅎ 83년에 광주일고가 각종대회를 휩쓰는 것으로 나오는데, 제가 헷갈렸나 봅니다. 아 퍼온글 읽어보니 선동렬의 광주일고와 박노준/김건우의 선린상고가 라이벌이었군요. 아래부터는 퍼온글 오랜만에 옛생각을 떠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80년 황금사자기 우승팀은 선린상고였죠. 참고로 대통령배는 광주일고, 청룡기는 선린상고, 봉황기는 북일고가 우승했습니다. 대통령배에서는 일고와 광주상고의 라이벌 결승전이 있었고, 선동렬선수의 노히트노런이 나온 걸로 기억합니다. 봉황기에서는 대구상고의 이종두선수가 싸이클링히트를 기록했지요, 아마. 황금사자기 결승, 광주일고와 선린상고의 시합... 어린 시절 야구경기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입니다. 노히트노런 투수 선동렬의 투구에 반해버린 저는 당연히 광주일고의 압도적 승리를 예상하고 바랬지만, 박노준과 김건우라는 2학년생 슈퍼듀오를 앞세운 선린상고에게 덜미를 잡혔습니다. 8회이던가, 선린상고가 3-2로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상황에서 박노준은 선동렬에게 쐐기 2점홈런을 뽑아내지요. 다음회 타석에 들어선 선동렬 (당시 클린업이었습니다)의 우울한 얼굴이 아련히 기억납니다. 후추 명전 박노준편에 보면, 박노준선수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 때 선동렬선수의 "기"를 꺾은 이후 프로에 와서도 선선수의 공은 맘대로 때렸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지요. 선동렬, 이상군, 민문식 (세광고), 박노준, 김건우, 이종두... 아아, 최동원, 김재박과 더불어, 어린 나에게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야구의 매력을 알려준 이름들... 그렇게 나의 영웅을 울려버린 선린상고이건만, 어느새 다음해에는 그들의 야구에 반해서 경북고와의 시합때마다 선린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80년과 달리 81년은 선린상고 야구의 좌절과 아픔의 시기였고, 반대로 경북고에게는 영광과 환희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지역예선에서는 오히려 경북고를 이기기도 하던 대구상고는 본선에서는 경북고를 만나보지도 못했고, 까치 김정수를 앞세운 진흥고도 경북고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죠. 봉황기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한 박노준의 모습, 참 오래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80-82년도 재미있어지만, 제가 고교야구를 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가장 좋아했던 건 83년의 광주일고였습니다. 청룡기 (북일)를 제외한 대통령배, 봉황기, 황금사자기, 그리고 전국체전까지 석권... 문희수, 김선진, 김목정, 서창기, 김성규, 천상주... 그리고 박준태, 이호성, 이강철. 그 전해에는 박철우가 있었죠, 아마. 모두 프로에 와서도 야구사에 굵은 족적을 남기... 지는 못했지만 (이강철 제외), 그들중 다수가 프로에 와서 경쟁속에서 살아남아, 짧건 길건 팀에 꼭 필요한 선수로 활약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프로에서의 모습들도 기억에 있습니다만, 저에게는 앳된 얼굴로 당차게 강속구를 뿌려대던 문희수, 외야가 좁다하고 다이빙캐치로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던 김성규의 모습이 기억에 각인되었네요. 82년부터는 프로야구도 생겼고, 세계야구대회 우승이라는 모멘트도 있었지만, 고교야구를 보는 재미도 그에 못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