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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09월02일(금) 21시55분58초 KDT
제 목(Title): 인연이 이루어지는 법....



나는 인연을 믿는 사람이다. 나는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낙천가(?)이지만 남여상열지사 만큼은 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연의 소관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되려고 하면, 예를 들어서 둘이 갑자기 마음이 일치해서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아주 인기가 좋아서 예매를 안 하면 볼 수 없는 그런 영화를....
무턱대고 가보아도 누군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급히 되물리려는 표를 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인연이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가고 옆에서 보면
도무지 잘 나갈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연이 없으면 객관적으로 아무리 서로 잘 어울려도, 아무리 서로 장똘을
굴리고 애를 써도 두 사람은 이어질 수 없다. 일껀 애를 써서 그해의 최고
화제작이라는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의 표를 구해 함께 보러 갔는데
여자는 감동에 겨운데 옆의 남자는 코를 골며 잔다거나.....( 이건 실화다.
난 그 영화 보구 진짜 자는 바람에 인연하나를 날려 버렸다.)

콘서트를 보러 갔는데 주변에서 식당을 못 찾아 헤메다가 햄버거 간신히 먹고,
돌아 올 때는 하필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서로 품위를 유지할 수 없는 몰골이 
되고.......

인연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좋아하면 애만 태우고 결국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 마디로 일이 안 풀리는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조인트 후배 하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쁘지는
않았지만 귀엽고 발랄한 데가 있어서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평소에도 너무 접촉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오히려 어색해서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하고 그냥 바라만 보면서 아쉬워 하고 있었다.

봄 축제가 다가올 무렵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축팅( 축제를 빙자한 파트너 
만들기팅)을 하지 않겠냐고 권하길래........ 이게 왠 떡이냐 싶어서 좋다고
응해 버렸다. 그 친구는 그 때 한창 열애 중이었는데 자기 애인 친구가
우리학교 축제엘 와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서...뭐 볼게 있다고.)

그래서 학교 앞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축팅을 했는데....
솔직히 내 대학 생활 통털어서 그렇게 기분 나쁜 팅은 전무후무했다. 
그 아가씨 아마 내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데...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이건 사람을 숫제 무시하는 것이었다. 말을 시켜도 아예 침묵으로 
무시하고 축제를 하고있는 학교 안으로 들어와서도 지루하다는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며 마치 여왕이 신하를 부리는 듯한 태도로 나를 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좀 귀하게 자란 탓이더군....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적의까지(!)
품게 만들었을 정도이니 그 아가씨 태도가 지나쳤던 것 만은 틀림없다.

솔직히 나도 그 여자 별로 맘에 들지는 않았다. 이쁘고 귀티 나기는 했지만
성깔이 그 모양인데다가 젊은 아이가 배가 엄청 나와서....(하하하...)
균형 잡힌 몸매에 올챙이 배가 볼록 나와 있는 형국이었거든...:)

저녁 때가 되어서 함께 돌아 올 때쯤 나는 슬며시 부아가 나서 이 여자를 한 번
골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우리를 소개해 주었던 커플은 일찍이
떨어져 나갔고 그 아가씨랑 나는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함께 차를 타고 장시간
함께 왔는데, 다시한 번 나의 자랑거리(?) 이빨이 위력을 발휘했다. 시간충분
하겠다, 달리 할 일도 없겠다 나는 있는 이빨 없는 잇몸 다 동원해서 그 아가씨
를 구워 삶았는데......... 초장에는 시큰둥하더니 점점 호의적으로 변해서
맨 나중에는 "생각보다는 재미난 분이네요." 하는 말까지 ?끌어 내었다.

바로 그 타이밍을 잡아서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그 다음 주에 자기가 시인과 촌장이란 그룹의 콘서트를 보러 갈 건데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자기가 그 그룹의 팬이라나? (나는 그 때 처음 그 이름을 들었다.)
으...밥맛.... 마치 나는 당연히 자기를 따라야 한다는 듯이 프로그램을 멋대로
지정하는 것이 안그래도 나쁘던 나에 대한 그 아가씨의 이미지에 결정타를 가했다.
어쨋거나 이미 벌려 놓은 사업이니 나는 고분고분 따라서 콘서트 장 앞의 모모 
카페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녀를 바래다 주었다.

일단은 시인과 촌장의 콘서트 표를 구했는데.... 처음의 계획대로 아무래도 나는
그 사람이랑 콘서트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약속을 정할 때
그 여자는 바람 맞히기로 작정했었으니깐....:) (그러고 보면 나도 상당히 악질
이야.헤헤....) 나의 원래 속셈은 그 여자는 콘서트 장 앞의 카페에 바람 맞힌 채로
앉혀 놓고 나는 다른 사람이랑 콘서트 장에서 희희낙락한다는 못된 것이었는데....

문제는 그 '다른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몇달이나 걸프렌드 없이 지내서
친구가 축팅까지 시켜준 것인데 새삼스레 함께 콘서트를 갈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콘서트 당일인 토요일이 되자 비상수단을 강구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내가 속한 조인트 서클은 교내의 모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치 서클룸처럼
아무때고 찾아가면 사람을 만나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기가서
아무나(?) 붙잡고 콘서트에 간다는 생각이었다. 아예 무작위로 뽑으면 뒷말도 
없겠지.:)

조인트 서클이 모이는 곳에 갔더니 여학생들 쪽에서는 아무도 없고 우리 동기생들이
도박판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한두시간 여유가 있어서 나는 마이티 판을 벌이며
친구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무조건 이곳에 처음으로 찾아오는 여자후배나 
동기랑 그 콘서트에 가겠다고 선언을 해버렸다. 축팅을 주선해 준 친구는 자기는 
그럼 직싸게 욕을 먹게 될텐데 어찌하냐고 계속 투덜거렸지만.....

그런데...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여학생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었다.
이제 10분 이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그날 따라 마이티가 잘 풀려서 내 주머니에는 저녁 한 끼 근사하게 살만한 돈이
모여 있었다.) 나는 이것도 재수인가 보다 하고 아무도 안 오니 결국 그 여자랑
가야겠네 하면서 속으로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바로 그 순간! 내가 그 학기 내내 눈독을 들이고 있던 여자 후배가 
귀여운 모습으로 식당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인연이다. ^_^ 

내 친구들은 동시에 우와~~~하면서 란다우의 재수(?)를 축하해 주었고 아직 
순진하던 후배는 전후사정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나한테 이끌려서 콘서트
장을 향해 학교를 나서게 되었다. 가는 길에 어쩌다가 그 시간에 거기에 나타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학교내에서 볼일을 다 보고 교문까지 갔다가 토요일 오후에
할 일도 없는데 갑자기 괜히 조인트 모임 장소에 가보고 싶더란다. 그래서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그 식당으로 나타났다고........... 바로 이런 것이 인연이다.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이어지게 되어 있다.:)

나는 콘서트장 앞의 카페에서 바람을 맞고 있을 여자에게는 눈꼽만큼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고 그 후배와 아주 즐거운 콘서트를 즐길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시인과
촌장의 콘서트는 좋았고 마이티쳐서 ㄷ딴 돈으로 둘이 그럴듯한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언제 기억해도 즐거운 밤......

한참뒤에 내 친구가 바람맞은 그 여자가 나에게 했다는 욕을 전해주었는데 두다리를
거쳐서 온 말이 그정도이니 원전은 얼마나 지독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콘서트에 함께 간 후배랑 이미 잘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가씨가 뭐라했건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 있었다. 쪼~~~끔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쩌겠소? 당신하고 나는 인연이 아니고 악연인가 본데...

이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인연을 믿는다. ^_^

(아...그 뒤로 어찌 되었느냐고요? 인연이 오랜 동안 저를 도와주지는 않더군요.
 그 뒤로도 오랫동안 잘 되었다면 제가 지금 여기서 옛날 이야기나 하면서
 앉아 있겠읍니까? 여러분!)
 




                                   ---  landau (fermi@power1.snu.ac.kr)

         유치원 퇴학생, 병역 기피자, 화류계 생활 30년, 학생을 빙자한 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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