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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ellen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3시51분41초 KST
제 목(Title): [퍼온 글] 5. 마취과 이야기.

마취과 이야기                                09/30 22:05   140 line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0년 8월  나는 마취과의 인턴으로  가게 
되었다. 7월을 내과  중환자실에서 30일 간 계속 당직이라는 상상을  초월
하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보내었던 나는 그 감옥살이와도 같았던  중환자
실에서의 근무를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뻐 날뛸 지경이었다.  몸도 
마음도 한 달 동안의 고생 끝에 팍삭 삭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마침내 말년에 진정한  자유를 찾
은 빠삐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마취과에서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다소 긴장은 되었지만 지금까지  겪은 
일에 어찌 비하랴! 마취과에서의 일에 대한  간단한 orientation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감격스럽게도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에나!  이런 
별천지가 밖에 있었다니! 한달간 거의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더니만 무
슨 시한부 인생 사는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
였다. 특히나  길 가는  여자들이 왜  이리 죄다  예뻐 보이는지...  헤벌
레... 침 겔겔...(흠, 흠, 체통을 지켜야지...)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마취과에서의 생활이 시작 되었다. 우리  인턴
들의 임무는  주로 수술 도중에 환자  곁을 지키면서 환자의 혈압과  맥박 
수 등 상태를  계속 살피는 것이었는데 인턴에게 맡겨지는 수술이란  대개 
별 문제가 없는 수술들이라 사실은 무척이나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야 약간 긴장하게 되지만 순조롭게 수술이  진행되고 환자의 상태가 
안정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서서히 긴장이 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
심은 금물이다. 긴장이 자꾸 풀리려는데 억지로 긴장하는  일도 꽤나 힘든 
일이다. 그러다 보니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 유일한  낙은 점심 시간이다. 
커다란 수술장에서 일하는  마취과 인턴과 전공의가 여러 명이다 보니  각
각 원하는 식사를  시켜 놓아도 언제 그  식사가 왔는지 알 도리가  없다. 
따로 점심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눈치껏 시간을  내어 잠시 먹고 
또 일하러 가야하는 판국이다. 그래서 밥이 배달된 것을  제일 먼저 본 사
람이 수술장내 방송을 내어 준다. 그 방송의 내용이란  것이 좀 해괴한 것
인데, 예를 들면 "마취과, KL, KL..." 또는 "마취과,  CL, CL..." 이런 것
이다. 무슨  소리인지 남들이 들으면 전혀  해독이 안되겠지만 알고  보면 
참 한심한  소리다. KL은 Korean lunch,  즉 설렁탕, 김치 찌개  등등이고 
CL은 Chinese  lunch, 즉 짜장면, 짬뽕등을  말하는 것이다. 방송이  나면 
각자 자기가 시킨 음식이  왔구나 하고 알게 되고 그 후로는  호시탐탐 틈
을 노리다가 잽싸게  가서 먹어치우는 것이다. 별 희안한 인간들  다 보겠
다고 할른지 모르겠지만, 점잖은 체면에(?) 방송에다  대고 "아무개야! 빨
랑와, 짜장면 불어!" 할  수는 없질 않는가? 이런 생활을 하다보면  밥 먹
는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끼니  해결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이며 엥겔 계수가 무척 높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밥 먹는  속도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았던  나는 덕택에 밥 먹는  속도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뛰는 놈 위엔 
또 나는 놈이 있더라만...) 지금도 엔간하면 같이 밥  먹는 사람을 기다리
게 하는 일이  없는 편이다. 남들이 보면 '쯔쯔... 얼마나  없이 자랐으면 
저렇게 허겁지겁 먹을까?'하면서 연민의 정을 느낄런지 모르지만 말이다.
  헌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기만 하면  흠씬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이 온 몸이 녹작지근하고 나른해서  잠시 자리에 누
었다 싶었는데 눈을 떠 보면 어느새 다음 날  아침인 것이다. 처음에는 그
저 지난 달의 피로가  아직 안 풀려서 그러려니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제 
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하고 고민하기  시작
했다. '드디어 내 몸이  뭔가 잘못되버린 거야! 나 오래 살고  싶은데, 흑
흑...' 헌데 이상한 것은  나와 같은 증세를 느끼는 인턴이 또  있다는 사
실이었다. 곰곰 생각하던 끝에 드디어 나는 답을 찾아  냈다. 마취 기계에
서 나온 마취가스는 관을 거쳐 환자의 숨을 통해  폐로 들어간다. 그런데, 
환자가 내쉰 숨은? 내쉰 숨은 어디로 가지? 내쉰  숨에도 마취가스는 섞여
있다. 환자가 내쉰  숨이 나오는 관을 scavenger라고 하는 마취가스를  흡
입하여 처리하는 관에 연결하여 빠져 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을 모른채 놔
두었기 때문에 그  마취가스는 고스란히 수술장 안으로 새어나왔고 그  대
부분을 바로  옆에 있는 내가 마셨던  것이었다. 헥... 완전히 마취  당한 
채로 살았었군! 연결을 올바로 하여 마취가스가 새지  않도록 한 후부터는 
몸 상태가 거짓말처럼 가뿐해졌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기를 의사들이 무척 술을 많이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들 전체를  술꾼의 집단으로 매도하지
는 말았으면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잠시 즐기기 위해서,  친구들
과의 시간을 위해서 '술을 마실' 뿐이지 정말로 '술에  먹히는' 사람은 실
제론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젊은 혈기에 기분  내다 보면 때론 과음하
기도 하는 법, 의사들은 대부분 술과 일이 얽힌  웃기는 에피소드를 한 가
지 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는 뻗을 지경으로  밤새 술을 퍼 마
시고도 다음 날 아침 늠름히 일어나 맡은 바  임무를 완수했노라는 무용담
도 있고,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 알콜 솜에서 나는 알콜  냄새 때문에 화
장실을 들락거리며 껙껙  토해가면서 일을 했다는 가련한 이야기도  있다. 
(불행히도 후자는 내  이야기다.) 그 때 같이 마취과에서 일했던  동료 인
턴 가운데 '까치'라고 불리우는 친구가 있었다. 왜  그가 까치라고 불리는
지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현세 만화에 나오는  까치 오혜성하고
는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데... 아마도  그의 성이 '조'씨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가 아닐까?  (이해가 안되신다고요? 그럼 성이랑 이름이랑  붙
혀서 불러보시면... 에구, 고운 말을 씁시다!) 어느 날  그는 저녁에 술을 
진탕 마셨다. 기분 좋게 마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다음 날 출근하여 수술
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날 마신 술이 탈이 난 것이다. 술 마셔본  사
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과음한 다음 날의 숙취란  정말 지독한 것이다. 
'난 왜 이럴 줄 알면서 술을 마셨을까? 멍청한  놈!'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빠개질 것처럼 아픈  머리를 쥐어 뜯게 되고야 만다. 좀  일어나서 움직여 
보려면 하늘이 노래지면서  뱅뱅 돌고 속에선 구역질이 올라온다.  우리의 
불쌍한 까치군도 뒤집히는 속을 억지로 참느라 식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
었다. 하지만 환자를 내팽개치고 갈 수는 없질 않는가.  애타게 사람을 불
러 대신 자리를 지키게  하려 하여도 마침 손이 모자라 아무도  여유가 없
는 것이었다. 도저히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던  까치군은 마침내 최후의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절박한 순간에  혹자는 이를 악물고 토하
면 국물만 빼내고  건데기는 도로 먹으면 되쟎냐고도 하지만, 츳...  세상
에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디 있는가. (에구  더러워!) 깨끗해야만 할 
수술장 바닥에 오물을 토해서 냄새를 진동케 할 수는  없는 일, 까치는 궁
리 끝에 쓰고 있던  수술 모자를 벗어서 용건을 처리하고는 시침  뚝 따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수술이 끝나서 수술장에서 환자를  데리고 나갈 때
에는 어느 틈엔가  멀쩡하게 수술 모자도 쓰고 있었다. 아무도  환자 머리
에 씌워  놓았던 수술 모자가 온데간데  없어진 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앞으로 수술장에도 비행기,  고속버스, 여객선처럼 비닐 봉지를  비치하면 
어떨까?
  한 가지만 더 웃지 못할 일화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직접 겪은 이
야기는 아니고 동료  인턴이 경험했던 이야기다. 정형외과 수술에  들어가
게 되었는데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척추 마취만을 하였다.  다리 부위의 
수술이었으므로 하반신의  감각만 마비시키면 충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환자는 수술 부위의 통증은 전혀 못느끼지만 의식은  말짱한 상태였다. 헌
데 수술을 하다 보면 출혈이 생기기 마련이고 지혈을  위해서 흔히 사용되
는 방법이 Bovie라는  상품명으로 불리우는 전기 소작기로 혈관을  지져버
리는 것이다. 그러고 있노라면 당연히 불고기 냄새, 아니  비계 태우는 역
겨운 냄새와 연기가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수술을 시작할 즈음에는  불안
한 나머지 주위에 신경을  전혀 쓸 수 없었던 환자가 조금  진정하게 되자 
이번에는 코를 자극하는 야릇한 냄새가 궁금해졌고  환자의 머리맡을 지키
고 있던  우리 동료 인턴에게 물어  보았던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죠?" 에... 또... 마... 이럴 땐 뭐라고 이야기  해 줘야 하나. '댁의 
뼈와 살이 타는 냄새요.'  라고 말해 줘야 하나? 그는 수술 동안 내내  환
자의 주의를 딴 곳으로 돌리려 온갖 농담을 쥐어  짜내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마취과에서 의사로서 내가 배운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기관삽관(氣管
揷管: intubation)과 기도의 확보 기술이다. 숨울 쉬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환자가 숨 쉴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으로 기관 삽관을 하였을 때의  그 짜릿
한(?)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취과에서의 일도 어느  정도 손에 익
어가던 어느 날, 마취 유도 (induction)을 하던 수석  전공의가 나에게 후
두경 (laryngoscope: 기관삽관  시 쓰이는 도구)과 E-tube  (endotracheal 
tube: 기관에 삽입하는  관. 이를 통하여 호흡하게 된다.)를 넘겨  주었을 
때의 그 팽팽한  긴장감이란! 후두경으로 조심스럽게 환자의 혀와  후두개
(epiglottis)를 젖힐 때 나는 거의 무아의 경지였다.  그리고 모습을 나타
낸  눈이 시리도록  하얀 빛깔의  성대 (聲帶,  vocal  cord)! 그  사이로 
E-tube를 밀어  넣고 그것을 통해 환자의  양 폐로 공기가 불어  넣어지는 
소리를 청진기로 듣는 것은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히
도 그 뒤로는 그런 멋진 기분을 느껴 볼 기회는 없었다. 그  후에 내과 의
사로서 내가  기관삽관을 하는 때는 거의  언제나 절벽 끝에 매달린  듯한 
절대절명의 순간들이었으니까.  그 매 순간마다  어느 목숨은 이  쪽으로, 
다른 목숨은 저 반대 편으로, 각기 운명의 길이 갈리워졌던 것이다.
  마취과라는 곳은 참으로  음지에서 빛을 받지 못하는 곳인 것  같다. 환
자들은 그들을  수술해 준 의사에게는  고마워해도 그들이 무의식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을 보살펴 준 마취과  의사들의 노고를 생각하지는  못한다. 
헌데, 아무리 최선의 주의를 다해도 언젠가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
번에는 모든 비난이  마취과 의사에게 쏟아진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들은 
언제나 '잘 해야 본전' 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
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내과 의사가  되어 별로 
마취과와는 인연이 없는 일들을 하게 되어버렸지만  환자가 스스로를 전혀 
지킬 수 없는 무의식  상태일 때 환자를 지켜야 하는 마취과  의사의 일이
란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우
리가 편안히 쉬고 있을 때,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는 
누군가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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