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5년01월03일(화) 13시41분45초 KST
제 목(Title): 전국민의 도박판....대입 원서 내던 날.



82인가 부터 87까지는 학력고사를 먼저 치러 점수를 받아들고 대학에 원서를 내는
선시험 후지원 방식이었다. 점수를 미리 알고 지원을 하니 눈치작전이 극심해질 수
밖에 없고 눈치 망국론 까지도 나올 지경이었는데, 어느 해인가 일간신문에서 
이런 현상을 가리켜 '전 국민의 도박판' 이라고 표현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표현은 잘 지어낸 표현인 것 같다. 도박하고 꼭 같으니까...
도박에서 내 패는 알지만 상대의 패를 모르듯이 원서내기도 내 점수는 알지만 
상대의 점수는 모른다. 그렇다고 패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는 것도 아니다.
도박에서 패가 나빠도 블러핑을 잘 하면 상대가 죽어 주기 때문에 판을 먹을 수 
있듯이 원서내기도 미친 척하고 과감하게 베팅을 하면 낮은 패로 판돈을 딸 수도 
있다. 

그리고....그 판돈은 자기 인생이었다. 인생을 거는 도박.

그래서 어느 선배는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요새 애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패도 안 보고 베팅을 하냐????"

오늘날의 선지원 후시험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

어쨌거나 다우정도의 연배의 사람들은 원서를 내는 그 순간 실질적으로 당락이
결정되어 버리는 당시 제도의 잔인함 때문에 정말 못 볼꼴을  많이 보았다.

내가 고2 때 평소 알던 고교선배가 눈치작전을 하는 것을 도운 일이 있었다.
공부도 잘하던 사람이 학력고사에서 망하는 바람에 서울대 전자과와 모대 전자과를
놓고 눈치 작전을 하고 있었는데 내 임무는 서울대 원서 접수장에 와서 시시각각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마감시간이 임박해서도 서울대 쪽의 경쟁률이 낮아서 결국 서울대 쪽으로 온 그 
선배... 그래도 도저히 전자과는 쓸 용기가 없었던지 원서를 내지 못하고 
지원상황 게시판만 하염없이 쳐다 보는 것이었다.

재수를 할 작정으로 아예 배짱지원을 한 것인지..아니면 점수에 맞추다 보니 
마음에 없는 과를 지원해서 속이 상한 것인지 .. 어느 여학생이 눈물을 철철
뿌리면서 원서를 내고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대입시를 막연하게만 보고 있던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었다.

아마 선지원 세대는 잘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 잔인함을 말이다.
지금은 아무리 배짱지원이라도 운이 따라 시험을 잘 보면 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이 때는 일단 원서를 내고 나면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물며 예상 커트라인보다 더 낮은 점수를 가지고 원서를 넣는다는 것은
자기 손으로 스스로 낙방자 명부에 이름을 적는 것 만큼이나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선배의 입에서 " 저 재수 하겠읍니다. " 하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뒤집어 말하면 올해는 배짱지원하겠다는 이야기였다. 90% 는 떨어질 것을 각오하고서
말이다. 그리고는 지원학과 난을 채우는데.....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애를 쓰더니
못 쓰고 말았다. 마이크에서는 이제 접수를 마감하니 원서 안 낸 사람들은 빨리
내라는 독촉이 계속 나오고 선배의 부모님 누구도 감히 원서에 손을 대지 못했다.

결국엔.... 내가 그 원서를 써야 했다. 손을 떨지 않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두 번 다시 하기 싫은 잔인한 일이었고... 그보다 더 괴로왔던 
것은 어쩌면 저 모습이 일년뒤의 내 모습 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선배는 합격했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망통을 가지고 판을 딴 경우라고나 해야 할까? 하하하...

이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내 동생이 입학시험을 치를 때 나는 선지원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서 내는 데 안 온다는 내 동생을 억지로 끌고 원서 접수장으로
갔었다. 철없던 내 동생 역시 자신이 지원한 학교의 진입로를 새까맣게 메우며
밀려드는  인파를 보고 또 원서 접수장 앞에서 눈치를 보는 그 사람들이 내신으로
봐서 자기보다 하나도 뒤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나는 모양
이었다. ( 그해 내 동생이 지원한 학교의 경쟁률은 7:1 이었다.)
그 쇼크 요법이 적중해서 인지는 몰라도 고3이 되어서도 철없이 딩가딩가 하던
내 동생은 시험까지의 한 달이나마 정신차리고 공부했고 7:1 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다행히 나 자신은 로티플과 맞먹는 패를 잡은 덕에 그런 험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신년초 부터 원서접수가 시작되었는지 서울대 입구 역에서는 원서 봉투를 손에 들고
체육관 (원서 접수장) 가는 택시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생길까?????  



                                               ___ landau

                                               He is a Netize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