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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clay (S.H.Ryu)
날 짜 (Date): 1994년09월24일(토) 01시30분45초 KDT
제 목(Title): 너무 길군요.


나는 이집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혹은 아저씨에게 악지르는 소리를 듣기가 

싫어서 미칠 지경이다.

아무렇지도 않을 이야기도 화를내며 말하는 것 같다.

내가 계약을 맺고 들어와 사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내게도

그렇게 화난 목소리로 크게 떠드실테지.

오늘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다.

집에서 부모님과 지내다가 몇십분만에 낯선 도시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먼 거리를 건너와서 편하기도 하지만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오전 수업을 빼먹을 수 밖에 없었다.  오후 수업을 위해서, 오늘 내일

모레까지 집에 있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도 스산하고 괴로운 서울의

내 장소로 온거다.

나만을 위한 방, 나만을 위한 장소.

하지만, 지금의 자취방은 그런 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왜?

쓸쓸하니까.  나는 아무도 닿지 않을 무인도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내가 소외당한다고 툴툴거릴만큼 자격지심에 유치한 인물도 아닌데도-정말?-,

이렇게 청승맞아지고 힘들어지게되는 이런 방을 원한것이 아니다.

물론 지금의 내 방이 추위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이삼년간 타향에서

이집 저집 하숙하며 불려온 짐들을 둘 수 있게하며, 관악캠퍼스에서

오갈데 없이 방황하던 지친 종아리를 풀 수 있게는 해주지만, 역시

방안에 있어도 구멍 뚫린 가을 낙엽처럼 불안정하고 외로운 마음을-

기어이 외롭다는 단어를 쓰고야 말았지만- 편안하게 하지는 않는다.

오후에 세시간동안 다 망가진 기타를 퉁기며 맘대로 옥타브를 골라서

-무슨 뜻일까- 노래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마리아처럼 재치있고 

순발력있게 노래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을 은근히 갖고서.

방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들은 방송, 해외토픽.  몸무게가 백 팔십 

킬로그램인가 얼만가 나가는 사형수에게 판사가 교수형을 언도하지 

않았는데 이유인 즉슨, 몸무게 때문에 몸뚱이가 목에서 떨어질까봐 그렇다나..

흥, 멍텅구리.  오늘 저녁, 달갑지 않은 전화 한통과 젠장할 전화 한통.

또, 끊고나서 스스로를 비하하게 만든-별것도 아닌 얘기를 오래하면 

그렇게 된다.- 전화 한통을 받았다.  

내가 걸었던 사람들은 뭣이 그리도 바쁜지 모두들 집에 붙어있질 않았고.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전화에 대해서는 십오분간 열심히 노!를 외쳤고,

주제넘게, 왠지 걸고 싶어서 걸었다는 전화는 몸도 피곤한데 그냥 몇마디

배앝고 끊었다.  마지막 전화를 받을때는 허리가 아파서 불끄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난 터이었다.

요즘 엽기적이니 어쩌니 하는데, 기자고 국정이고 다 유치하고 속상하다느니,

토플점수가 어쨌다느니, 연휴때 방영된 포청천이 제일 멋있었다는 이야기,

캘빈 클라인의 속옷 카탈로그가 민망했다느니, 새로나온 신세대 X 세대 

잡지라고 하는 것이 순전히 가격이 싸서 사봤는데 성에 대한 기사의 관점이 

황당했는데도 참 일반적인 것으로 써놔서 내가 늙은이같았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특히 길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낭군-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말한다. born to

be his wife-이 되리라는-필시 꿈자리가 사나울- 꽃미남의 생일날 생크림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생일축하 의식을 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고 끊었다.

컴퓨터를 켜서 라이프 게임을 하다가 겨우 두번째 판에서 싫증이 나서

프로그램을 지웠다.  기왕 지우는 김에 습관적으로 다운로드 받아놓곤 했던

보드게임들을 몽땅 지웠다.  라이프는 그래도 상당히 괜찮았는데.

락때문에 프린터를 켜고 띠우는 워드프로세서가 귀찮아서 통신프로그램의

에디터로 글자을 날리기 시작한거다.  

주인집 누군가가 아이의 방을 노크하는 소리.  나는 이것도 싫다.  

노크를 저렇게 호전적이랄까 저돌적이랄까 기분나쁘게 하는 부모도 없을거다.

어렸을적부터 노트에 쓰던 일기는 이삼년마다 읽어보고 찢어서 쓰레기 소각장에

버렸고, 몇년 전부터는 꼴에 컴퓨터를 배웠답시고 디스켓에 저장해오던

일기를 한달쯤 전에 몽땅 지웠다.  혹시 나중에 복구하고 싶어질까봐

와이프인포를 했던가, 포맷을 했던가?  아무튼 난 이런것도 지독스럽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집착이랄까 편집증이랄까 결벽증이랄까.

아무튼 집에서 쉬었던 한달간에도 기껏 캔버스에 만화같은 낙서를 했을 뿐,

일기를 쓰지 않았으므로 이제 내가 쓴 일기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같잖은 것에 어떤 이름을 붙일것인가.  

아니면 이름도 붙이지 말고 저장하지도 않고 프로그램을 종료할 것인가.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 친구에게서 전화가 또 한통.  내가 걸었을때는

출타중이더니만.  이녀석들이 내게 연락을 못하고 자기들끼리 집들이며

생일파티를 했더구만.  선물 안사줄까보다.

아무튼 방금 전화를 건 친구가 또다른 전화가 걸려온 것 같다고-이런

서비스를 뭐라고 하더라- 하길래 다음을 기약하고 끊었다.

그러나 일단 통신프로그램이고 보니, 가비지같은 글인데도 어딘가 올릴 

보드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비지에 올렸지만 지워야지.  거긴

너무 찜찜한 제목이 많았다.)

또는 여기에 내 맘대로 멜로디를 붙여서 정말 그런지하고 더티한 랩송을 

만들면 어떨까.

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을것인가?라는 의문.  

하지만 이런 글을 나도 어쩌다 한번씩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용은 기억에 없지만.

아무튼 통신에 물들면서 맞춤법이나 문법은 신나게 망쳤군.

참, 이제는 작별이다.  kill myself- i.e. X id - 할거니까.




... 반말인듯 쭝얼쭝얼해서 미안합니다 ...

에구, 아이디 없으신 분은 아이디를 주지 않는다고 비난하실깜숩다.

하지만 부지런하거나 혹은 확률에 강한? 운 좋으신 -과연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가?- 통신인께서 아이디를 갖게 되시겠지요.

저는 손님이나 되려해요.



                              ll^llll                            \
                            // 0 0 ')                            \
                              ` ,  '    s_crystl@sis.snu.ac.kr   \
                             __ \ / __          cl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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