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08월08일(월) 15시55분14초 KDT 제 목(Title): 경주 역전의 황당 사건... "아저씨! 이 시간에 여기서 모하는 거여요? 빨랑 일어나 봐요!" 끄응... 아니... 난 이제 겨우 19살인데 아저씨라니...으으윽~~~ 그리고 지금은 잘해야 새벽 4시가 되었을 야심한 시각인데 왜 갑자기 젊은 여자 목소리가 날 깨우는 것일까 ? 그것도 길바닥에서.... 당시 상황은... 87년 8월 여름의 어느 날 새벽에 란다우는 경주 역 근처의 어느 벤치에 누워 있고 그 앞에서 젊은 여자가 날 흔들어 깨우고 있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황당 무계한 상황이었다. 대학에서의 첫 여름 방학을 맞아 란다우는 고딩학교 때부터 꿈꾸어 왔던 계획을 하나 실행에 옮겼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나 혼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여행을 해 본다는 것이었다. 친구에게 신세를 지지도 않고 일행도 없이 나 혼자서만 하는 여행...얼마나 좋아? 그래서 계절학기가 끝나고 몇군데 볼일을 마치자마자 배낭하나에 돈 몇만원을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경주로 날라버린 것이었다. 경주를 첫 행선지로 택한 이유는 언젠가 이야기한 수학여행 때의 경주의 밥맛을 잊지 못해서이고 당시에 시간이 너무 짧아 유적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서울역에서 밤차를 타고 경주까지 무려 일곱시간... 그나마 피서철이 한창 피크에 달했을때 여서 꼬박 선채로 기차에 시달려야 했다. 더운 객실 안에서 땀을 흠뻑 뒤집어 쓴 채로 새벽 5시쯤 경주역에 내렸더니만, 플랫 폼이 좌우로 춤을 추는 것이었다. 아무리 다리에 힘을 주어도 땅이 좌우로 울렁울렁 하는데 그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라 처음에는 지진이 난 줄 착각했었다. :) 역전 앞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사먹고 (언젠가 이야기 했듯이 나는 라면 끓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집을 떠나면 밥만큼은 사 먹는 수 밖에 없다. )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경주 일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낮 동안의 구경은 그런대로 보통의 여행과 같이 그럭저럭 재미난 구경이었는데... 밤이 되면서 고민이 시작 되었다. 어디서 잘 것인가? 애초에 계획을 세울 때부터 나의 여행 플랜에 여관등에 돈을 내고 들어가 잠을 잔다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우선 그런 호화판(?) 여행을 했다가는 차비와 식대로도 부족한 여비가 하루이틀만에 날라갈 것이 뻔했고, 이 따듯한(?) 8월에 그것도 여자도 아니고 아니고 남자가 밖에서 잠 좀 잔다고 무슨 일 있겠는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아예 이 참에 말로만 듣던 노숙을 한 번 해볼까 하고 작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잠자리를 잡으려니까 이 노숙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저녁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사들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략 4차선 정도 되는 넓은 길이었는데... 음냐... 글쎄 보도블럭이 없는 것이었다!!!! 원래 나의 생각은 길가의 보도블럭 한 귀퉁이 같은 곳에 준비해 온 침낭을 깔고 잔다는 것이었는데, 그 근처는 서울처럼 아스팔트 도로와 보도블럭의 인도로 구분이 되어 있지 않고 그냥 아스팔트 도로에 선만 그어서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고 있었다. 그나마 인도는 넓이가 얼마 되지도 않고..... 보도블럭이 없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 하면... 그런 상태에서 그냥 인도에 침낭을 깔고 잤다가는 지나가는 차에 치어서 그대로 저승으로 직행할 공산이 높아 보였다. 그래서 완전히 길바닥에서 자는 것은 포기하고 조금 걸으면서 어디 잘만한 곳이 없나 하고 주변을 살폈더니.... 흐흐.... 어쩜 하늘이 란다우 잠잘 곳이 없는 것을 아시고 저쪽에 트럭을 한 대 세워 두도록 하신 것이 눈에 들어 왔다. 가까이 가 보니 안성 마춤으로 트럭의 짐칸이 비어 있는데다가 무엇을 싣고 다니는 지는 몰라도 짐칸 바닥에 지저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크기도 제법 큰 트럭이어서 넓이도 충분했고, 높이 좀 있어서 밖에서는 일부러 짐칸 안을 들여다 보지 않으면 누가 자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very good! :) 아직은 밤 9시 정도 밖에 안 된 시간이라 나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서 짐칸으로 기어 올라가 잠자리를 마련했다. 아까 사온 빵과 우유로 저녁을 때운 다음 트럭 짐칸에 누워 밤 하늘을 바라보면서 집 생각과 떠나는 날 점심 때 잠깐 만나 잘 갔다 오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그녀(^_^)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 전날밤을 밤차를 타고 내려 오느라 꼬박 세우고 또 낮에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느라 깊은 잠에 빠져서 정신 없이 자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 내 포근한 잠자리(?)가 갑자기 덜덜 바이브레이션을 시작하더니 땅이 움직이는 것 같은 것이 아닌가? 반쯤 꿈결에 이게 웬일이지 하고 머리를 쓰다가 지금 트럭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라는데 생각이 미처서 나는 벌떡 일어 났다. 으악!!! 아닌게 아니라 정말 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아마 운전사가 으례히 짐칸은 비었으리라 생각하고 그냥 차를 출발 시킨 모양이다. 나는 급히 운전석 쪽에 소리를 질러서 트럭을 세웠는데.... 하하... 그 운전사 아저씨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겨우 새벽 3시정도 밖에 안 된 시간에 비어 있는 줄 알았던 트럭짐칸에서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불쑥 솟아 올라 트럭을 세우라고 소리를 질렀으니까...:) 트럭이 정차 하자 제대로 접지도 못한 침낭과 배낭을 들고 뛰어 내린 다음 나는 그 운전사 아저씨 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다. 사람 놀라게 하지 말라고.. 찍사하게 혼이 나면서 말이다. 정신을 수습하고 나서 보니 경주역 근처에 와 있었다. 음...그다지 멀리 달리지는 않았구나...다행이다.... 그러나 시간은 새벽 3시도 채 안 된 시간이라 그대로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에는 좀 뭣하고 다시 잘 곳을 구해야 했다. 그 근처는 역전 앞이라 그런지 다행히 벤치들이 드문드문 있어서 나의 피곤한 몸을 누일 곳은 많았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깨끗한 벤치가 하나 있어서 배낭을 베게삼아 다시 자리를 잡고 트럭에서 자다가 만 잠을 계속 자기 시작했는데..... 한 한시간 쯤 잤을까?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목소리로 판단하건데 젊은 여자가....!!!!!! "아저씨 이런 데서 뭐하고 있어요? 빨랑 일어나 봐요!!!" 윽~~~ 아저씨라니 난 그 때 겨우 19살이었는데....쩝.... 속으로 경찰인가 하고 생각 몸을 일으켰더니, 멀쩡하게 사복을 입은 이쁘장한 아가씨가 내 앞에 서서 벤치의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니... 이 야심한 시각에 이 처자야말로 뭐하러 이런데서 배회하고 있는 거야? "아저씨, 주무실데 없어요?" "우선 나는 아저씨가 아냐... 학생이라고!!!!:( 그리고 잘데는 여기 벤치가 있자나" 왠일인지 그 때는 그렇게 자연스레 반말이 나왔다...... "아이... 아저씨 여행하는 학생이구나.... 그럼 우리 집으로 가요. 제가 재워 드릴 께요...:) " "오잉???????????? 앗!!!!!!!!!!" 나는 자다 깬 멍한 머리로 그제서야 이 여자가 뭐하는 여자인지 감을 잡았다. 아이구 한데서 잠을 자니까 별난 경험을 다 하게 되는구나. 주변을 둘러 보니깐 이 아가씨 일행인듯한 여자 하나가 껌을 짝짝 씹고 있을 뿐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안 보인다. 저만치 멀리서 경주역의 불빛이 보일 뿐이다. "아저씨 저랑 같이 가요,네? 서비스 잘 해드릴께요..." 나는 이런 호객행위를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 했는데 전혀 예기치 못하던 일이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내 앞의 이 여자는... 그런 여자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관과는 전혀 딴판으로 마치 보통의 여염집에서 잠시 물건을 사러 가게에 들른 듯한 평범한 외모와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봐 아가씨, 난 무전여행 하는 학생이야.. 그런 학생에게 돈이 어디 있어? 미안하지만 딴데 가서 알아보라구...응?" 이제는 아예 내팔을 잡아 끌면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아이 아저씨 돈 안받을께요. 그냥 우리 집에 가서 잠만 자요.네??" 참...아이로니컬 하게도 목소리는 이쁘군.... "좀 생각을 해 봐요. 내가 돈이 있다면 이런 벤치 같은 한데서 잠을 자고 있겠어? 난 정말 수중에 돈 한푼 없는 학생이라고.... 그냥 나 잠이나 좀 자게 냅둬줘!" 그제서야 내말을 알아들었는지, 그 아가씨는 내팔을 놓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푹 쉬며 오늘은 지지리도 영업이 안된다는 말을 뇌까리면서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 보았다. 쩝... 나도 좀 입맛이 쓰다... 겉보기에는 학교 졸업하고 시집 갈 꿈에나 부풀어 있을 듯한 외모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밤중에 역앞에서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일까? 어깨를 추욱~ 늘어 뜨리고 역 쪽으로 걸어 가는 그 아가씨를 보면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마음 속으로는 역시 이번 여행을 하기를 잘했어...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두번이나 잠이 깨어서 인지 몸은 피곤한 데도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길바닥에서 눈을 멀뚱 거리고 있느니 차라리 불이 밝은 역 쪽으로 가서 남은 시간을 세우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나도 짐을 싸들고 역 쪽으로 향했다....... 경주는 참 깨끗한 도시이고 심지어 쓰레기통 하나조차도 고풍스럽게 생긴...좋은 도시이다. 나중에 언제고 한 번은 경주 같은 역사가 있는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비록 역전 앞의 그 아가씨 같은 황당한 경험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국물리학회에서 이번에 내려온 공문을 보니 가을학회가 경주에서 열린단다. 흠... 그 재미있었던 (?) 경주를 7년만에 다시 가보게 되었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 May the force be with you ! LANDAU ( fermi@power1.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