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4월10일(월) 02시17분36초 KST 제 목(Title): 두견새.. 접동새.. 소쩍새.. 그리고 진달래 생을 사랑하면서도 생과 심각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것은 죄일지도 모른다. - E. 케스트너 우리의 시, 우리의 노래에서 흔히 발견되는 새...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어느 새보다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접동새, 즉 두견새다. 이 새만큼 깊은 한을 품은 동물을 나는 달리 본 적이 없다. 두견새가 나오는 시를 읽다보면 세 가지의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두견새에 빗대어 표현된 우리의 마음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첫째, 두견새는 밤에 운다. 우리의 노래를 뒤덮고 있는 것이 낮보다는 밤의 정서임은 청구영언이나 해동가요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역연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옛 노래들은 태양보다는 달, 낮보다는 밤, 하늘보다는 땅, 남성보다는 여성의 시인 것이다. 밤에 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에 날아다닌다.'라고 말했을 때 헤겔이 의미하고자 한 것은 물질적, 육체적, 활동적 이미지로 표현될 수 있는 낮보다는 밤이 되어서야 절대 정신의 작용이 시작된다는 의미. 낮은 물질과 흐드러진 감정의 세계이며 밤은 가라앉은 지성의 예리하고 투명한 작용을 위한 무대인 셈이다. 우리의 두견새가 밤을 낮삼아 우는 의미는 헤겔의 부엉이와 사뭇 다르다. 낮은 오히려 분주한 일상 속에 묻혀 감정이 절제되는 시간. 밤이 되어 방으로 돌아온 후에야 두견새는 목청을 가다듬는다. 불을 끄고 곁창문을 열어 달빛을 받아들일 시간에 우는 새... 그것은 오싹하도록 냉철한 지성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흐트러진 정서를 실어 목이 터지도록 퍼질러 우는 새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견새의 비밀 중 극히 일부, 아주 사소한 일부에 불과하다. 둘째로, 두견새는 한을 울음에 싣는다. 서양의 시인이 나이팅게일의 밤노래를 들으며 무어라고 표현하는가? 'forlon' (쓸쓸하다) 또는 'plaintive song' (비탄의 노래)라는 말로 묘사하고 있지만 우리의 노래 속에서 두견새의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 소리는 곧 응결된 한이며 단순히 슬프다거나 하는 몇 마디 말로 표현될 성질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두견새의 비밀을 푸는 아주 사소한 열쇠에 불과하며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두견새는 봄에 우는 새라는 점이다. 어째서 우리의 한을 담은 두견새의 노래는 쇠락의 계절인 가을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 일어나는 봄에 우는가? 다시 우리의 노래를 들추어본다. 답은 그 가운데에 숨어 있다. 우리의 한은 말없이 돌아서서 입술을 깨물며 잊겠노라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 그것이 우리 노래에 스며 있는 '한'의 비밀이다. 돌아선 카르멘을 칼로 찌르고서 모든 것을 버리고 마는 그런 류의 한은 우리에게 없다. 붙잡고 싶지만 님께서 화나시면 다시 '아니 올세라' 그냥 보낸다는 가시리의 정서는 언젠가 돌아올 그날에 대한 집착을 질깃질깃하게 안고 있는 것이다. 백사의 시조에서 보듯이 버림받았으나 눈물이라도 구름으로 띄워 '님 계신 구중 심처에' 비삼아 뿌려보고 싶은, 내놓고 매달리지 못할 망정 자신의 모습을 님께서 한 번이라도 더 기억하도록 떼라도 써 보고 싶은 것이 두견새의 울음이다. 돌아서도, 귀를 막아도 지울 수 없는 모습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그 저변에 깔린 것은 분명히 '절망'이 아닌 '희망'의 빛깔이다. 절망에서 발견되는 비장함을 넉넉히 뛰어 넘는, 그래서 결국 좌절되었을 때의 처절함이 한결 가슴을 에는 '희망'의 비장미를 거기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절망한 실연자는 서서히 잊는다. 언젠가는 감정이 희석되고 새 희망이 그 공허한 가슴을 채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단단히 움켜쥔 우리의 시인들은 언제까지라도 똑같은 목소리로, 아니, 오히려 날이 가고 밤이 거듭될수록 더 깊어가는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아아,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만해는 결코 '님은 떠났지만 나는 님의 행복을 빌어드리고 있겠습니다'라고 노래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유행가 'HAM'의 가사에서와 같이 '언젠가 내 품에 안길 그날을 난 매일 꿈꾸며' 지새는 것이야말로 두견새가 봄에 우는 까닭인 것이다. 두견새가 울고 간 자리에는 두견새의 눈물이 떨어지고 그 진한 눈물은 타는 듯 강렬한 핏빛의 진달래꽃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소월이 하필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겠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