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2월18일(일) 01시33분13초 KST 제 목(Title): 사이언스 키드의 생애 II 내가 국민학교 시절 처음으로 나중에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말을 했을 때, 나의 부모님들은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다. 부모님들의 생각 속의 물리학과의 이미지라는 것은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돈이나 출세와는 거리가 있는 룸펜의 그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스스로도 놀랐지만, 대학에 들어 온 이후 물리학과 출신도 제법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부모님이 생각하셨던 것처럼 1등하는 놈 빼고는 모두 학원 강사 외에는 할 일없는 고등실업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집안에 상당한 놀라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적어도 나는 이공계통을 택할 때 좋은 보수나 높은 자리를 바라고 전공을 정하지는 않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생활의 체험으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대학원에 들어 온 뒤 어느 똘똘한 학생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부모님과 아이는 내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보다는 진로지도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없지만 내심 의대를 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굳이 아이에게 유전공학을 하라고 권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난 속으로...햐~~~ 이런 선각자 적인 어머니가 있으니 과학한국의 미래는 밝다... 하고 기뻐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무엇인가 그 어머니와 나는 핀트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 의대 가면 고생이 너무 심하자나요. 돈벌기 까지도 오래 걸리고.... 그리고 뭐 요새는 의사는 한물 갔다데요? 괜히 의대가서 고생하고 돈도 못버느니 유전공학 같은거 해서 좋은 연구 하고 돈도 잘 벌면 좋지 않겠어요? " 결국, 그 어머니가 '과학'에서 기대하는 바는 편안한(?) 연구생활과 '과학기술'이 제공해 줄 수 있는 '멋있음'과 좋은 대우 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참으로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머니도 TV 에서 매일매일 나발을 불어 대는 '첨단기술' 과 '장미빛 21세기' 의 중독자 였던 것이다. 내가 의대를 평가절하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과학자가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의대 못지 않은 오랜기간동안 (보통 10년) 공부를 해야 하고 그간의 밤샘이나 노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 처럼 그다지 편안하고 우아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나는 우리 교수님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연구하는지....생명공학을 연구하는 동료 들이 얼마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실험에 열중 하는지 잘 아는 처지에서 쉽게 그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 분에게 의대를 권했었다. 그런 생각 가지고는 유전공학 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읍니다....... 그 뒤로 한 두해 지나서 실험조교를 하다가 나는 또 한번 황당무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도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다는 전기전자 제어계측 공학군의 어느 한 반을 맡아서 한 학기 동안 실험을 지도 했는데, 어느날 내 바로 앞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넌 어느 쪽으로 나가고 싶니? 반도체? 통신? 아니면 제어계측? " 그랬더니 그 어린 1학년 생이 말하기를.... " 조교님, 저는 내년부터 변리사 시험준비 할 생각입니다. " 나로서는 너무나 황당하기 그지 없어서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 였는데.. 막상 이야기를 더 해보니 그 학생의 결정이 너무 이르다고 통박을 할 수는 없었다. " 뭐....전자공학 공부 해 봤자 별거 없다구들 그러더라구요. 결국은 월급장이 아니에요? 제가 선배들 보아도 그래요. 도대체 뭣 때문에 전전제가 그리 박터지게 경쟁이 심한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의대로 갈 걸 그랬어요. 이제는 늦었고, 그래도 변리사는 좋다니까 그거나 한 번 공부해 보아야죠. " 그때까지 변리사나 기술고시는 공학,이학을 하다가 안 되는 사람들이나 응시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제 막 교양을 끝낸 1학년 공대생의 이런 사고 방식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전에 내가 아르바이트 했던 그 학생이 부모님의 뜻을 따라 유전공학을 전공했다면 아마 꼭 이런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전에 내가 겪었던 몇가지 경험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나오면서 나의 기억의 뇌관을 건드렸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의 신입생 MT 에서 흔히 그러듯이 " 너는 도대체 왜 물리학과에 왔느냐? " 는 질문이 돌았다. 당시에 내가 놀랐던 것은.... " 그냥 이과에 가면 좋다길래 이과를 왔고 점수 받은대로 물리학과에 왔다. " 는 대답이 1/3 가까이를 차지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쯤 부터 남자고등학교의 이과가 폭발적으로 늘어 났다는 사실도 생각이 났다. 어느해인가 친구 여섯이 중학교 때 은사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그 중에 다섯이 이과라는 이야기를 들으신 선생님이.. " 이상하네...내가 보기에는 한둘 빼고는 문과로 가는 것이 더 적성에 맞았을 성 싶은데... " 하시면서 당혹해 하셨던 기억도 났다. 나의 고모님은 70년대에 자신이 아는 아무개가 미국에서 공학박사를 따오더니 아파트까지 얻고 이사대우로 금의환향 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은근히 나에게 기대감을 표하셨지만, 바로 그 시간대에 나는 이사대우는 고사하고 배운 것을 써먹을만한 직장을 쉽사리 구하지 못해 고생하는 박사선배를 보면서 서울공대 정원을 두 배로 늘리고 9X 년 까지 박사 10만명을 양성할 거라는 계획의 발표를 들어야 했다. 학부시절 어느날 읽었던 몇몇 팜플렛이 나의 머릿 속에 떠올랐다.. 5공과 6공이 국민들에게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 근거는 바로 '과학기술' 이었다는 정세분석 이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의 중고교 시절에 TV 와 활자매체는 그토록 과학기술을 예찬하고 장미빛 미래와 과학기술을 동의어로 각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 시켰던 것일까? 그리고 그 결과 유전공학이 돈과 명예와 편안함을 보장 해주는, 의대를 능가하는 좋은 전공이라는 생각을 가지신 '신세대 학부모'를 탄생시킨 것일까? 그해 마지막날...예의 친구들 여섯이 망년회를 마치고 골아 떨어져졌을 때, 공학을 하는 친구 하나가 잠결에 내게 질문을 해 왔다. " 다우야....도대체 왜 우리가 이런 것을 전공했을까...? 음냐...콜콜..." 그 때....난 그렇게 답했다. " 우리는 말이야... 5공의 과학기술진흥정책....아니아니....과학기술과대선정책 의 희생자들이야...후후후.... " * '사이언스 키드의 생애 I' 은 한 석달 쯤 전에 제가 포스팅했던 글입니다. 저로서는 그저 평소대로 쓴 글이었는데 의외로 여기저기에서 그 글을 보신 분들에게서 다양한 반응이 왔읍니다. 충격적이다... 말 잘했다... 등등 부터 의대법대 놈들 때려 죽여야 한다(?) 까지..... :) 하지만 가장 깊이 있게 제 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분은 어느 서울대 공대출신 박사님의 부인 이시라는 게스트님의 포스팅 이었읍니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물질적인 대우를 가지고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요... 그래서 저는 제 글이 약간의 오해를 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읍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요지는 .... 과학기술자가 물질적으로 푸대접 받는 세상에 대한 한탄이 아니라 .... (많은 분들이 주로 이 점에 집중하시더군요....) 왜 많은 젊은이들이 과학기술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장미빛 환상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물질적 푸대접을 못 견뎌하고, 결국은 늦게서야 다른 길을 찾아가는지 에 대한 의문이었읍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내린 답은 ..... 원래 과학기술을 전공할 신념이랄까요... 소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앞장서서 과학기술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정치적, 경제적인 필요에 의해서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능한 여러 답 중의 한가지 입니다. 제가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 더 크지만, 저는 결코 과학기술의 척박한 현실을 한탄하기 위해서 또는 법대나 의대에 거부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이언스 키드'를 쓴 것이 아님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바람직하지 못하게 사설이 너무 길어졌군요...^_^ ) --- landau 싸늘한 진보와 부풀어 오르는 야만사이에서 저는 소수의 행복한 여러분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