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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Gang ] in KIDS
글 쓴 이(By): parsec ( 먼 소 류 )
날 짜 (Date): 2001년 9월 27일 목요일 오후 07시 28분 27초
제 목(Title): Re: 로모, 첫 인상.


여기서도 어느샌가 로모 열풍이!....
자꾸 얘길 들으니 정말 하나 갖고 싶지만,
디카를 장만하느라 큰돈을 썼기 때문에
당분간은 자제를 해야 한다.
정말 옛날부터 손에 들고다니기 좋은 카메라를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은 간혹 했지만
얇디 얇은 메모철과 펜을 가지고 다니며
메모하는 습관을 붙이려다가도 그게 귀찮아
포기하곤 했었기 때문에 카메라도 그짝 나지 싶어
침을 꿀꺽 삼키며 포기하곤 했었다.
그리고 사실 비싼 필름을 넣으면 함부로 퍽퍽 찍어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찍고 싶은 장면도 다시 생각해보느라
망설이다 놓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나같은 성격에는 필름값이 따로 들지 않는
디지탈 카메라가 적당하다.(그래도 로모 갖고 싶어...)
(디카는 건전지 값이 많이 들겠군)
디카가 도착하면 당분간은 디카로 사진찍는 습관도 들이고
연습도 하면서 내가 과연 필름카메라를 사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카메라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 때는
영화 "스모크"를 보고 나서다.
담배가게 아저씨가 매일 같은 시각에 같은 각도에서
가게 앞 거리를 찍은 것이 몇년 뒤에 동네의 역사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서 구닥다리라도 좋으니
카메라가 있다면 나도 사진을 찍어볼텐데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게 됐었다.
그러나 웬걸, 한 5년쯤 전에 싸구려 자동 카메라를
장만하게 됐는데(회사에서 나온 근로자의 날 선물이었을 거다)
어쩌다 흥이 날 때 필름 두 롤 정도를 썼을 뿐(그것을
아직도 현상조차 하지 않음) 비싼 건전지만 자연방전으로
소모시켜 버리고 책상서랍에서 썩히고 있다.
카메라가 워낙 투박하고 두꺼워 가지고 다니기에
불편하기도 하고 그걸로 사진찍는답시고
들고다니기엔 너무 촌스럽게 생겨서 쪽팔리다는
생각을 한 탓이기도 하다.
(올초 폭설이 내렸을 때 주말에 눈사람을 만들었었는데
그거나 찍어둘 걸 그랬다)
(조카들 노는 모습 찍어둔 거나 현상해 볼까)
하긴 별보기운동하는 내가 주말 외엔 사진찍고 다닐 겨를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사진을 찍게 될만한 환경이
아니라서(누구 말마따나 대단한 사건은 대단한 곳에서
일어날 걸?)별로 사진찍을 흥미를 못느끼는 탓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어쩌면 의미 부여의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냥 지나쳐 버릴 일상의 단면들을 특정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고정시킨다는 것. 그 장면에 시선을 멈추고 응시하는 것.
그것을 사라져버릴 순간으로부터 구제하는 것.
그것은 비록 우연일지라도 그 순간의 값을 높게 쳐주는
행위이고 그런 행위에 의해 그 순간은 보존되고,
재해석할 시간적 여유를 주고, 찍히지 않고 지나간 그 앞뒤의 순간들을
사진에 남은 순간을 기준으로 추측하고 판단하고 기억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동영상의 사실성에서 뛰쳐나와 일종의 오오라를 갖는다.
동영상이 피와 살이 있는 살아있는 모습이라면 사진은 약간
신화적인 과장된 이미지를 갖고 우리를 빨아들인다.
사진을 찍으면서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에 의미를 부여하자.
그럼으로써 삶을 신화화하고 뭔가 중요한 것인 것처럼
만들어 보자. 힘없이 지나가는 일상의 시간들에 뼈대를 세우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물들에 존엄성을 부여하자.
carpe momentum
희멀겋게 녹아 없어질 삶을 구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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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_/__,         SEP. 11. 2001
                _    ~ | |      \ `         Armorica under a tat
           ,-,_| |__ | |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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