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aizoa (오월의첫날) 날 짜 (Date): 2002년 7월 29일 월요일 오전 01시 11분 57초 제 목(Title): 안경 사람들이 떠난 학교에서 나하고 둘이 게이커플처럼 매일 만나서 밥을 먹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이 60%의 남자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참 열심히 TV드라마를 본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를 본 이야기를 해주더라. 아내를 미워하면서도 이혼하지 않으려는 남편이, "이혼하면 애는 누가 키워요? 나는 애들 키우기 싫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 친구는 당장 TV박스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런 말하는 남편을 패버리고 싶었다고 한다. 칸트는 그의 책 어딘가에서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랑과 전쟁"에서의 그 남편은 아내를 수단으로만 대하고 있다는 데서 섬뜩한 비윤리가 있다. 하지만 목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사랑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도 아니고, 상대방이 주는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쾌락을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그 사람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대하는 일을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칸트는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라고 말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 일본인들이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라고 칸트를 잘못 읽는 바람에 칸트가 관념적인 사상가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한다. 나또한 칸트의 말을 오해했다. 칸트의 윤리학은 모든 현재가 과거의 조건의 결과라는 결정론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에게 자유로워야 할 의무가 있기에 책임과 윤리는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는 것은 필연이다. 외계는 나에게 조건과 작용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자유라는 의무와 같은 차원에서 나는 그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은 사례는 열거할 수 없이 많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이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다. 이 안경은 4년전 "스피노자의 렌즈"라는 가게에서 맞췄다. 그 가게에는 틈틈이 기타를 연습하고, 조경란의 <불란서 안경원>을 안경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재에 꽂아 두었던 어떤 아저씨가 주인으로 있었다. 친절한 안내로 나는 안경을 맞추었는데, 당시로서는 비싼 가격인 7만원을 지불했던 것 같다. 바가지썼다고 생각하고 몇년간 그 안경점을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손님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2년전 그 가게는 문을 닫았다. 싼 안경테라는 것이 한 해를 버티기 어려운데, 그 안경테를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참 정교하고 튼튼한 테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안경렌즈를 깎는 일을 직업으로 하여 돈을 벌고,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탄압을 피해 평생을 하숙생활하며 살았다. 물론 당대에 렌즈공은 첨단의 광학을 익힌 일급 엔지니어로 오늘날의 데이타 네트워크 엔지니어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가끔 그 <스피노자의 렌즈> 주인아저씨가 생각나고, 나의 오해가 미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