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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08월10일(수) 20시20분59초 KDT
제 목(Title): 괴물교수 열전 I



* 물리학과 L 교수님

대학 시절에 과학사 를 듣는데 어느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유독서스 (Eudoxus)
라는 인물에 대해 강의 하시면서 유독서스와 평생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은
또 다른 인물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다. 그러고서는 하시는 말이

"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두달간 이집트 여행을 함께 한 것 뿐입니다."

그러자 학생들 사이에서 약간의 비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교수님 정색을 하시더니

"단 한시간의 만남이 한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30년을 함께
 생활해도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고 말씀 하셨다. 내 생각에는...맞는 말이다. 영향의 강도는 만난 시간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이다.  (근데 써 놓고 나니 유독서스의 철자가 영 자신이 
없네...접...)

                *             *             *

 

물리학과의 L 교수님은 워낙 독특한 그 개성 때문인지 알게 모르게 학생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신 인물이다. 물론 애들 기를 너무 싹 죽이는 경향이 강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물리학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란다우는 그 교수님에게 장장 5학기에 걸쳐서 (세 과목) 강의를 들었는데 물리학
에 대해서는 별로 배우지 못했지만 (이것은 교수님 탓이 아니라 내 책임이다.)
대신에 보석 같은 교수님의 충고 몇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 는 것은 어느 날인가 항상 그 요일이면 숙제가 나오는 요일의 수업시간이었는데

"이번 주에는 숙제가 없어요. 조교가 병이 나서 입원하는 바람에 채점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시더니 갑자기 학생들을 보고 가라사대,

"여러분 체력단련 꼭 하세요. 물리학은 머리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리학은 온.몸.운.동. 이에요."

교수님에 대한 일화는 과 안에 거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교수님의 결혼에
관련된 것도 아주 특이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교수님이 결혼을 중매로 하셨는데
처음에는 중매장이가 전화로 의향을 물었단다. (물론 아직 서로 만나보기 전이다.)

"여기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한 참한 아가씨가 있는데 맞선 볼 의향이 있어요?"

"첼로! 그거 아주 좋은 악기지요! 저 결혼 하겠읍니다.(만나 보지도 않고)"

그래서... 결혼하셨단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믿기지 않지만....:> 사모님은
지금 서울대 음대 교수님이시라고 들었다.

86년에 속칭 아시안 방학이란 것이 있었는데 뭔고 하니 아시안 게임중에 대학생들의
시위가 있을까 우려한 정부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대학에 휴교령을 내려버린 
사건이었다. 내가 교수님께 역학을 배우던 88년에는 올림픽이 열렸는데  왕년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의례히 이번에도 올림픽 방학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어떤 열성파 학생들은 운동회(?)를 위해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했었고 ... 어느 날 H 선배란 분이 우리의 교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만약 휴교령이 내리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올림픽 때문에 공부를 늦출 
수는 없지 않습니까? 천막교실이라도 해서 수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그냥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하셨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올림픽
방학은 없었다. 올림픽 개막식 다음날 강의실에 나타나신 교수님 강단에 서시자마자
제 일성이...

"H 군 왔어? 뭐야? 안 왔다고? 아아~~니 공부하자고 핏대 세우던 사람이 안 오면
  어떻게 해???"   :>

이것도 약간 믿기 어려운 전설인데... 교수님이 대학 1,2 학년 때는 그다지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셨다고 한다. 그런데 2학년 때라던가 영문과 여학생 한 사람에게
홀딱 반해서 한학기를 끈질기게 쫓아 다니시다가 그만 온 문리대에 뻥! 소리가
진동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 차이시고 말았다고 한다. 실연하신 우리 교수님이
자살을 기도하시려고 마음먹고 어디 절벽으로 가셨다는데 (여기가 관악산이란
낭설이 있던데 관악캠퍼스가 있기 전이란 점에서 별로 믿을만 하지 못하다.)
뛰어내리기 직전에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으시고는 하산(?) 하셔서 그날부터 방학
내내 Arfken 의 수리물리학 책을 마스터 하셨다고 전해온다. ( 스테어 선배님의
"천재소녀"에도 이 책 이야기가 나오는데 분량은 많지 않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좀 방대해서 이 책을 마스터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백과사전이라고 한 적도 있다. Arfken 은 이 휘소 박사의 미국 유학 시절 스승이기도
하다.) 그 이후 교수님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유학을 가셨다는데.....?

한 때는 교수님이 점심식사 후에 매일 "먹이감"을 찾아 다니신 적이 있다. 주로
이론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의  연구실에 오셔서 한 사람을 붙잡고는 '씹으시는'
것이었다. 그날은 I 선배님이 걸려들었다.

"I 군, 자네는 겉모습은 아주 못 되게 생겼는데 속마음은 참 착하단 말이야."

I 선배도 이빨에서 두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인물....

"교수님은 제가 보기에 꼭 그 반대이시네요."

( I 선배는 미국 모 대학으로 유학을 가셨는데 거기서 자격시험에서 대학 역사상
최고점수를 받는 바람에 학교에서 상금까지 타먹었다고 한다.)

교수님의 수업은 나 같은 둔재들에게는 따라가기가 정말 곤란할 정도로 빡빡하다.
보통 물리학과 수업은 필기보다는 생각할 것을 더 많이 요구하는데 교수님의 
수업시간에는 내내 필기를 하시면서 설명을 하시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늘 완벽한 강의 노트를 들고 들어 오시고 (물리학과에서는 같은 과목을 3년이상은
같은 교수가 강의하지 못하도록 하고 담당과목을 계속 순환시키기 대문에 
이렇게 충실한 강의 노트를 준비한다는 것은 상당한 정성이다.)
빠르게 강의 하시므로 학생들 대다수는 정신이 하나도 없게 된다. 더구나 교수님의
강의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것이어서 잘못 걸리면 학생들에게 열등감만 넣어주는
일도 종종 있다. "역시 내 머리로는 안 돼..." 하고 말이다. 나는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절망(?)해서 전공을 바꾼 사람을 둘이나 알고 있다.

교수님은... 하여간에 재미나신 분이다. 황당한 일화가 지금 쓴 것 만큼이나 더
있는데... 나에게는 대학시절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분이다. :>





                                       May the force be with you !

                                       LANDAU ( fermi@power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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