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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in doubt, use brute force.

                      - Ken Thompson



여름에 반바지 입고 다니는 거야 남녀를 막론하고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staire는 누구처럼 다리 선이 멋지게 쭉 빠진 게 아니라서 ( :P )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매년 여름 반바지를 입어야 할 때가 있으니... 의대

orchestra(SNUMO) 여름 캠프 때마다 반바지를 두어 벌 챙겨간다.

더운 여름날 아침부터 밤까지 악기 연습하고 밤새 술마시는데 긴 바지로 버틸 

재간이 없는 거다.

92년 여름인가, 불암산(승교수와 거봉이 사는 홍릉에서 멀지 않은)으로 캠프를 

갔었고 staire는 SNUMO사람들 전부를 주인공으로, 여름 캠프를 무대로 하는 

추리소설 '불암산 살인사건'을 집필(?)하기 위한 자료 조사를 하느라 캠프장 

평면도와 주변 지도를 그리고 저녁마다 일기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날도 사람들이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가을 연주회 곡이 드보르작의 '신세계'

였기 때문에 파김치가 되도록 연습했다.) 술을 마시는 사이 좀 떨어진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본과 1학년 후배인 은영이가 곁에 와 앉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은영이는 staire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근데... 오빠가 반바지 입으신 거 처음 봐요..."

무슨 소리? 매년 여름 캠프에서 반바지 차림이었는데... 

staire의 다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은영이의 시선이 너무 짙은(?)것같아 저도 

모르게 다리를 오므렸다. 

"쬐끄만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자신의 다리를 다시 내려다본다. 뭐가 묻었나? 그럴 리가 없지. 저녁 먹고나서

샤워를 했는데... 그날따라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staire가 양말을 신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간단한 슬리퍼... 도대체 특이한 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너무 굵다는 걸 제외하면) 다리를 가지고...

후배 여학생으로부터 그런 농염한(?) 시선을 받아보긴 처음이라 일기장을 덮고 

일어서고 말았다. 

서울에 돌아온 후 정신과 책을 뒤적이며 은영이가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은영이가 staire의 반바지

차림을 그때 처음 보았을 리가 없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착각이 분명한데 그 착각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는 전혀...

staire는 한 번 일어난 의문을 쉽게 달래어 가라앉히지 못하는 기질이라 가을 내내 

그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늦가을에야 그 일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을 붙일 수

있었다.

그 이듬해 여름, 캠프장인 양평에 이틀 늦게 가게 되었다. (Project 때문에...)

마지막 날 밤, 술을 마시다 지쳐 잠시 로비에 나와 앉았다. 마침 은영이가 먼저 

나와 있었기에 그 날의 반바지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되었다.

"넌 그 날 내 다리를 처음 본 게 아냐. 그렇지?"

"예, 아무래도 그건 착각이에요. 제가 그걸 말하는 순간 착각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왜 그런 느낌을 받은 걸까 하고 계속 오빠의 다리를 보고 있었는데...

모르겠어요."

"네가 내 다리를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바람에 얼마나 쑥스러웠는데..."

"헤헤..."

"난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몇 달동안 이 책 저 책 찾아보고 생각했어."

"그래서 알아내셨어요?"

"나름대로... 그게 정답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들어보겠니?"

"예..."

"남자든 여자든 이성의 맨 다리를 보면서 erotic한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하겠지.

내 다린 뭐 별로 멋있게 생기진 않았지만..."

"......"

은영이는 얼굴을 붉혔지만 수긍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 캠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다리를 드러내 놓고 

있었거든. 그런데 넌 내 다리에 주목을 한 거야. 왜 그랬을까?"

"그날따라 좀 특이해 보였어요."

"그랬을거야. 그 이유를 알겠니?"

"글쎄요... 평소와 좀 달랐다는 것밖에..."

"지금과 비교하면?"

은영이는 맞은 편에 앉은 staire의 다리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역시 반바지 차림...

"... 지금은 안 그래요. 그날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에요."

"그렇겠지. 내가 맞춰 볼까? 그날 넌 내 다리가 평소보다 좀더 '적나라한' 느낌 

아니었을까?"

"맞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근데... 이상해요. 그 때의 반바지가 지금 입고 계신

것에 비해 짧다거나 더 야한 것은 아니었던 것같은데..."

"그날과 다른 점... 모르겠어? 큰 차이가 있는데..."

"......?"

"지금은 양말에 운동화를 신었지만 그땐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지."

"... 생각나요. 그랬던 것같아요. 하지만 맨발... 그걸 왜 전 반바지 차림을 처음

본다는 식으로 느꼈을까요?"

"너무 프로이트적인 설명일지 모르지만... 긴 바지에 비해 반바지 차림은 좀더 

'야한' 느낌을 주거든. 양말을 신은 발에 비해 맨발도..."

"맞아요. 근데 스타킹을 신은 발이 좀더 야해요..."

"그런가... 하여튼... 넌 그날 내 맨발을 본 거야. 난 양말을 신지 않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아마 넌 내 맨발을 그날 처음 본 거겠지."

"이제 분명하게 생각나요. 그날 이후로도 오빠의 맨발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뭔가 다르다. 평소에 비해 좀 적나라한 차림이다...'라는 느낌을 받은 

거야. 하지만 그 이유가 맨발에 있다는 걸 놓치고 만 거지. 아마 좀 당황했을지도 

몰라. '내가 저 선배의 다리에 대해 이런 특별한 느낌을 가질 이유가 없는데...'라는

정도의..."

"......"

"넌 결국 그 '적나라해 보이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선 엉뚱하게도 내 다리가 평소에

비해 더 야하게 보이는 게 반바지 때문이라고 단정한 거야. 물론 그런 식으로 논리를

갖고 추론한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선 오빠의 반바지 차림을 처음 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곧 들긴 했지만... 그 다음부턴 모든 게 혼란스러워졌던 거에요."

"하하... 정신과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을 이런 데에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이제

모든 게 시원스럽게 설명된 셈이지?"

"예, 근데... 실험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요. 잠깐 양말 좀 벗어보시겠어요? 얼마나

더 야해 보이는지..."

"어어... 안 돼, 그러지 마..."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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