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1월22일(화) 20시51분33초 KST 제 목(Title): 학력고사 보던 날 I - 난로 옆자리. 나는 87학번인데 국가가 관리하는 형태의 학력고사를 치렀던 마지막 학번이고 동시에 시험을 먼저 보고 점수를 안다음 원서를 내는 선시험 후지원의 마지막 타자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지원한 대학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정해주는 장소...대개는 동네근처의 중학교에 가서 시험을 봤다. (그래서 중학생들은 학력고사날 하루는 집에서 놀았지...:) ) 그런데 입학시험을 치러본 사람들은 다 동의 하겠지만 그날 어느 자리에 앉느냐가 시험의 '재수'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대표적으로 나쁜 자리는 난로 옆자리, 추운 창가, 감독관이 신경 쓰이는 제일 앞자리 등등 이다. 내 친구 중에 하나는 안 그래도 추운 날시에 깨진(!) 유리창 바로 옆자리에 앉는 바람에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을 망쳐버린 친구도 있고 스팀 바로 옆에 앉는 바람에 고입연합고사를 볼 때 졸았던 녀석도 있었다. 내가 학력고사를 보기 위해 예비소집에 응했던 8년전...1986년 11월ㅇ 19일임.! 장소는 강남의 XX 중학교 였는데 나는 속으로 제발 좋은 자리가 걸리기를 두손 모아 빌고 있었다. 운동장에 모여서 몇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다음날 자기가 가서 앉을 자리를 확인하는 시간 이었는데... 교실 앞에 쓰여진 수험번호를 찾아 교실 위치를 확인하고 창문으로 자기 책상이 어디인지 알아 두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부정행위의 방지를 위해 교실내로 들어 가는 것은 금지 되어 있고 문도 잠가져 있었다. 근데...근데... 창문으로 내자리를 확인해 보니 세상에 난로 바로 옆자리가 아닌가? 나는 난로 옆자리를 굉장히 싫어 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중고등학교는 일제시대랑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조개탄을 때는 구식난로였는데 아시다시피 한창 열이 오를 때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얼굴이 시뻘개지고 뜨거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리고 학력고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인 수학이 대개 2교시인데 보통 아침에 조개탄을 때면 수학시간에 가장 난로가 달구어지기 때문에 나같이 더위에 약하고 추위에 강한 사람에게는 가히 치명적이다. (이건 내가 모의고사때 한번 경험해 봤다. 그 시험의 수학점수는 사상 최악이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주요한 시험인 학력고사에서 내 자리가 하필이면 난로 바로 옆자리에 있는 것이다. :0 나는 다음날 재수가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기분이 몹시 우울했다. 더구나 나는 지망하던 물리학과 커트라인하고 내 예상점수가 달랑달랑 했기 때문에 시험을 좀 잘 봐야할 처지였다. 함께간 고딩학교 동기생들이랑 자리를 확인하고 돌아 오려는데 , 나는 갑자기 무슨 수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수? ^_^ 친구들 보고는 먼저 돌아가라고 한다음 나는 다음날 시험을 치를 그 교실 문 앞으로 돌아 왔는데, 그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내 자리를 옮기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간... 내일 시험장인 그 교실에 들어가 자리 배치를 다시 한다는 것이었다. 문까지 잠겨 있는 교실에 어떻게 들어 가냐고? 이런 답답한 사람이 있나. :) 아시다시피 한국의 중고교 시설이란 것은 엉망이라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문의 자물쇠 같은 것은 다 갖추어져 있지만 복도쪽으로 난 창문 의 잠금쇠 같은 것은 교실마다 한두개 씩 달아나서 없는 경우가 많다. (그...왜...주번 같은 것을 하면 창문을 잠글 수 없어서 그냥 잠근척 하고 나와야 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나의 이 생각은 적중해서 교실의 복도쪽 창문들을 다 건드려보니 잠기지 않은 창문이 하나 있었다. 조용히 창문을 연다음 다우는 창틀을 넘어 학력고사장으로 진입했다. (여기서부터는 부정행위 입니다. :) ) 그런데...자리를 바꾸려면 내것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럴듯하게 전체를 다 바꾸어야 하는데 나 혼자 그 많은 책상을 움직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그런 짓을 해서 소리를 내면 들킬 위험이 농후했다. 까딱하면 시험도 치기전에 부정행위자가 되어서 고사장에서 쫓겨 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하하... 난로의 장작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_^ 요는 난로의 열기를 피해서 시험을 치르면 되는 것이니까 굳이 자리를 옮길 것이 아니라 난로를 못피우게 만들면 되잖은가? 난로 옆에는 이미 다음날을 대비해 조개탄과 장작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예비소집 날은 무지 추웠다.) 그러니까 이 장작과 조개탄을 없애 버리면 내일 아침에 난로를 못피우거나.....적어도 새 탄과 장작을 구해 오려면 시간이 걸려 설사 난로를 피우더라도 가장 뜨거운 시간이 수학시간을 비켜갈 수 있을 거라고 난 생각했다. 크크크...:) 그런데 문제는...그 탄과 장작을 어디다가 없애느냐 였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랬다간는 금방 의심을 받을 것이다. 교실 안에서 없애야 하는데.... 마침 교단 바로 옆에 반에서 쓰는 쓰레받기나 빗자루를 넣어두는 작은 장이 눈에 띄었다. ( :) ) 원더풀! 열어보니 그 안에는 청소도구 몇개만 있을 뿐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조개탄과 장작을 가져다가 그 장 안에 쑤셔넣고 문을 닫아 버렸다. 거기에 있던 쓰레받기로 탄가루도 쓸어 버렸기 때문에 감쪽 같았다. 흐흐흐.... 설마 내일 아침에 시험감독이 여기를 뒤져 볼 생각은 못하겠지. :) 추운 내일 아침에 창가에서 떨 수험생이나 학력고사 다음날 이 장을 열어보고 탄가루에 놀랄 중학생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도 목숨걸고 보는 시험이니 ..... 쩝...... 그리고 나서 다우는 빈 조개탄통과 장작통을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창문을 타넘어 교실을 빠져 나왔다.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나는 걱정거리 하나를 덜고 내일 시험에 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설마.. 내가 이 글 썼다고 김 숙희 문교부 장관이 내 대학입학을 취소시키지야 않겠지? 부정행위죄로 말야....) 좀 황당하기는 한데 결과적으로 그 일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전날의 예비소집 때만해도 영하 10도에 육박하던 날씨는 정작 학력고사 당일이 되니까 거짓말 같이 따듯해져서 난로를 피우지 않았던 것이다.! ^_^ (중고교의 난로는 영하 3도 이하가 되어야 피우지요.) 시험감독은 장작이 없다는 데에는 아예 생각도 미치지 않았고 나로서는 나의 계획이 잘 된것인지 못된것인지 알 기회를 놓친 셈이다. 그래도 어쨌든 난로를 안 피운 것은 나에게 커다란 득이었다. 난 그 전날밤에 잠을 잘 못자서 난로를 피웠다면 틀림 없이 졸았을 것이다. 한 일년쯤 지나고서 어머니에게 그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는 기가 막혀 하시면서 도대체 그 중요한 순간에 어떻게 그렇게 황당한 생각을 다 하느냐고 하셨다. 헐헐.... 내가 제일 궁금한 것은.... 다음날 탄가루와 장작을 작은 농 속에서 발견한 중학생하고 담임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_^ landau 오이 냉채 같은 글을 쓰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