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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arche (기마토끼)
날 짜 (Date): 1994년07월27일(수) 11시38분43초 KDT
제 목(Title): 천둥번개


한국은 더위가 좀 풀렸나요?

..........................

오늘은 기괴한 날이었다. 아니, 어젯밤부터 그랬다. 천둥이 치기 시작하더니,

번개가 번쩍번쩍, 비가 쏴아쏴아, 창문이 덜컹덜컹, 전등이 깜박깜박하더니만,

이내 전기가 나가서 사방은 컴컴하게 되었다. 오직 밖에서 치는 번갯불이

순간순간 마을을 밝히고 있었다. 번개치는 모양을 보려고 창문에 서성서성

해 보았지만 구름이 짙게 낀데다가 이 근처에서 치는 것이 아닌 모양이라,

내가 좋아하는, 하늘이 찌직찌직 갈라지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엎어져서 쿠울쿠울 잤다. 

근데 오늘 오후에 그 번개를 원없이 보게 되었다. 비가 부슬부슬 다시 오기

시작하더니, 번쩍번쩍 다시 번개가 치고, 꽈당꽈당 천둥이 치고, 이내 

또다시 전기가 나가 버렸다. 으으.. 열받열받..

나는 오늘 기필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을 작정이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우산을 집어 들고는 밖으로 나가서 나의 애마에 탑승했다. 길길길길..

음.. 역시 시동이 잘 안걸린다. 나이탓이다. 어쨌건 5 분여 동안 차를 

몰고, 우선 점심을 먹으려 간이 식당에 들렀는데, 으으.. 나올 때쯤 해서

비가 정말로 처참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둥번개도 

오싹오싹 하리만치 엄청나게 쳐 대기 시작했다. 차에 시동을 거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콰콰쾅!!!! 하는 폭음과 함께 눈부신 섬광이 발했다.

으으..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것같았다. 에에.. 소리 속도가 340미터/초라니깐..

바로 머리 위에서 터졌다는게 맞는 것같다. 빛이랑 소리랑 동시에 발했으니까.

태어나서 비가 이정도로 오는 건 봤지만, 천둥번개는 정말로 처음이었다.

거의 5초마다 한 번씩 꽈광 하고 쳐댔다. 현재 내가 있는 곳 바로 위가 

번개의 근원인 것같았다. 아아, 정말 멋진 경험이다. 이렇게 엄청난 

뇌우를 목도하게 되다니.. 하고 감탄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요 벼락에 맞아 죽어도 좋을 만큼 멋진 경험은 아니다.. 하고 황급히 

생각을 정정했다. 음.. 벼락이 내 생각을 들을까봐 순간적으로 걱정했던 

것같다. 이발소에 들어갔더니 사람이 하나도 없다. 엥? 비가 너무 와서

아무도 안 왔나 보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올 때마다 사람이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했었으니까. 이발사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지금 영업 하는 거야요? 대답이 모호했다.

"흠.. 그렇다고 할 수 있네, 젊은 친구.."

엥? 무슨 말씀인지? 하고 눈을 땡그랗게 하고 있으니..

"자, 보게.. 옆 가게는 지붕이 새서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고, 그 물이 

벽을 뚫고 우리 가게로 서서히 새고 있어. 전기도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자, 어쩔텐가,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머리를 깎겠나?"

꽈과광.. 하고 다시 번개가 치며 할아버지의 눈이 번뜩였다. 으으.. 

무슨 공포물이나 판타지 모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깎겠소.. (아니, 깎겠습니다.. :))"

콰쾅! 하고 다시 섬광이 우리 둘을 조명했다. 

아아, 정말 심한 천둥이다. 번개다. 폭우다. 하지만 시원한 감도 있었다.

"어이구, 이건 태어나서 첨 보는 천둥 번개군요. 아찌는요?" 하고 물었다.

"흠.. 보긴 했지만, 꽤 오래 전이지. 더구나 이렇게 오랬동안 쉴새없이 

쳐대는 것은.." 

과연 내 머리 깎기가 온전히 끝마쳐 질 수 있을 것인가. 

연신 가게 종업원들이 들락거리며, 어디는 물이 30센티까지 찼다느니..

하고 걱정스런 눈치를 교환하고..

하지만, 결국 나의 머리는 완성되고 말았다. 하하, 그래, 해낸거야.

이발사 할아버지와 기분좋게 빠이~ 하고는 밖으로 나왔는데, 

쩝, 드넓은 주차장에서 바로 위에서 번개가 마구마구 쳐대는데 

도저히 우산을 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얼마 거리도 아니었지만,

이정도 비라면 차에 타기 전에 엄청 젖어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젖는 것이 두려워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으으...

흠뻑 젖은 채로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돌리며 집을 향해 달리는데..

100미터 마다 한대꼴로 비상등을 깜박이며 멈춰 있는 차가 있었다.

비가 오면 차가 정지한다? 음.. 난 자동차에 대해 잘 몰라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 번개 때문일리는 없고.. 비때문에? 물때문에?

신호등도 대부분 꺼져 있고, 라디오도 나갔고, 연신 사방에서 

들려 오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 정말 혼란스러웠다. 

정작 문제는 잠시 후 발생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끊겨 버린 것이다.

골짜기 부분에 물이 차서... 벌써 차 한대가 물 속에서 정지해 있었고,

주위엔 순찰차와 견인차가 빨간 등을 번쩍번쩍거리며...

에익, 하고 차를 돌려 길을 거슬러 올라가서 서쪽에 있는 길을 택했다.

어라? 여기 있는 신호등은 꺼져 있는게 아니라 빨강, 노랑, 초록색이 

몽땅 켜져 있네? 하하하... 오랜 만에 그런 광경을 본 셈인데, 정말로

예뻤다. 종종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신호등을 이뻐해 줄텐데,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좌회전하고 10초 후,

으으, 이쪽 길은 더욱 심한 물웅덩이가 생겨 있고, 역시 차 한대가 

박혀 있다. 으, 아비규환.. 다시 차를 돌려, 으..이젠 어디로 가지?

그래 마지막으로 캠퍼스를 동쪽으로 타고 도는 길로.. 하는 순간,

아예 그 진입로를 경찰이 막아 논 것이 보였다. 하이웨이로 나가는 

길도 순찰차가 바리케이드를 쳐놨다. 젠장, 어디로 가란 말이야?

오늘 하루는 이렇게 빗길을 헤매며 새우는가 싶었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고 처음 갔던 길로 다시 가 보았다. 

응? 아까 잠겨 있던 차는 이미 끌어갔고, 순찰차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차가 반대 차선에서 물에 잠겨서는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근데, 물웅덩이를 헤치고 통과하는 차량도 간간이 보였다.

쩝, 대부분은 트럭이라든지, 밴이라든지, 하는 덩치가 좀 큰 차였지만.

나머지 차들은 그저 물을 바라보며 망설이거나 되돌아 가는 분위기였다.

음, 멀쩡해 보이는 차들이 저렇게 정지하는 것을 보니,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고물차인 나의 애마가 급류를 통과할리 만무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마이스윗홈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돌아서야 하나..

하지만 다음 순간  콰쾅 하는 천둥 소리와 함께 

나는 말을 달렸다. 이야아아압...  

흐흐흐... 여유있는 도하였다. 잘했다, XX, 이젠 널 X차라고 안 부를께.

집에 와서 내리며 차에 뽀뽀를 해주려다가 난 호모가 아니라는 생각에

관뒀다. 

엄청난 하루였다. 

밤이 늦어 이제야 전기가 들어와서 (학교 전체가 나갔었음, 집은 물론)

이렇게 손가락 운동을 하고 있다. 

으으.. 숙제는 언제 하고..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손가락 운동도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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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수고 하시는 여러분께 이 글을 바칩니당, 우헤헤..   



<<임시 시그너춰>> ----------------------공사중--통행..불편..죄송------------
뚝딱뚝딱.. 쓰윽쓰윽.. 덜그럭덜그럭.. 냠냠쩝쩝.. 후루룩.. 끄으으.. 드르렁콜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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