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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1월16일(월) 20시49분26초 KST
제 목(Title): 이 화중선 



행복하도다! 영광을 위해 혹은 자유를 위해

힘의 긍지와 꿈의 도취 속에서

이렇게 찬란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자는

       - 조제 마리아 드 에레디아, '독수리의 죽음' (La mort de l'aigle)



일전에 국창 김소희 여사가 무슨 국악상인가를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누구보다도 기구한 인생 유전을 거듭한 여류 명창 이 화중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27년, 당시 겨우 열 살바기 소녀였던 김 소희의 재능을 읽고 그녀를 

소리의 길에 들게 한 것이 바로 화중선인 것이다.



이화중선의 생년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송만갑의 협률사 공연을 본 것이 

나이 20대 초반의 일이므로 대충 1895년에서 190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생각될 

뿐이다. (송만갑에 대해서 알고 싶으시면 이 보드의 2600번 근처, 작년 6월 12일자

'송흥록의 소리'를 참조하세요) 여류 명창 중 누구보다도 인기 높았던 그녀에 대해

뜻밖에도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이화중선은 전남 보성의 빈농의 딸로 태어나 구차스러운 소녀시절을 보냈다. 17세

나던 해에 남원의 박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이후에야 밥술이나 뜨게 되었다 한다.

1918년 어느 날 송만갑의 창극단 협률사가 남원을 찾은 것이 이화중선의 인생을

크게 돌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난생 처음 구경꾼들 틈에 끼어 창극을 구경한 시골 

아낙 이화중선은 넋이 빠지고 말았다. 사흘간 계속된 공연에 하루도 빠짐없이 

창극 마당을 찾은 이화중선은 마침내 한밤중에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소리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처음엔 어느 무당에게 빌붙어 살며 소리 몇 마디를 배웠다. 그러나 변변치 않은 

무당의 소리에 만족할 수 없었고 또한 무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몸을 팔기를 

강요하는 고로 그곳에서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당시 남원에는 장득주라는 가객이 있었다. 그는 명창의 반열에 들지는 못할망정 

법도 있는 더늠을 물려받은, 꽤 격조 있는 소리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화중선은

어떻게 해서라도 장득주에게 소리를 배우고 싶어 애를 태우다가 장득주의 동생 

장혁주가 아직 총각이라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틔었다 한다. 이리저리 손을 쓴 

끝에 화중선은 장혁주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이제야 제대로 소리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득주는 화중선의 재능과 열정에 놀라고 말았으며 혼신의 정성을 기울여 단 몇 

년만에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 세 마당을 그녀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화중선은 

장득주로부터도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자 장혁주와 이혼하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어떤 부자의 첩으로 들어앉아 5백 석의 재산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일단 자기 몫의 재산을 챙기자 화중선은 그 부자와도 연을 끊고서 

상경하여 조선 권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화중선은 결코 미인이 아니었으나 그녀의 목청은 정도를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는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도

자신의 인생을 걷기 위해 남자들을 서슴없이 이용하고 또 헌신짝처럼 버리는, 

결혼이나 가정에 얽매이지 않는 거침없는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역정이 결국 그녀에게 우울증을 가져다주게 된 듯하다.



화중선은 마침내 명성을 얻어 당시 최고의 소리꾼이었던 송만갑, 정정렬 등의 

지도를 받게 되었으며 꿈에도 그리던 협률사 단원이 된다. 협률사에서 일하던 

1927년 어느 날, 일행은 광주에서 소리판을 벌이고 있었다. 시장터 한 구석에 천막을

둘러친 협률사의 가설 극장은 광주 뿐 아니라 인근 각처에서 몰려온 구경꾼으로 

초만원이었다. 이 구경꾼 중에는 당시 10살에 불과했던 소녀 김소희가 끼어 있었다. 

친척 언니의 손을 잡고 난생 처음 창극 무대를 찾은 김소희는 9년전 이화중선이 

그랬던 것처럼 이화중선의 절창에 매료되고 말았으며 마침내 협률사 일행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김소희는 송만갑이 무척이나 귀여워하던 제자였으며 지금은 

부동의 국창으로 군림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중선은 우울증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대의 인습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여자의 몸으로 뭇 남성들을 희롱하며 소리꾼의 길을 걸어 온 그에게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소한 일에도 배를 쥐고 

웃거나 별 것 아닌 일에 시름에 잠기는 등 심한 정서 불안 증세를 보였고 정체

모를 약을 먹는 것을 동료들에게 자주 들켰으나 아무도 그것이 무슨 약인지 몰랐다 

한다. 



1943년, 일본이 도발한 전쟁으로 가뜩이나 궁핍에 시달리던 때인지라 원래부터 

약질이던 화중선의 건강은 말이 아니었으나 일본 관헌들은 징용 부대를 위한 위문

공연에 명창들을 동원했다. 동원된 이들은 임방울, 박초선, 강남중, 신영채 등이었고

화중선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규슈를 향했다. 함께 갔던 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이미 자신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렸다고 한다.



규슈에서 세토나이카이를 향해 항해를 계속하던 어느 밤, 일행은 이 화중선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40대 중반의 이 열혈 부인은 아마도 더 이상 노쇠해진 자신의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 바다로 몸을 던진 것이었으리라.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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