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eason ] in KIDS 글 쓴 이(By): ezoo (이 주) 날 짜 (Date): 2000년 3월 16일 목요일 오전 03시 10분 50초 제 목(Title): e-mail을 받고서. 유학중인 아는 언니에게서 e-mail이 왔다. 공부하는데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 많이 힘들다고. 건강의 중요성에 대하여 한참을 이야기한 글이었다. 언젠가부터 내가 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종종 내뱉는 말이 있다. "야!. 어린애들하고 학교 같이 다니기 너무 힘들지 않냐? 쿠쿠" 나의 올해의 목표중 하나가 바로 "건강"이 된 이유도, 적어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은 체력단련을 위해 애를 쓰려고 하는 노력도 바로 그 이유이기에 나는 언니의 편지를 읽으며 끄덕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루에 한시간을 투자했어도 과거의 체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걸 알았다. 성급한 결론일지는 모르나, 현재의 체력을 유지시키는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나에게는 이미 노화가 시작된 것이다. 사람의 수명. 나는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해보면, 미래의 30년동안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나를 비롯해 주변의 친구들과의 대화중에 빠지지 않는것이 있다면, "뭐 재미있는거 없니?"라는 질문이다. 밍숭밍숭한 삶보다는 조금이라도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자 몸부림치는것일까? 아니 이것은 그나마 삶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라 봐야 할것이다. 한동안 죽음에 대해, 자살충동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었는데, 그럴때면 꼭 전혜린이 생각난다. 용기도 없는 나와 달리 그녀는 무엇을 느꼈던걸까? 한편으로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열심히 살아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도 한다. 무엇때문에..? 융통성보다는 철저히 자신의 편리대로 행동하는 쉬운길을 택하는것은. 주변사람들을 배려하기보단 무관심해진채 안주하려고 하는것은. 참을성 없이 툭툭 가시돋힌 말도 이따금씩 내뱉는것은. 강한 도전정신 보다는 안정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는. 참으로 나약한 모습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지 말자던 내 젊은날의 약속과 달리 나는 이미 약속을 져버렸다. 답답한 방안 공기에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 방 구석에 놓여진 검정 비닐봉투가 바람에 날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쁘지도 않고 주름도 많은 싸구려 검정 비닐봉투이지만, 무언가를 담은채.. 자신에게 주어진 할 도리를 다한채 놓여져있다. 바람이 부는대로 조금씩 흔들리면서 말이다. 빳빳하고 고급스러운 종이 쇼핑백도 있다. 비어있는채 구석에 곱게 쳐박혀 있는 쇼핑백. 그래. 어쩌면 인생도 저 봉투들과 같은것이 아닐런지. 쇼핑백이 될수도 있고, 비닐봉투가 될수도 있고.. 아무리 잘 만들어진 쇼핑백이라도 그저 쳐박혀 있는것보단, 한낱 싸구려 비닐봉투일지라도 바람에 흩날리면서도 묵묵히 주어진 임무를 하는.. 그런것이 아닐런지. 어쩌면, 내가 어렴풋이 생각했던 인생의 의미가 자신에 대한 절제와 노력여부가 아닐런지도 모른다. 지금 이렇게 아무리 길게 떠들어봤자 내일이 되면 쓰레기가 되버리고 마는것처럼 아직은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