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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eyedee (아이디)
날 짜 (Date): 1994년12월06일(화) 20시29분07초 KST
제 목(Title): 법대생, 의대생, 공대생


    난 상대생인데 법대생이나 의대생 보다는 공대생에게 호감이
    더 간다.   
    
    사회의 가장 중요한 영역중의 하나인 경제발전에 공학을 
    공부안 사람과 기술의 힘이 아주 크다.    
    
    이에 반해 판검사.변호사나 의사들은 그들이 사회에 기여하
    는 것 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은 몫을 챙기는 듯하다.
    
    특히 서울대 법대 나와 판검사 된 사람들 중엔 군사독재의 
    도구역할을 한 사람이 아주 많다.
    
    법률이나 의료 서비스의 경우 다른 재화에 비해 수요의 탄력성이 
    낮기(비싸도 산다는 뜻) 때문에 여타 사회 계층을 착취할 
    개연성이 크다.
    
    수요가 비탄력적이라 할지라도 공급이 탄력적이면 높은 값을
    매기기 힘들지만 공급이 제한적이면 착취의 개연성을 현실화
    시킬 수 있다.
    
    법조인들이 사시정원 증가에 반대하고 의사들이 의대정원 
    증가에 악착같이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화라는 무리는 있지만 의대 (명문)법대 지망생들이 전공을
    택한 동기는 자식의 출세나 경제적 풍요를 우선시하는 부모의 
    권유나 소시민적 신분상승욕구에 기인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난 전두환 때 대학을 다녔는데 법대생들의 운동참여도가 
    상당히 낮았다. 그 저조한 참여도가 소시민적인 보신.입신
    양명주의와 관련이 있지않았나 의심해본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법대생들 중에도 운동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다수는 무관심했고 이들간의 의식의 괴리는
    다른 사회대나 인문대 학생들의 경우 보다 심했다.
    이점에서 적극적 참여는 안하더라고 심정적으로 동조하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다른 (문과 계열의) 대학과는
    달랐다..) 
    
    의대의 경우는 훨씬 심해서 본과학생들은 시국문제로 데모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제가 한번 몇몇이 교내에서 피켓들고
    한번 왔다갔다한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운동이 교조화해서 대중성을 어느 정도 상실한 6공 때 와는
    달리 전두환 때는 학생운동의 당위성이나 도덕적 호소력이 
    상당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도서관에서 고시책만 보다가
    사시에 합격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둥
    하면서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려고 애쓴 사람들이 많았던 사회대 
    출신임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비록 나는 어영부영했지만..)
    
    아뭏든 난 사회에 실질적인 공헌도가 큰 공대생들이 좋다...
    간혹가다 어떤 공대생중에 "김종필이 대통령 감인데..아깝다
    .."라고 하든가 "경제학하고 경영학하고 다른 거에요?"하고 
    묻는 사람이 있어 나를 맥빠지게하지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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