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6시21분20초 KST 제 목(Title): [다시 쓰는 글] 터키의 미녀 Quid tum si fuscus, Amyntas... (아민타스여, 살색이야 검은들 어떠리...) - Vergilius 앵그르라는 화가가 있다. 미술에 문외한인 staire로서는 뭐 그 이름이랑 유명한 몇몇 그림들을 본 적이 있다는 정도지만...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은 '오달리스크'이다. 오달리스크가 뭐냐고? 터키의 sultan들이 데리고 사는 후궁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그의 나체화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오달리스크 그림들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림을 보면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진다. 그의 대표작인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등을 보이고 반쯤 기대어 누운 오달리스크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면서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인데 물론 나체니까 등의 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 자세는 이미 해부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자세인 것이다. 뭐... 상상으로 그린 그림은 값어치가 없다거나 하는 우매한 주장을 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여기까지의 결론은 앵그르는 모델 없이 상상만으로도 그림을 그렸다는 정도. 이제 그의 오달리스크를 좀더 자세히 뜯어보자. 터키의 미녀인 고로 커피색의 탐스러운 피부를 가진 거야 당연하지만 그 눈매, 콧날, 뺨... 어디를 보더라도 도저히 동양인의 얼굴이라고 볼 수 없는 형상이다. ...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요즘처럼 외설 문화가 발달한 것도 아니고 동서양 문화의 교류가 활발하던 시절도 아니니 앵그르로서는 동양인의 나체를 구경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양인 여자를 그리면서도 피부색만 동양인처럼 칠해 놓고서 '오달리스크'라고 부른 것이다. 그렇다고 앵그르의 그림에 대한 무슨 흠을 잡자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림이 현실 세계의 복제품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우기 staire에게 미술 평론을 할 만한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문제는 어째서 서양인 아가씨의 나체를 그리면서도 '오달리스크'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점이다. ... 그 시대에는 나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던 거다. 물론 그리이스 신화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나체화는 허용되었지만 다비드나 앵그르의 그리이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늠름하고 강건한 나체다. 같은 시기의 고야 또는 들라크로아에서 볼 수 있는 에로틱한 나체는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다. 하물며 Renoir 풍의 농익은 나체는 더더욱 아니다. 앵그르의 '아이네아스를 읽는 베르길리우스'를 보라. 거기서 볼 수 있는 나체는 돌덩이와 같이 차갑고 딱딱할 뿐이다. 그렇지만 같은 앵그르의 그림이면서도 '오달리스크'를 그린 그림들에는 따뜻한 숨결이 있고 화사한 관능미가 엿보인다. 궁여지책... 에로틱한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동양인을 소재로 했다는 구실을 붙여 비난을 피하려는 궁여지책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유럽 풍속 비평은 동양인의 나체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거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위험한 논리가 숨어 있다. '사람의 나체는 부도덕하지만 소나 말이나 개나 고양이의 나체는 괜찮다. 그리고 흑인이나 동양인의 나체도...' 이런 연유로 앵그르는 수많은 가짜 오달리스크를 그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 뿌리 깊은 caucasian ego 때문에...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