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terraic (HeiSgOnE) 날 짜 (Date): 2000년 12월 9일 토요일 오전 05시 02분 13초 제 목(Title): 서울대에 실망해서 유학가다? 오랫만에 대학 신문에 들어가 보니 대학원미달 사태가 화제인 모양이다. 여러가지 분석이있는데, 그중에 가장 인기 잇는 것은 TEPS라는 무지 막지한 영어 시험이라는 분석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의 낙후한 교육환경에 대한 실망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서울대 출신 박사의 취업률이 낮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고로 사람들은 차라리 유학을 선택하고 있다.. 라는 말이다. 석사만 마치고 박사는 외국이나 그런 곳으로 간다는 분석이다. 사실 그 기사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먼저 연구중심대학 이라는 양의머리와 관료와 행정을 위한 대학이라는 개의 고기.. 연구 중심대학이면 연구기능이 중심이 되야 하는데, 서울대 의사 결정이 언제 그런식으로 한적있었나? 사실 연구 중심 대학이 뭔지에 대한 상도 없지 않는가.. 그냥 교육부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늘 이번 정부 만은 국민을 위해 봉사 하는 정부인 훌륭한 정치교수들이 같이 떠들어 나서고, 언론과 궁합을맞춰보고는 마치 정부가 시키는 대로 안하면 망할듯이 난리를 쳐대지 않는가? 이번에 미국의 어떤 연구 집단이 서울대학이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프로그램이 나들 나라 보다 부족ㄷ하다 라고 했으니, 잘하면 프로그래밍이 교앙 필수로 내려 가게 될것이다. 학교의 의사 결정이 다 그런 식이다. 그러니 학교 발전이 될리 있던가? 도서관도 문제다. 도서관 예산이 문제가 아니라, 도서관의 기능을 지금 상태로 방치할 것인가의 문제다. 서울대 도서관의 기능? 솔직히 말해서 고시생 연구실 기능과 도서 보관기능 말고 또 다른거 잇던가? 아 물론 매년 하릴 없는 공사로 우리나라 건설 업체를 먹여 살리는 기능도 한다. 과연 그게 대학 도서관이 할일이던가? 아니면 동네 구립 도서관이 할일이던가? 학생들에 대한 처우는 정말 참혹스러운 처우다.. 대학의 연구 기능은 연구를 전담하는 교수와 대학원생들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고, 이들에게 자원이 집중될수 있을때, 효율적인 자원의 사용은 가능하다. 자 서울대학을 들여다 보자.행정 직원들은 과다 하다 못해 출근하는 것이 큰 흐름을 이룰 정도 이지 않은가? 누군가는 말한다. 그래서 구조 조정을 해서 직원을 줄이고.. 바로 그런 소리 하는 작자가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 당사자들이다. 실제 연구와 교육을 지원하던 말단 행정 인력을 줄이는 것으로 인력을 감축했다. 위에서 도장찍고 놀던 사람들은? 그 구조 조정을 집행 했고 오늘도 안녕하시다.. 그 위세는 대단도 해서 사실 단과대학의 학장급 교수들도 행정직원들에게 말을 잘 못할 지경이다. 관료는 영원하다! 그들은 늘 학생들을 관리의 대상인 철모르는 애들로 간주한다. 반말을 쓰고 욕지를 하는 것은 예사이고, 모든 행정적인 결정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한다. 학생 처우? 그런 말은 그들으 사전엔 없다. 사고가 나서 대학원생이 죽어도 거기에 대해서 총장이 사과한 적은 없다.. 장례식날 도망도 잘 친다. 그리고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되어 버린다. 대학인가 학생 도살장인가.. 우리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학생에 대한 생활비 지원? 학비 감면? 언론이 그렇게 들이 대기 좋아 하는 외국 사례까지 들어가면서 외국에서 학위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다라는 결론으로 끌고 갈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나라의 등록금 인상 정도를 보면 머지 않아 등록금만은 선진국이 될것이다. )그러나, 연구보다도 이번달치의 생활비가 걱정인 대학원생이 교수가 아무리 쥐어 짠들 좋은 연구 결과를 낼거라고 본다면 그것은 대단히 천진 난만한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앞에는 또한 다른 하나의 장벽 평등주의가 버티고 있다. 평등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까? 라는 철학 적인 질문이 아니라, 내가 먹으면 당연하고 남이 먹으면 불평등이라는 소아병적인 유치 찬란함이 그것이다. 그들의 대안 없음이 - 물론 대안은 있다. 지금 대로 우리에게만..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안된다... 왜냐 하면 나는 천재고 그들은 아니니까. - 그것이 철학적인 문제가 아님을 웅변한다. 그 평등의 논리를 전체에 대한 개별적인 경쟁의 도입으로 - 즉 국가가 어떤 학생에 대한 지원을 주고, 그것에 대해서 학생 개개인이 특정한 주제의 연구주제를 제출하고 이에 대해서 눈감고 봅는다는 식의 대안으로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 질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바보코리아에 대한 논란은 결국 그 논란의 주역들이 얼마나 바보 스러운 존재들인지를 증명하는 장을 마련해 주었다. 이런 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교육체계가 이원화아니 다원화 되어 있기는 하지만, 국가의 정책은 가장 중요한 방향타 구실을 하기에 국가의 자신의 자원을 어디에 쏟아 부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연구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절대 아니다. 교육은 100년지 대계이기 때문에 90년 정도의 시행 착오는 허용될수도 있고, 기초과학은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주 장기적인 심사 숙고가 필요하다. 아마도 대를 이어 심사 숙고만 할것이다. 왜? 한국의 관료들은 처음부터 그게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절반쯤 된다. 한국의 관료 선발 제도는 어떻게 하면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들을 자기만 아는 천하의 경쟁 기계로 만들수 잇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전문성을 갖춘 관료라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존재 할수없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관료는 관료이다. 두번째, 관료적인 분위기. 창의성의 말살과 조직에의 충성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세계 최대의 조직 폭력배 집단이 한국의 관료 집단이다. 물론 한국 최강의 조직폭력배 집단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 일보 라는 모씨의 주장에 대해서 대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조직 폭력배 사회에도 영역ㅇ 있고 - 마치 아프리카의 짐승들이 그렇듯이- 거기서 한국의 관료 집단은 보다 큰 계층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를 다시 학교로 돌려서 학교의 학부생 정원과다는 이미 도를 넘어선 문제다. 인구 3만이 넘는다면 이미 그것은 도시다. 왜? 우리에게 과연 그렇게 많은 학부생이 필요한가? 학부생들의 교양과 소양을 위해서 우리가 그 많은 소위 교양강의를 만들고 유지 하고 행정 인력을 쏟아 부어야 할까? 연구 중심대학으로 가자는 말과 다많은 선택의 기회라는 말은 여기서 서로 피할수 없는 정오를 향해 달려 간다. 학부생에 대한 자원의 배분을 위해서 대학은 그 자원을 연구에 투자 되어야 하는 것에서 뺄수 밖에 없다. 왜? 대한민국은 평등한 공화국이기때문에 특정한 대학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것은 안되기 때문에.. 자원은 제한되고 인구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고.. 멜더스의 논리는 최소한 서울대에 대한한 진싱에 근사 한다. 지금의 절만 이하로 단번에 줄여야 한다. 관료 기구의 기능을 엄격히 제한하고 주요 의사 결정에서 그들을 철저히 배제 해야 한다. 대신 학교의 연구 지원인력, 행정 지원인력이라는 실핏줄적인 존재들은 늘려야 한다. (한마디로 본부에서 게임 하는 아저씨들을 각 건물의방호워 및 학과 행정 조수로 일하게 하자는 말이다.) 학부는 줄여야 한다. 지금의 절반 이하로. 대학원생들에 대해서 학교와 국가는 급료를 제공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장학금이라도 늘려 줘야 한다. 물론 교육은 백년지 대계이고, 기초 과학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또 대한민국은 평등한 공화국이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필요할 것이고, 또한 말만 하다가 끝날 것이지만 말이다...... 물론 대학원이라도 미달이 되서 학생수가 덜 늘게 되었다는 것은 서울대 교육환경이 나아 질수도 있다는 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교수 1인당 학생수도 줄고.. 학생 1인당 장서 비율에도 변동이있고... ) 하늘로 향해 두귀를 사뿐히 들었지만 뽐냄이 없는 의젓한 추녀의 곡선의 곡선, 아낙네의 저고리 도련과 붕어밸 지은 긴소매의 맵시있는 선, 외씨버선 볼의 동탁한 매무새, 초가 지붕과 기와지붕들이 서로 이마를 마주 비비고 모여선 곳, 여기엔 시새움도 허세도 가식도 그리고 존대도 발을 붙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