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4월17일(월) 06시48분36초 KST 제 목(Title): [오케스트라] '애국몬트' 사건 애국몬트가 뭐냐구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아시지요? 그리고 설마 '애국가'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시죠? 이 두 곡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 두 곡에 얽힌 애절하고도 괘씸한 어느 트롬본 주자의 이야기... 입니다. 혹시 오케스트라를 좀 아시는 분이면 의문을 품으실지도 모르죠. 에그몬트 서곡에 나오는 악기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 피콜로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트럼펫 혼 팀파니... 그렇죠? 트롬본은 안 나오지요? :) 1985년 의대 오케스트라 신입생 중에 트롬본을 하겠다며 들어온 정진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금관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혼과 트럼펫 선배들의 귀염을 독차지한 녀석. 이 때만 해도 트롬본 주자는 몇 년에 하나 들어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지금은 재학생 트롬본만 3명) 정진이가 악기를 시작한 지도 반 년이 흘러 드디어 가을 연주회... 정진이도 당당히 무대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애국가'였던 거다. (그 시절엔 5공 때라 그랬는지 하여간 연주회 때마다 애국가를 연주했다. 어느 해인가는 앵콜을 준비하지 못한 관계로 애국가 앵콜을 하는 바람에 청중들이 황망히 일어서야 했다는 믿을 수 없는 전설이... :P ) 그 해의 연주 곡목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모짜르트 교향곡 39번, 베토벤 교향곡 4번... 그러니까 애국가 이외엔 트롬본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고 악기 시작한 지 반 년동안 겨우 간단한 곡이나 간신히 불게 된 정진이에게 무얼 시키기도 무리였던 셈이다. 연주회 날, 보무도 당당하게 애국가 연주를 마친 정진이는 예정대로라면 애국가가 끝나는 즉시 무대에서 나가도록 되어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앉아서 버티는 거다. 옆자리에 있던 트럼펫 형준이가 눈치를 주었지만 정진이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다시 박수를 받으며 들어온 지휘자... 서곡을 시작하려다가 놀라서 지휘봉을 떨어뜨릴 뻔했다. 악보에도 없는 트롬본이 멀쩡한 얼굴로 앉아 있었으니... 어쨌거나 연주는 시작되었고 청중들 중에 '저기 트롬본이 뭐하러 앉아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은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사실 별 문제 없이 음악은 흘러갔다. 정진이는 앉아 있을 뿐 무슨 소리를 낸 건 아니니까. 다만... 이 녀석이 가만히 앉아 있질 않고 악기를 들었다 놨다 슬라이드를 넣었다 뺐다 하며 연주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거다. 연주를 마친 후 이태원 '세븐'인가에서 가졌던 애프터... '임마, 의대 오케스트라에서 겉멋 부리는 건 중죄 중의 중죄라는 거 알아, 몰라?' '도대체 왜 그랬니? 트롬본 안 나오는 곡에 끼어 앉아서 뭐 한 거야?' '사실은요... 여자친구에게 연주 보러 오라고, 나도 한다고 있는대로 자랑을 했거든요. 그런데 애국가만 달랑 하고 들어가자니...' 귀여운 후배(그것도 금관 파트의 총애를 받는 유일한 트롬본 후배)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분위기는 꽤 누그러져 정진이는 가벼운 징계(폭탄주 세례를 받고 새벽 1시를 못 넘기고 전사하고 말았다)를 받고 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부터 다시는 애국가를 연주하지 않았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