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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0월26일(수) 13시15분27초 KST
제 목(Title): 내가 경험한 부실한 다리.



중고교 때 내가 살던 곳은 말이 좋아 서울이지 정말 깡촌 그 자체였던
허름한 동네였는데, 발전이 안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교통이 몹시 나빴기
때문이었다. 사방에 펼쳐진 논 한가운데에 버스 두대가 간신히 비켜나갈
만큼 좁은 2차선 도로가 덩그라니 있었는데.... 그나마 도중에 건너야 하는
다리는 더 좁아서 한쪽에서 버스가 오면 반대편의 버스는 기다려야 하는
일방통행 다리였다.

그 다리가 얼마나 허접한 다리였는가 하면....그 다리는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
들이 지은 것인데 목적은 리어카가 지나가도록 만든 것이라고 했었다. 세상에
리어카가 지나가도록 만든 다리...그것도 만든지 40년이 넘은 다리위로 버스들이
하루 온 종일 오가도록 방치를 한 것이었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그 다리가
버티어 낸 것이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동네 사람들의 숙원사업(?)은 그...개천위에 안전하고 번듯한 다리
하나 놓는 것이었다. 84년인 것 같은데 무슨 선거가 끼는 바람에 그 문제의
구루마 다리옆에 최신 공법으로 지어진다는 다리가 놓이게 되었다. ( 개천에
다리 놓아 준다는 공약은 이승만 시대 이래 선거공약의 필수품 아닙니까? )

폼나게 준공식인가를 했고 XX 교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지어다 새겨 놓았고
우리 동네 사람들은 이제는 다리 무너질 걱정 없이 안심하고 건너다니게
되었다고 좋아라 했었다. :)

그런데 그 해 여름 장마철에는 지금도 기억이 날만큼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다. 그것도 한 사흘 계속 줄기차게 퍼부어 대서 우리는 그 개천이 범람 직전까지
간 것을 보았다. 정말 엄청난 양의 물이 개천을 타고 흘러 내려갔는데...
(그 개천은 사실 개천이라기에는 좀 크고 강이라기에는 좀 작고 그렇습니다.
 대충 탄천보다 약간 작다고 생각하시면 맞을 거여요.)

글쎄.. 장마가 지나간 날 아침에 보니깐....새로 지은 다리가 떠내려간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기가 막혀서...아니 다리를 어떻게 놓았길래 지은지
몇달 되지도 않은 최신공법의 다리가 비 좀 많이 왔다고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떠내려(!) 간단 말인가?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은 일제시대에 구루마 용으로 만들었다는 그 허접한 다리는
늠름한(?) 모습으로 남아서 떠내려간 다리 대신에 훌륭하게 자기 몫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 다리는 몇년후에 해체 되었는데 하도 단단하게
만들어져서 해체작업에만도 엄청난 돈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일본사람들이 하도 지진에 시달리는 바람에 다리나 건물 지을때 무식하리만치
단단하게 짓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 나는 그 일이 꼭 80년대의
한국이 교량건설에 있어 일제시대의 일본보다 못하다는 근거가 된다고는 생각
하지 않는다. 그러나 리어카 전용 다리도 견디어 내는 물살을 최신공법의
새 다리가 못 견디고 떠내려 갔다면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 아닌가?

성수대교가 내려 앉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10년전에 떠내려간 그 다리를
떠올리면서 황당하지만....일어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참으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landau
                            
                               복종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18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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