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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1월16일(월) 23시58분21초 KST
제 목(Title): 피의 일요일 90주년 (이번엔 내용 있음) 



나는 지금 견훤의 인간상을 올바로 복원해보고자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럴 능력도 성심도 없다. 다만 지금도 칼 쥔 자의 일방적 횡포 

속에 어린 백성들이 속아넘어가고 있는 처참한 현실이 이와 무관치 않음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1905년 1월 9일 일요일, 제정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지금의 페트로그라드)

의 짜르 동궁(冬宮) 앞에 20만을 헤아리는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 여자와 어린이와

노인까지 섞인 군중들이 모였다. 그들은 짜르의 초상화를 들고 '하느님이시여, 

짜르를 보호하소서'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짜르는

아직도 그들의 굶주림을 호소할 '자비로운 아버지'였다. 정교회의 가퐁 신부가 

이끄는 그들의 소박한 청원은 단지 8시간 노동, 최저 임금(1루블) 보장 등에 

불과했다. 경찰도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제재를 가했을 뿐 폭력의 조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동궁에서는 이미 무장 군인들이 저지선을 설치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행진을 멈추지 않고 전진했으며 마침내 총성이 울렸다. 학생과 

구경꾼들이 격분하여 동궁으로 밀려들었으나 결국 발포는 계속되어 수천 명의 

사상자만 남긴 채 군중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순진 무구한 러시아 군중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혁명의 주역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짜르의 자비로서

굶주림과 고통을 면해 보려는 생각을 갖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날의 주동자 가퐁 신부는 망명의 길에 올랐다. 그는 짜르에게 간결하지만 결의에

찬 편지를 보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순결한 피는 영혼의 파괴자인 그대와 러시아 인민들 사이를 

영원히 가로막을 것이다. 당신과 그들 사이의 도덕적인 결속은 다시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이 글을 읽으며 staire가 상상한 가퐁 신부는 흔히 보는 러시아 특유의 곰털 

모자를 쓰고 흰 수염이 더부룩한 노신부의 모습이었다. 곰가죽 모자에 십자 무늬가

새겨져 있으리라. 그 근엄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비와 사랑의 빛이 인민을 

일으켜 그 날의 목숨을 건 행진을 일구어내었으리라... (만화 '올훼스의 창'에

묘사된 가퐁 신부의 모습도 대체로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기억된다.)



그런데... 그의 행장을 뒤적이다 알게 된 것은 뜻밖에도 그 당시 가퐁 신부의 

나이는 32세에 불과했다는, 인격적인 지도자라기보다는 젊고 혈기찬 혁명가의 

모습이 더 어울린다는 사실이었다. staire는 역사의 흐름과 그 저변의 역학 못지

않게 말초적 드라마를 즐긴다. 가퐁 신부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발굴해낸 가퐁 신부의 진면목은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었다. (역사학도들에게는 이미

상식에 불과한 결론이겠지만) 그는 휴머니스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시 러시아의 

중상류 계급, 계급 갈등의 심화에 따른 사회 기반 자체의 붕괴를 우려하던 

톨스토이류의 도덕주의자였던 것이다. 혁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짜르 경찰은 사회주의의 침투를 막기 위한 '경찰 사회주의'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결국 경찰의 스파이들이며 근로 대중 속으로 침투하여 노동 운동을 

온건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가퐁은 비밀 경찰의 허가를 얻어 노동자들의

가운데에 뛰어들어 합법 투쟁과 정신 개혁 운동을 이끌었다. 도박 안 하기, 술 안

마시기 등 박정권 하의 농촌 계몽 운동과 다를 바 없는 활동으로 가퐁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1904년 겨울, 페테르스부르크의 공장 노동자들은 가퐁 신부의 노선에 따라 사장에게

소박한 제안서를 올렸다. 그러나 사장은 노조 지도자들을 해고하고 말았다. 이들은

가퐁에게 달려와 '자비로우신 아버지 짜르'에게 탄원하기를 호소했다. 가퐁은 

주저 끝에 이들의 요청을 수락했으나 비밀리에 짜르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 일을 

예고했던 것이다. 피의 일요일은 이렇게 시작된 사건이었다. 



해외로 망명한 뒤 본의아니게 언론의 초점이 되어 혁명가로 알려진 가퐁은 어쩔 수 

없이 혁명 운동에 관여하게 되었으나 그를 용서하지 않았던 극렬 사회당원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다. 



어느 역사가의 평가대로 그는 피의 일요일 사건에 등장하는 유일한 희극배우였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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