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U ] in KIDS 글 쓴 이(By): arche (기마토끼) 날 짜 (Date): 1994년08월03일(수) 07시04분10초 KDT 제 목(Title): 불멸 라라님께서 추천하신 Kundera의 Immortality를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 부분에 이런 장면이 나오더라. (원문 그대로 아님) Agnes는 복잡한 거리를 걷고 있다...마주 걸어 오는 사람이 있을 때 한 번도 자신이 피하지 않은 적이 없다... 언젠가 마주 오는 어린 소년을 한 번 피하지 않아 보려고, 그 소년이 비껴 가게 만드려고 굳게 맘을 먹었으나, 결국은 그 소년은 막무가내로 다가 왔고, Agnes가 길을 비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장면도 나오더라. Agnes는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에 타고 있는 자기의 아버지를 상상했다... 구명 보트는 하나밖에 없고,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타려고 한다... 아버지가 거기에 계셨더라면... 그는 그저 사람들이 밀치고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물 위로 내려지는 구명정을 그저 바라보면서, 자신은 그저 조용히 가라앉음을 택했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물러섰을까..아니다..그럼 그는 그 사람들을 미워했을까...아니다...그들과 밀치고 싸우는 것자체가 그들과의 밀접한 관계맺음을 뜻한다...아버지는 그들을 미워함으로써 그들과 밀접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차라리 그는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씹으면서... 나는 한국에 있는 동안 좌측 통행을 굳게 지켰다. 그래서 웬만하면 내가 피하는 성격이었지만, 상대방이 우측으로 붙어 올 경우에는 결코 양보를 하지 않았다. 한 번은 후생관을 거쳐서 정문 쪽으로 내려 가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서 어떤 학생이 우측으로 붙어서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나는 좌측으로 붙어서 내려가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방향을 틀지는 않았다. 결국... 우리는 어색하게 마주 서 버렸다. 그리고는... 결국, 내가 오른쪽으로 비켜 나갔다. 대단한 놈이다, 하고 생각 했다. 내가 난파선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아마도 아그네스의 아버지와 같았을 것이다. 진짜로 닥치면 어찌 될 지 모르지만... 아그네스의 아버지도 그 일에 실제로 부닥친 것은 아니니까... 시내 버스가 관악 캠퍼스 정문에 서면, 우루루, 사람들이 뛰어서 몰려 든다. 서로 먼저 타겠다고 밀치고 한다. 그걸 보면, 울 나라 사람들은 신체적 접촉을 상당히 허용하는 분위기임을 알 수 있다. 가장 심한 부류는 산에서 내려온 어른들(40대 이상)이다. 그 다음은 국민학생들이다. 애들은 단순한 이기심에서, 어른들은 전쟁 통에 생겨난 각박한 생존 본능에서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되었다고 그냥 생각해 버렸다. 하지만 그 중간 부류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것은 정도는 덜하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언제나 제일 뒤에 서 있었다. 그렇게 밀고 당기지 않아도 어차피 타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때는, 타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난 그냥 서서 그들을 지켜 보았다. 아그네스의 아버지와 똑같은 심정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일종의 시위를 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제발 날 좀 보고, 몇사람이 좀 따라 하고, 결국엔 모든 사람이 바뀌길 바랬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봤다. 그래도 드물게나마, 나와 똑같은 형식의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서 느껴지는 동지 의식이 나를 즐겁게 한다. 좀더 아그네스의 아버지와 가깝던 예로서는,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영어와 수학 시간이 되면, 두 반씩 묶어서 A,B로 나누어 우열반 수업을 하고 있었다. 영어 시간이 되면 우리반이 A반이라, 1반의 A반 아이들이 우리 교실로 오고, 수학 시간엔 옆반인 1반이 A반이었다.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역시 심하던 시절이라, 많은 아이들은 1반 친구들에게 자기 자리를 미리 맡아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난 그게 옳지 않다 느꼈기 때문에 자리를 맡아 주지도, 맡아 달라 부탁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매 수학 시간마다 가장 인기 없는 자리(선생님쪽에서 볼 때 맨 좌측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거기에 앉아 있으면, 한 시간 내내 거구의 수학 선생님이 칠판 우측에 서서 설명을 하시기 때문에 칠판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선생님의 넓은 등짝만 쳐다 보고 있어야 했다. 뭐 꼭 그게 이유랄 수는 없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수학에는 '등'을 돌려 대고 살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까지도 나를 많이 괴롭히고 있다. 그땐 정말 자리 맡아 주는 친구들이 밉기도 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 때 학급 회의 시간같은 때에 의제로 들고 나와 내 주장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 때는 용기가 없었는지, 아님, 그저 아그네스의 아버지와 같이 그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침을 서로 튀기고, 열을 교환하기가 싫어서, 귀찮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독중감 결론: 최근에 소설을 하나 쓰려고 아웃라인을 잡아 놓은게 있는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주제 뿐 아니라 소재도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관찰에서 표현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상대가 안된다. 그래서 일단 중단하기로 했다. 에고... 언제나 이 모양이다. 세상에는 너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너는 언제나 너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너를 우러르기 위해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네가 역사에 길이 남을 어떤 업적을 세우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너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너는 우선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것을 우선 배워야 한다. ... 하지만...하지만... 너무 답답하다, 토끼는...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것은 너무나 많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감탄하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좋으니, 나는 지금 나의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어차피 똑같은게 나와도 표절이 아닌데, 뭐, 그냥 multiple discovery라고 해 버리면 되지, 뭐.. 모든 사람의 모든 업적을 다 공부하려다가는 죽기 전에 내 작품을 못만들텐데 말이야. 나는 발명을 많이 했었다고.. 자동 기술도 발명하고.. 근데 나중에 보니까 남들이 이미 다 하고 있는 거잖아.. 실존 주의도 창시하고...근데 나중에 보니까 남들이 훨씬 멋있게 몇십년에 걸쳐서 내가 다 읽을 수도 없는 분량을 써 놓았잖아... 포스트 모더니즘도... 그래, 난 그걸 만든게 아냐.. 시대적 조류에 그저 밀려서... 아니, 남들보다 약간 앞서서 그걸 느끼고 있었을 뿐인지도 몰라... 위대한 지성은.. 그걸 느끼고 있어서만 되는 것은 아니야.. 그것을 느낄 뿐 아니라 분석하고, 재창조하고, 흐름을 새로운 길로 인도할 능력이 없다면, 나는 어떤 틀을 창시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지성의 재료로서, 분위기를 제공하는 거대한 무리의 머리카락 한올만큼의 부분밖에 되지 않은 것이야.. 그래, 결과적으로.. 잘났다는 생각을 이젠 버려.. 너의 운명을 지금은 알 수가 없어..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했어.. 도를 깨치는 자가 흔할 리 없어.. 너는 그래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있어.. 너만의 행복뿐 아니라,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 수 있어.. 세상엔 위대한 지성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babble babble babble babble ...... bubble bubble.. 그래 너 참 잘났다. <<임시 시그너춰>> ----------------------공사중--통행..불편..죄송------------ 뚝딱뚝딱.. 쓰윽쓰윽.. 덜그럭덜그럭.. 냠냠쩝쩝.. 후루룩.. 끄으으.. 드르렁콜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