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5년04월24일(월) 13시41분08초 KST 제 목(Title): [여행기 VII] 갈릴레이의 무덤 앞에 서서.. 갈릴레오 : 나는 `디스코르시'를 완성했네. 안드레아 : 뭐라구요? "새로운 학문의 두 방향 - 신과학대화" 말씀인가요? 여기서요? 갈릴레오 : 오, 저자들은 내게 종이와 펜을 준다네....(중략)....그들은 페이지 마다 거두어 잠그어 놓고 있어. 그래서 결국, 난처한 결과가 안 일어 나도록 나를 감호하는 셈이지. .......(중략)....... 안드레아 : "디스코르시"가 사제들의 수중에 있다니! 암스테르담과 런던, 프라하 에서는 그것을 갈망해 마지 않는 판에! .......(중략)....... 갈릴레오 : 나는 여섯달 동안이나 아무도 몰래, 좀 밝은 밤이면 마지막 가닥의 빛을 이용해 복사본을 하나 만들었네. 안일을 택했던 내 생의 비참한 여생을 거기다가 걸은 셈이지.............(후략)....... 원래 란다우의 여행계획에 피렌체(플로렌스) 같은 것은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다. 훨씬 더 삐까번쩍하고 볼거리 많은 도시들이 즐비하다던데 안그래도 모자라는 시간에 피렌체 같은 도시를 구경하고 앉아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로마로 오는 길에 도둑을 맞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근 일주일에 걸쳐 치밀하게 세웠던 계획은 이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고 나는 계획을 대폭 축소해야만 했다. 피렌체가 나의 여정에 끼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로마에서 가깝고 기차삯이 싸다는 이유에서 였다. (복잡한 사정 때문에 로마-피렌체 구간에서는 유레일을 쓸 수가 없었다.) 피렌체로 가는 열차안에서 이 도시에는 구경거리가 뭐가 있나 하고 여행안내서를 뒤적이는데...흠...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있고, 희대의 걸작이라는 다비드 상, 지오토가 설계한 두오모(대성당)도 있고.................. 그리고 제일 끝에 산타 크로체 교회에 가면 갈릴레이의 묘소가 있다는 말이 눈에 띄었다. 엇?! 갈릴레이의 무덤이 있어? 이게 왠 횡재냐? 그래서 란다우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도한장 달랑 들고 두시간을 헤멘 끝에 문제의 산타 크로체 교회를 찾아갔다. 장엄하고 호화로운 교회... 나 같이 불손한 무신론자마저 신앙을 가지고 싶게 만들만큼 멋진 예배당이 전면을 차지하고 그 바로 곁에는 한때 피렌체를 주름잡았다던 메디치 가문의 대공들 석상이 번쩍번쩍한 장식 속에 즐비하게 서 있고 입구 오른켠에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엄청난 인파를 끌어 모으며 (주로 일본인들과 미국인들이지만...) 인기리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출구에 바로 옆의 끝자리에 찾는 사람 하나 없이 갈릴레이의 묘소가 마련 되어 있고 그 위에는 자그마한 그의 대리석 흉상이 얹혀져 있었다. 바로 옆에서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서 나는 하마터면 못보고 지나칠 뻔했다. 그 무덤과 흉상 앞에 서는 순간....란다우는 완전히 감동에 푹 젖어들고 말았다. 사람은 정말 아는만큼 보인다고, 비록 그 대리석의 갈릴레오 상이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의 작품은 아닐지라도 누군가 갈릴레이의 일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의 작품 이었기 때문이다. 왼손에는 지구본 같은 둥근 구슬, 오른 손에는 그가 최초로 천구를 관측하는데 사용했던 망원경, 왼편에는 낙하의 법칙을 기술하는 그림, 받침대에는 목성의 4개의 위성, 그리고 말년에는 실명했다는 촛점없는 두 눈이 성당의 예배당을 향해 오만불손(?)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안드레아: ..(전략).. 선생님께서 다른사람이 만든 망원경을 베니스 의회에 팔아 넘기셨을때, 저는 열한살 이었죠. 그리고 저는 선생님께서 그 기구를 불멸의 용도로 사용하시는 것을 보았읍니다....(후략)..... 어쩌면...그 때가 내 여행에서 가장 곤란했던 때였기 때문에 내가 감정적으로 쉽게 흥분했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갈릴레이의 무덤 앞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묘한 감동에 휩싸였었다. 내가 처음 물리학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토록 나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의 묘지에 왔기 때문일까? 의학을 하라는 부친과의 불화 때문에 투신자살까지 생각했던 젊은 시절, (그 옛날에도 의사는 좋은 직업이었고 물리학자는 별 볼일 없었나 보다.하하..) 돈을 얻기위해 망원경을 자신의 발명품으로 속여 팔아야했던 장년기, (과학자가 연구비 타내기 위해 치사한 짓하는 것도 어쩜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군.) 마누라는 도망가 버리고 외동딸은 수녀가 되어버린 불행한 가정생활, 지나치게 혹사하는 바람에 말년에는 실명해 버린 두 눈, 그 유명한 종교재판과 죽을 때까지 연금되어 갇힌 몸으로 마감해야 했던 노년기, 그러면서도 자기 연구결과를 네덜란드로 빼돌려 몰래 출판했다는 일화.... (그 책이 앞에 나온 신과학 대화 인데, 근대 물리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갈릴레오 : 진실을 윗도리에 넣고 독일을 통과할 때 조심하게나.... 400년이라는 시간과 15000 km 라는 거리를 넘어서 나의 젊은 날에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한 인물을 대면하는 일은 그만큼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브레히트가 쓴 `갈릴레오의 생애' 라는 희곡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하니 어처구니 없게도 눈물이 다 나는 것이 아닌가.:) (갈릴레오의 생애 의 마지막 장면은 갈릴레이의 저서가 이탈리아 국경에서 몰래 반출되어 네덜란드로 넘어가는 장면 입니다.) 란다우는 갈릴레이의 묘소와 그 흉상이 너무 좋아서 20분이고 30분이고 하염없이 그 앞에 앉아 별별 상념을 다 했다. 나중에는 이상한 동양인이 계속 그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이 이상했는지 다른 관광객들이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고 지나가곤했다. 어느 책에 씌어있던 `돌덩이가 내게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 이란 구절을 나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갈릴레이의 묘소는 지금도 위대한(?) 예술작품 피에타 상과 호화로운 성당의 장식에 밀려서 교회당의 말석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아무도 찾지 않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고 오만한 표정으로 피렌체의 대공들과 교회당을 쳐다보면서 나처럼 드문드문 찾아오는 추종자(?)들을 반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른 명소들도 보아야겠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갈릴레이의 흉상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말했다. " 선생, 망할 거면 혼자 망하지 왜 나까지 이 분야에 끌어 들여서 같이 망하게 만드는 거요? 그래도 선생은 심심하지는 않겠소. 나처럼 수백년이 지난 뒤에도 당신이 좋다고 기를 쓰고 찾아오는 똘마니(?)들이 있으니까. " ^_^ * 이 글에 있는 인용은 모두 브레히트 가 쓴 "갈릴레오의 생애" 에서 나온 것임. landau 누가 나보고 한가지 삶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말안장 위의 인생을 고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