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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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ason ] in KIDS
글 쓴 이(By): 안젤리카 (Elvira)
날 짜 (Date): 2001년 4월 29일 일요일 오후 11시 48분 36초
제 목(Title): 오늘



  일기를 안 쓰면, 오늘 느낀 것 들이 모두 흩어져 버릴 것 같아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돌려가며 일기를 쓴다.

  휴가 첫 날. 별로 휴가라는 기분도 없이 일찍 잠을 깼다.

  조금 더 졸았지만. 결국은 깨어 성당가시는 엄마와 

  잡담을 좀 하다가 라면을 한 개 끓여먹었다.

  다시 신문을 보고...몽롱한 상태로 오전을 보내다가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대강 올린 채로 점심 외식을 하러 나갔다.

  그래도 내 딴엔, 피부상태도 괜찮은 데다 

  엄마가 새로 사 주신 

  보라색 니트를 입고..베이지색 가방을 들고...멋을 낸다고는 했는데

  역시 화장을 안 하니...꽝이었던 듯..

  길가나 식당에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이...왠지 폭탄이어서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역시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자신이 과연 presentable할까, 하는

  의심에 싸여 사는 사람 같다. 

  ....

  어쨌든, special occasion이었기에 점심을 특별히 맛있게 - 또

  배가 거의 터질 정도로 - 먹고

  좀 걷고 싶길래, 방배동에서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슬슬 걸어본 방배동 길. 생각보다 괜찮았다. 

  졸리길래 혼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셔본 도너츠 가게도 괜찮았고.

  ....

  백화점에선 세일하는 옷을 두 벌 샀다.

  눈요기로 비싼 옷을 보고 나니 스트레스가 쌓여서였을까? 잡지에서

  파텍 필립인가 매우 비싼 보석박은 시계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아 

  나가서 싼 세이코 시계를 샀다는 U.Eco의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쨌든 옷을 사고 난 김에 수선도 맡기고, 그러면서 여기 저기 둘러보고...

  어버이날 선물까지 샀으니, 오늘은 피곤하긴 했지만

  가히 productive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나중에는 너무 지쳐서, 힘들었지만. 

  ....

  저녁은 간단하게, 나물과 김치로 차린 식탁이었다. 




  밥먹고 나서는 티비를 잠시, 그리고 채팅을 잠시, 다시 티비를 잠시 

  보았다. 

  ....

  이렇게 사실들을 간단히 기록해 놓았지만, 진정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따로 있다.

  산책길에 보았던, 반포 2동 성당. 조촐하고 예쁜 성모상과 베고니아, 

  시클라멘 꽃. 

  더운 햇빛을 받으며 마시던 머그잔의 커피. 창밖의 사람들. 불란서 

  학교. 

  그리고 백화점 휴게실서 넘겨본 잡지 속에 있던 말들. 

  ....

  자기자신을 주위환경에 맞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항상 휴식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명상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기도'라는 것의 효험.

  앞날에 대한 희망.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

  최근 내 생활에 '지향'이라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많이 했었지만

  오늘 커피를 마시며, 녹차를 마시며 생각한 것은,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조금은 위를 보며 살자.. 는 것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부여받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남들은 그게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적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부터의 나는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

  그런 걸 생각하면, 

  매일 아침 입는 옷 하나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아끼는 후배들에게도, 자꾸 말로만이 아니고

  생활 자체로서, 영향을 미치려고 해야 할 거고. 

  어쨌든, 오늘 하루가

  값없이 지나가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도감이랄까. 

  ....

  다음 주 부터는, 주말 운동 후 성당에 가보도록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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