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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purunsan (   SUNYAA)
날 짜 (Date): 1995년01월23일(월) 11시00분15초 KST
제 목(Title): 우리는 이렇게 살아났다!





그 때 시간은 새벽 네시... 눈보라로 인해 일미터 앞도 분간을 못하고 

배낭 맨 몸이 바람에 휘청거릴 정도여서 바로 서 있기도 힘든 상황...

언뜻 언뜻 비치는 중청과 소청의 모양이 왜 그리 낯설기만 한지...


마침내 푸른 산은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여기 이대로 있다간 얼어 죽는다...

전진이다... 그래서 6번째로 다시 전진을 시도 했다... 그러나...

한 이십미터쯤 옮겼을까...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았다...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바람에 밀려 쓰러지기를 계속하고... 그래서 다시 후퇴를 결정하고 오던 발자국을 

찾았으나 눈보라에 이미 다 지워져 버렸다... 그래도 그냥 서있는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기에 눈보라를 막아줄만한 것을 찾기위해 계속 나아갔다... 그러나 

몸을 숨길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아...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불시착후에 안데스 산맥을 넘었던 기요메처럼 푸른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후배였는데, 벌써 의지를 상실한 듯 했다.. 


절망적인 그순간에 푸른 산의 결정은 역시 빨랐다... :)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

큰소리치는 것임... :) 며칠 전에 조난 당해 죽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 계속 눈보라 피할 곳을 찾다가 마침내 탈진했으리라...중청봉 

산장지기가길을 잃을 정도면 길을 다시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피한 곳을 찾아야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무지막지한 바람만이....

이 놈의 눈은 이미터나 왔다더니 또 오나.... 아무리 눈을 좋아하는 푸른산이지만

그때 그 상황에서 눈보라는 정말 원망스러웠다...사랑하는 후배의 생명을 앗아갈 

지도 모르니까... 바로 그 때였다... 눈이 이미터나 왔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이 미터의 눈> 그래 바로 이것이 우리를 살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푸른산은 바로 손으로 서 있던 곳을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으로 조금 파면

이내 눈보라가 불어서 어중간하게 파이기만 하는 것이다... 도저히 몸을 

숨기기에는 적당하지 않게... 멀뚱히 서 있다가 같이 손으로 눈을 파던 후배는 

절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가 또 한번 푸른산의 예리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이거 완전히 내자랑이네... ;-) 

삽을 안가지고 갔던 차라 마땅한 도구가 없었는데....코펠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바로 배낭을 풀어서 코펠을 ㉢쨈�... 그 와중에 푸른산이 애지중지 하던 정든 

장비들이 무자비한 눈보라에 날려 유명을 달리했다... 지금쯤 어느 이름 모를 

골짝을 떠 돌겠지... 아뭏든 각자 하나씩 코펠을 들고 눈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코펠이 눈담기에 그렇게 유용할 지는 미처 몰랐다... 기대 이상으로 

잘 파지는 것 아닌가... 사실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눈을 좋아하던 푸른산, 눈이 조금 많이 온다 싶으면 늘 냄비를 들고 나가서 

눈벽돌을 만들어 성을 쌓곤 했었다....이런 게 바로 삶의 지혜가 아닐까...

그 때는 냄비때문에 많이 혼이 나곤 했는데, 코펠가지고 그럴 때는 혼낼 

사람도 없었다...하지만 상황이 절박했으므로  재밌다는 생각도 안들었다...


그래서 약 30분의 작업후 우리는 깊이 일미터가 넘는 참호를 만들 수 있었다...

폭은 이미터 남짓... 서는 것은 곤란 했지만 앉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에 

들어 가서배낭을 깔고 커버로 위를 막으니 눈보라 피하기에는 그런대로 쓸만했다...


하지만 눈보라 말고도 기온이 영하 30도가 넘는 곳이니, 안 추울리가 있겠는가...

너무 추워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휘발유버너를 꺼냈다... (휘발유 버너는 

예열이 필요 없어서 겨울에 아주 편리...가스는 기온이 낮으면 무용지물...)

그런데, 이런! 휘발유 버너마저 나를 배신하고 말았다... 펌프가 얼어서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그냥 견디는 수밖에...


산에서 한밤중에 몰아치는 눈보라는 대개 날이 새면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 때까지 고기서 기다리자는 게 푸른산의 생각이었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 후배가 춥다고 하면서도 졸기 

시작했다... 푸른 산은 원래 "산에서 만큼은" 의리의 사나이다... 그래서 

좋은 옷과 좋은 장갑은 으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게 보통이다....

그 좋은 고어텍스 재킷을 입은 놈이 춥다니...나도 견디는데...

어쨌든 거기서 자면 체온 강하로 바로 죽는다... 그래서 푸른산은 그 후배를 

못자게 하느라고 볼따구를 막 때리구... 꼬집고... 흔들고...  :)

보통때는 안 그럽니다.... :)


아뭏든 드디어 날이 밝았다... 눈보라도 멎었고...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대청산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럴 수도 있는 건가....

20미터 앞도 못 되는 곳에 서 눈더미 속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것 아닌가...

산자을 바로 앞에두고 죽을 뻔 하다니... 하긴 며칠 전에 조난 당한 사람들이 

발견된 곳도 중청산장 옆이라고 했으니... 산장이 파묻혀서 보이질 않은 것이다...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기도 했지만... 산장에서 나온 사람들이 언제 

떠┠냐고 물었다... 어제 밤에 떠났었다고 말하니 그 사람들 말이 

"미쳤군, 어제밤 같은 날씨에....어떻게 살아왔수? "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산장안으로 들어가서 그 유명한 글을 같이 읽었다...

"그대 번뇌 있거든 대설악으로 가라" 

고은 선생도 이말을 좋아하시던데... 우리는 눈썹에 달린 고드름을 보며

서로 웃었고, 그 후배는 "형 아니면 죽었을 거예요. 하여튼 형만 믿고 
있었으니깐..."

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푸른산은 그 말을 듣고 그냥 웃었다.  설악을 한번 더 보면서...



 P.S. 그 후배는 지금 경제학과 대학원에 있는 이모 군이구요...

아마 그 날의 기억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겁니다... 짜식, 어쩐지 안좋다고

다음날 아침에 가자니까 빡빡 우겨 놓고는.... 그 친구 볼에 동상 걸렸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무용담을 늘어 놨다는 얘기가 있지요...




왕, 으왕, 으앙 가고 싶다.... 설악산... 내 사랑....




어린이 여러분은 따라하지 마시길, 어른도 물론이고... 정말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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