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이(By): seody (HL0Romeo) 날 짜 (Date): 1993년06월10일(목) 16시11분42초 KST 제 목(Title): 25/10/5 년전 서강의 모습은... 25년전 서강에는 .... 한 학년 총 학생수가 200명 이었데요. 그래서 총장님이 직접 커다란 술잔에다가 술을 일일이 졸업생에게 따라주어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정문에서 A 관 입구까지 도로가 비포장이어서 비만오면 질퍽대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안타깝께 여긴 모 학장님 께선 여학생들만 골라서 자가용 찝차에 태워 주어ㅆ다 합니다. 여학생들은 바지 입으면 수위 아저씨가 잘 들여보내주지 않았고 또 들어와서도 교수님들의 훈시를 들었다 합니다. 80학번까진 660명으로 늘어 났다가 81학번부턴 1300명으로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지요. 도서관도 지금 라운지 있는 건물은 없었구요 81년 부터 도서관 자리 쟁탈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80년 5.18휴교조치로 인하여 학생들은 교문에서 각자 과 과제물을 받아갔다 합니다. 순전히 리포트 제출 형식으로 학점이 매겨졌는데, 과제물 싸들고 왕자다방 (당시 정문 앞 유일한 다방/까페 였음) 에 가면 모두 남이 해 놓은 거 베낄 수 있었다 합니다. 80년 축제 때는 시국 관계로 인하여 통기타 하나로만 쌍쌍파티를 진행하는 지극히 어려운 시기도 있었답니다. 81년부턴 축제가 재미있어지고 82년에는 잠시 중단되었던 (아니면 처음 시작되었던) 나이아가라 (A관 있는곳을 수 놓는 불꽃놀이) 라는 행사가 있었지요. 가장 축제가 재미있던 연도입니다. 여러 써클이나 과에서 "open cafe" 라는 걸 열어서 짭짤하게 돈 벌어서 즐기는 경우도 많았구요.. R 관 밑에는 라면 손수 끓여먹는 곳이 있었읍니다. 당시 삼양라면이 100원 할 때 170원 씩 받고 식기와 불을 빌려주었죠. 계란은 한 30원 했다고 하고. 실험하다 말고 출출할 때 끓여먹기도 했지요. 82년부터는 도서관이 현재처럼 커지게 됩니다. 도서관에서 으슥한 곳을 찾아 데이트하는 선남선녀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것도 이 시기입니다. Computer 는 Four Phase 라는 이름도 없는것 썼는데 전산과 학생도 카드를 (천공카드)를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돌렸습니다. 코딩을 해주면 키펀쳐 아가씨들이 다음날이나 이틀후에 카드에 구멍을 뚫어놓지요. 오타가 있으면 그 부분은 자기가 직접 쳐야하는데 프로젝트 듀가 다가오면 최악의 경우 카드 한장 고치려고 3시간 이상 줄서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렇게 해서 돌린 것이 로직 에러가 나오면 정말 황당하지요. 하루에 한번밖에 RUN 을 시킬 수가 없으니 머리 속에서 콤퓨터 돌리는 기술이 발달했지요. BASIC Programming 하면서부터 일주일에 Terminal 한시간 쓸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습니다. 그것도 8명이상 동시에 사용못하는.. 83년부턴 RA 관이 생기고 R관자리의 식당은 이발소로 변하고 RA 관에 대신 라운지가 생기게 되지요. 도서관이 다시 붐비기 시작하는 시기.. 학교앞 갈 곳 이라고는 왕자다방 이던게 "예"라는 곳이 생기면서 차츰차츰 까페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83년 축제는 데모로 인해 얼룩졌지요. 써클까페에서 앰프를 가져다 놓았는데 거기서 "아침이슬"을 불렀다가 학생수 보다 더 많은 짭새들이 몰려드는 통에 곤욕을 치렀습니다. CDC Cyber 로 기종이 바뀌던 시기. 시험문제를 콤퓨터 터미날 앞에서 두시간 만에 풀어야 했던 시기입니다. 학생마다 문제가 다 달랐고 자기 할 일 바빠서 컨닝은 어림도 없었지요. 그리고 결과를 정해진 시간안에 교수님 앞으로 파일전송 해야만 했구요.. 84년에는 학원 자율화 조치로 인해 대자보가 교내에 붙기 시작하는 시기 입니다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축제 기간은 시국성토를 코믹하게 하는 분위기였지요. 김대건 관은 그 이후 생겼고 R관 밑에 있던 이발소는 어느틈에 C관으로 이전 했답니다. 87년 까지만 해도 있던 RA관 옆 개천이 메꾸어져 있었구요.. 알바트로스 탑은 정말 생소하기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