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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ellen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3시49분48초 KST
제 목(Title): [퍼온 글] 4. 미생물학 이야기.

미생물학 [이야기].. 그해 6월                 04/02 22:51   103 line

   의과대학 2학년 시절에 우리는 세균들과 한학기를 보내었다. 의대에서
의 공부라는 것은 능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고 지식을 스스로 추구해 나
가려는 노력보다는 엄청난 양의  단편적 지식의 홍수 속에 매몰되어 자칫 
허우적거리며 간신히 따라가는  양상을 띄기 쉬운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
의 학생들에게서 그러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창조적, 탐구적으로 공부
하는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런 중에서도 미생물학 실습은 자신이 뛰어나고, 똑똑하며, 창조적인 능력
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학생들에겐 좋은 도전의 기회였다. 미지의 미
생물이 5-6 가지 섞인  혼합물을 주고 어떤 세균들이 섞여 있는지 스스로 
알아보도록 하는  실험이었다. 늘 하던대로(!) 남의  리포트를 베낄 수도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이 그저 배웠던 지식들을 총동원하여 (말도 안되
는 꽁수를 포함하여) 찾아나갈 밖에.
   의과대학에는 그래도 남들보다 똑똑하다는 소리 한두번 못들어본 사람 
없는 터에 - 조금은 불행한 이야기처럼 들릴른지 모르지만 - 각박한 경쟁
속에서 지내다 보면 각자의 자리매김이 어느 정도 되기 마련이다. 의과대
학 본과에 처음 진입하였을  때가 생각난다. 이젠 거의 인간적인 삶을 포
기해야 하는가보다 하고 비장한(?) 결심을 저마다 한 탓인지 도서관은 어
두컴컴한 꼭두새벽부터 자리를 잡을 수 없었고 심지어 강의실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까지 벌어질 지경이었다. 학생 수가 많기 때문에 항
상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 받았었는데, 거기에는 '요단강'이라는 것이 있
었다. 뒤쪽 4분의 3정도 되는 지점에는 강의실을 가로지르는 통로가 있었
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요단강이다. 자리가 한번 이 요단강 건너 뒷쪽으
로 밀려가면 영영 돌아오질 못한대나... 이런 괴상한 전설도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의과대학의 새내기들은 죽어라고 일찍 와서는 조금이라도 
앞자리를 잡으려고 지금 생각하기에는  참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자리 쟁탈
전을 벌여야만 했던 것이다. 헌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언제부터인가는 각자의 자리가 정해지고 뒤에 앉는 사람들은 혹시 어쩌다 
일찍 오더라도  일부러 뒤에 가서 앉게  되는것이다. 그래서 요단강 이쪽 
편의 번잡스런 세상을 피해  일부러 요단강 건너 멀지감치 떨어져 망원경
으로 (요단강 건너편에  앉으면 너무 멀어서 아무것도 안보인다.) 세상을 
관조하며 때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졸면서) 수업시간을 보내는 이
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미생물학 실습 시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투지에 불타는 일부 극렬(?) 
학생들은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시험관을 붙잡고 씨름하는 동안에 다
른 일부  학생들은 도서관 앞에서 광합성(?)을  하며 잡담을 즐기고 있었
다. 우리는 이들을 '도서관  수비대'라고 불렀다. 이들의 사명은 동료 학
생들이 도서관으로 침입(?)하는 것을 결사 저지하고 안에 들어가 있는 학
생들도 밖으로 유인해 내는  등 언제나 도서관앞에 포진하고 도서관을 끝
까지 사수하는 것이다.
   나는 양극단중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는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주
어진 5가지의 세균중  4가지를 찾아내는, 비교적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어 
흐믓한 가운데 실습을 마치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세균들
의 분류는 무척이나 복잡한  것이지만 가장 해묵은, 그리고 간편한, 그러
면서도 매우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염색성에 따라 그램 양성균과 그램 
음성균으로 나누는 것이다.  (별로 흥미는 없으실터이니 더이상 설명하지 
않겠음. 모르는 분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시길...) 비교적 단순한 그램 양
성균들에 대한 실습이 끝났을 뿐이었고 이제부터 그램 음성균들과 대적해
야할 차례였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균들로 인해 생기는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적인 세균들과 친해져야만(?)했고 
애완동물 사육하듯이 정성스레 세균을 키워야했다. 말하자면 그들을 배불
리 먹여주고, 입혀주고,  등 따순데서 재워줘야했다. 그램 음성균에 대한 
실습이 시작되자  시름시름 앓는 병든 닭같은  모습의 학우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표현이 좀 과했나?)  하도 세균들을 끼고 살다보니 정말로 이
들 세균들 때문에 설사를  하는 학생들까지 생긴 것이다. 나는 워낙에 밥
통이 튼튼해서인지 끄덕  없던데... 그래도 우리들은 대장균, 녹농균, 클
렙실라, 프로테우스 등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는 세균들이 배지 
위에 만든 알록달록한  집락의 아름다움(?)에 황홀해했다. 세균 덩어리를 
보고 즐거워하는 이 정신나간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해야할른지?
   1987년 6월이라  하면 무엇을 생각하게  되시는지? 아무리 충격적이고 
엄청난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은 희미해지고 바래기 마련이다. 하
지만 87년 6월은 역사적인 기간이었을 뿐 아니라 의대생이었던 나의 기억
속에도 아직은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이다. 이 땅의 꽃다운 젊은이의 희
생에 나라 전체가 선끓기 시작하였고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거
리를 가득 메웠다. 의과대학이란 무풍지대에도 풍파가 일기 시작하였다. 
   의과대학생들이란 시국이나 정치 문제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스스로
를 간주하며, 또 관심도 별로  가지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
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그런 무지에 대해 지극히 당연하게까지 생각
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라는 사람들이 사회의 기득권 층에 속하기 때문일
까? 정말 그러한지도 의문일진대,  설사 그러하다 하더라도 그 집단에 본
격적으로 속하기도 전인 의대생이  그 집단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도대체 왜인지. 나  자신도 무지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영락없는 의
대생이었지만 의대의 그런  '아무 생각없는', 세상과 격리된 듯한 분위기
는 웬지 거부감을 주었다.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답답할 만큼 
보수적이었고, 진보적이고  생각이 트여 배울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내내 내  머릿 속을 지배해 왔었
다. 하지만  87년 6월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램 음성균에 대한 
미생물학 실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마침내는 2학년들의 집회가 
열렸고 갑자기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도저히 그러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친구들이 일어나 발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야합니다.' '사람들에게 지금이 의대생마저도(?) 거리로 나서는 세상이
란 걸 보여줍시다.' 그것은  흔히 매도하듯이 일부 극소수 운동권 학생들
의 (의대에도 운동권 학생은 있다!) 선동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아
니, 외려 진보적인 것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던 학생들의 열변에 
우리는 감동받았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뀐하는데  이는 연건캠퍼스 내의 
의대,  치의대, 간호대의 거의 
대부분의 인원이다. 요즈음 서울대 관악 캠퍼스의 시국 집회에 모이는 인
원이 고작 수백명이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수업 거
부는 당연히 뒤따르는 것이었다.  그 동안에 돌보는 이 없는 가련한 우리
의 세균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썩어버렸겠지 뭐.) 이 세균들을 긁어모아 
전경들과 세균전을 하자는 우스갯 소리로 누군가가 모든 이들을 박장대소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뒤에 일어났던 일련의  정치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우리들의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최루탄의 매캐한 내음 속에서 돌맹이 한
번 던져보지 못했다면  이 땅의 피끓는 젊은이라  할 수가 없다던 어두운 
시대를 살아오면서 간신히 캠퍼스 안에서  데모 한 번 한 것이 자랑일 수
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저 '나도 그랬었지'하는 낭만적인 한 때의 추
억거리라 한다면 피흘리고 목숨까지 바친 열사들의 영혼에 대한 모욕이리
라. 하지만 그나마도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부끄러울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때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세균들과 이제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끔 달라진 우리의 처지만큼이나, 달라졌다고
들 떠들어대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다시 한번 그때를 생각
한다. 잊지 않으리라.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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