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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08월11일(목) 16시20분28초 KDT
제 목(Title): 괴물 교수 열전 II



* 사회학과 신 용하 교수님.


아무리 생각해도 신 용하 교수님은 조물주가 엄청나게 신경을 써서 만든 걸작임에
틀림이 없다.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누구도 판정을 내릴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아마
한번이라도 신 용하 교수님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내 말에 동의 할 것이다. 교수님의
풍모는 호랑이 상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위압적인 면이 있다. 

신 용하 교수님은 내가 교양 필수로 "근대 한국의 민족주의" 라는 과목을 들었을 때
담당 교수님이신데 이 과목은 당시엔 필수였던 한국사의 대체과목이었다. 이상한
것은 당연히 국사학과에서 담당해야 할 것 같은 과목을 사회학과 교수님이 담당하신
다는 점인데, 교수님이 비록 사회학과 교수직에 계셔도 전공은 독립운동사이시고
국사편찬위원같은 직함을 가지셨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긴 하다.

교수님의 수업이 유명했던 이유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아마 지금도 드물 것이다.)
토론식 수업을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교재를 하나 선정해서 대표학생이 읽고 발제를
한다음 학생들이 그 내용에 대해 토의를 벌이고 교수님이 그 토의를 이끄시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 되었는데, 교수님의 투철한 (?) 역사관에 조금이라도 어긋풍ご�
학생은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기 십상이었다.(물론 말로만...)

하지만 학생들도 나름대로 줏어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지식이 있고 대학생으로서
어설프게나마 배운 역사관이 있어서 곧잘 교수님의 주장에 반격을 가했고 당연히
수업시간은 피튀기는 설전장으로  변하기 일수 였다. 당시에 주제가 되었던 것중에
하나만 들어 보면 "갑신정변에서 개화당이 일본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정권을 잡고
개화정책을 추진하려 한 것이 잘한 일인가? "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일본도 싫어
하고 쿠데타도 싫어해서 인지 반대파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교수님은 개화정책의
당위성을 앞세워서 찬성이었다. 이러면 엄청난 이빨싸움이 전개 되는 것이다.

주로 있었던 충돌은 학생들이 대개 좌파 사상의 영향을 받아 근현대사를 바라 보려
하는데 비해 교수님은 글자그대로 민족 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 했기 때문에
생겨나곤 했다.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교수님께서 직접 이야기 하신 
것인데.... 국사학과라던가 어느 과 학생 하나가 구한말 의병운동에 수 많은 국민
들이 호응한 것은 애국심 때문이 아니고 의병장들이 제공한 식량 때문이었다는..
(당시에는 기근이 심각했다니까) 엄청나게 파격적인 내용의 석사 논문을 제출했단다.
나야 문외한이니 가부를 판정할 길이 없지만 논문을 제출했을 정도면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을테고 지도교수도 어느 정도 동의 했기 때문일텐데, 우리의
교수님은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으로...!!!" 하시면서 그
학생의 석사취득을 한 학기 연기 시키고 논문을 빠꾸 시켜 버리셨단다. 그리고서는
우리 학생들에게 너네는 그런 '천박한' 이론에 빠지지 말라고 열을 올려 훈계하시는
것이었다.

사실 내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교수님의 입장은 단순히 우파라거나 민족주의적이라는
정도를 넘어서 거의 국수주의적인 성향을 띄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 입장에서 말이다.) 하지만 신 용하 교수님 만큼 열성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시고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굳건하게 지조(?)를 지키는
분도 뵙기 어렵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교수님이
한국 근현대사에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교수님의 고집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일화는.... 교수님이 서울대의 신참교수이던
시절에 하버드에 교환교수인가로 가셔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으셨다고 한다. 아직
박사학위가 없으실 때이다. 하버드에서는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학위과정을 밟으면
박사학위를 수여하겠다고 했고... 교수님은 그말대로 박사과정을 하버드에서 시작
하셨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코스웍만 마치시고는 (우리말로는 수료만 하고) 걷어
치워 버리고 몇년 있다가 논문을 서울대에 제출하셔서 학위는 서울대에서 받았다고
하신다. 그 이유라는 것이.... 미국의 박사과정이란 것이 수료후에도 커리큘럼이
꽉 짜여져서 자기 맡은 공부만 해야지 다양한 관심사를 공부한다고 광범위한 독서를
했다가는 망하기 십상인듯이 보였다는 것이다. (이거는 내 생각이 아니고 교수님
생각이 그랬다는 것이니까 누가 이 과격한 생각에 토를 다는 일이 없기를 바람.)
나에게 황당한 것은 그 생각 자체보다도 그런 이유로 해서 하버드 박사라는 영예를
포기해 버렸다는 그 고집스러움이다. 

신 용하 교수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집스러움' 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내게는 그 고집스러움이 나름대로의 지조와 투철함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듯이 보여서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 대학이 다양성과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면... 교수님 같은 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 학교에 큰 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

                                       LANDAU ( fermi@power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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