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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2월28일(화) 23시22분51초 KST
제 목(Title): [다시 올리는 글] 어긋난 졸업식날에... 



외로운 베갯머리에 어느 잠이 오리오

서창을 열고 보니 복사꽃이 만발하도다

복사꽃은 시름 없어, 봄바람에 한들거리는데, 봄바람에 한들거리는데...

                       - 고려 가요 '만전춘'에서



여인은 서창을 열고 복사꽃이 만발한 뒤뜰을 내다본다. 꽃이 봄바람에 웃고 있다.

시름 없는 저 꽃들... 

꽃이 웃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애띤 사연 사려안은 쓰라린 가슴이 상대적으로 

무심한 꽃을 시새우는 것이다.

멋진 여인이었으리라, 이 시를 쓴 사람은.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발견

하기는커녕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드는 staire의 모습은 그 여인에 비하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겨울의 눈은 낭만적이지만 겨울에 내리는 비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요...'

김민숙씨의 소설에서 읽은 한 구절. 그러나 이번 졸업식날만은 예외였다. 관악을

뒤덮은 눈보라, 그 복잡하고 현란하며 자잘하게 뒤말리는 눈송이의 분분한 움직임

속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상들이 떠올라 뒤섞이다 꺼져 가며 staire를 현혹 

시킨다.



국적 불명의 학사복도, 유치원 애들을 연상시키는 학사모도 좋아하지 않는 staire는

졸업식이라고 떠들썩하게 보내는 것을 싫어했다. 학부 졸업식 때에도 그냥 잠바

차림으로 랩에 앉아 창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다보며 무덤덤하게 보냈었다. 그러나

이번 졸업식만은 좀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남들처럼 어머니께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던 거다. 학사 졸업식을 그냥 보내버린 것을 어머니께서 서운해

하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의례적인 행사 이면을 흐르는 화사한 정을 내 것으로

하고 싶어졌던 거다. 처음엔 그것을 간절히 원하던 그 누군가를 위해 마지못해 받아

들였다. 그러나 외로이 랩에 혼자 앉아 논문을 쓰면서 나 역시 그런 따뜻함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고 그 따뜻함을 기쁘게 내 안에 녹아들게 하고 싶어졌던

거다.



그렇지만... 또다시 어긋나고 말았다. 그 '누군가'는 staire의 더딘 변화를 기다려

주지 않았고 staire 역시 그렇게 돌아서는 그를 맥없이 보내고 말았다.



어머니께서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졸업식날 아침에 서울로 돌아오셨다. 여독에 지쳐

곤히 잠든 어머니를 차마 깨우지 못하고 그냥 학교로 향했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버린 어머니... 융프라우를 오르시다 산소 부족으로 그만 돌아서야 했다던 어머니의

잠든 얼굴이 눈에 밟히고 있었다.



좀 얇은 듯한 스웨터 차림으로 찾은 관악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랩에 들어와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저 휘몰아치는 눈보라... 그 분주한 눈송이

속에 갖가지 모습들이 떠올라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그 날... 헤어지던 날 

새벽, 돌아서서 전철역 계단을 올라가 미명 속으로 사라지던  그애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보다 랩으로 돌아온 날도 이렇게 눈이 관악을 뒤덮었었고 staire는 

랩에서, 바로 이 자리에 앉아 몇 시간동안 창밖에 휘날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께선 깨우지 않은 staire를 서운하게 생각하실까? 전철역 계단을 뛰어올라가 

당장에라도 그 애를 붙잡아 세우고 싶은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얼어붙은 듯 계단 

아래 서 있던 staire의 시선을 그애는 느꼈을까? 

당신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staire가 얼마나 망설였는지 어머니께선 끝내 

모르시리라. 그리고 그 애는... 자신을 붙잡지 않은 staire에게서 그애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날처럼 분분히 내리는 눈보라 속에 떠오르고 사라져 가는 숱한 영상들, 그렇고 

그랬던 2년 전의 학부 졸업식, 평화롭게 잠든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멀어져가던

그애의 뒷모습...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듯한 모습들이 staire의 눈을 어지럽히다

눈발 너머로 뿌옇게 흐려져가고 있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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