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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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libero (김 성우)
날 짜 (Date): 1995년07월18일(화) 09시43분20초 KDT
제 목(Title): [guest(kds)] 김대중 죽이기 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kds)
날 짜 (Date): 1995년07월18일(화) 01시58분23초 KDT
제 목(Title): 김대중 죽이기 3


          김대중의 이미지 관리 를 방해하는 언론

물론 꼭 그런 이유 만은 아닐 겄이다 이미지란 참으로 허무맹랑한 것이여서

많은 경우 메시지를 압도 한다 아주 거칠게 생긴 사람이 거친 목소리로 자유

민주주에 대해 떠드는 것과 아주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얌전한 목소리로 

사회주위 대해    떠든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얼마든지 앞의 사람이 뒤의

 사람에 비해 강경하고 과격 하다는 이미지를 가질수 잇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대중의 연설 방식엔 분명이 문제가 있다 그의 연설 

방식은 텔레비전이 본격적인 대중매체로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나 어울린

다 지난 87년 방송비평가 홍석경은 텔레비전에 등장한 김대중의 이미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해금된 김대중씨를 텔레비전에서 처음으로 본 많은 시청자들은 ' 아!,

 저 사람 ' 하는 감회에 젖었겠지만 곧 그의 부석부석한 얼굴과 약간
 
 다리를 저는 부자연스러운 보습 그의 놀라운 웅변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정밀한 마이크의 성능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샛된 목소리에  '김대중'이란
 
 상징적인 단어가 지녀왔던 두터운 의미가 다소 희석되거나 변화됨을 느꼈
 
 을 것이다"
 
 
 사실 김대중은 텔레비전에서 너무 '뜨겁게' 느껴진다 대광장에서 까만 점 
 
 하나로 연설하는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근본

 적인 문제는  텔레비전이 '신화' 를 허용하지 않는 매체라는 점이다 
                                                     
  영화 스타는 신화적인 존재지만 텔레비전 스타는 신화적인 존재가 아닌
  
  걸 봐도 그렇다 텔레비전 스타는 신비로운 카리스마보다는 따스한 친밀
  
  감을 주어야 한다
  
 물론 김대중이 그 점을 모를리 없다 그래서 그의 연설 방식도 꽤 달라졌다
 
 그러나 문제는 텔레비전이 악의적으로 그를 강경하고 과격하게 보이도록
 
 왜곡한다는 데 있다 김대중은 92년 인터뷰에서도   "87년 선거때 노태우 
 
 후보나 김영삼 후보에 비해 특히 텔레비전을 통한 대중 접근이나
 
  이미지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는 질문에 대해    김대중은    
  
'이미지 관리'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 결정적으로 손해를 본 것은 텔레비전 카메라가 비출때 계속 
  
  웃고 있을 수는 없거든요 어떨때는 말하다가 인상을 찡그릴 때도 있는데
  
  그 장면만 내놓는단 말예요 그러다 보니까 시청자들은 저의 안 좋은 인상
  
  만 보게 되지요 그런 대표적 예가  관훈토론회입니다 아주 까다로운 질문
  
  이 많이 나왔는데 비교적 잘했다는 평을 받고 만족하며 돌아왔읍니다
  
 그런데 텔레비전 화면을 보니까 그냥 험한 대목만 나와 기가 막히더라구요
   
  현장에서 잘해도 필요없어요"
  
  
사실 김대중에게 ' 이미지 관리 ' 라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지 관리란

텔레비전과 신문들이 엄정  중립을 지켜준다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한국

의 텔레 비전과 신문들은 김대중에 대해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어떻게 해

서든 강경하고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씌우려는 텔레비전과 신문을 상대로 

김대중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 하다 그의 이른바
                                                     
' 뉴 DJ 플랜 ' 도 텔레비전과 신문들이  중립적이란 걸 전제로 하여 기획

되었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신문들이 신바람나서 '뉴 DJ 플랜'

의 '속셈' 을 까발리는 데에 그걸 무슨 수로 당해내겠는가.

  
  김대중의 '강경하고 과격하다'는 이미지는 허구다 그러나 허구는 진실보
  
  다 강할때가 많은 게 세상살이다 그 이미지가 허구라는 건 김대중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들이 서로 모순된다고 하는 점에서도 여실이 드러난다
  
  예컨데 김대중이 과격하다는 주장을 하는 데에 앞장서온  "조선일보' 와
  
  "월간 조선" 이 동시에 김대중은 "명분 보다는 실리를 선택하는" 기회주

  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주장하는건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월
  
  간조선"91년 2월호)...(나 개인적으로 정말 동감한다 한번 바둑을 두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실리를 선택하는 기풍이 정말로 과격한가를!)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하는 사람이 과격할 수도 있는 것인가?  80년 신군부

에 의해 사형선고가 내려질 무렵,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중앙정보부 지

하실로 김대중을 세 차례나 찾아와 살려준다는 조건으로 신군부에 협조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그걸 거절하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여기서 도대체  ' 실리 '는 무었이고 ' 명분 '은 무었인가? 차라리 김대중

은 실리보다 우직할 정도로 명분을 지켜왔기 때문에 과격하다고 말해야 

앞 뒤가 맞는 것 아닌가? 김대중에 대해 쏟아지는 모든 비판들을 종합적으

로 분석해보면 우리 국어가 엄청나게 혹사당하고 모독당하고 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잔인한 김대중?


또한 언론의 김대중에 관한 보도는 상투적인 틀을 갖고 있다.

물론 이는 김대중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언론은 뉴스의 상품성을 높이

기 위해 정치인의 주된 이미지를 설정해놓고,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뉴스는
 
과장되게 보도하고 그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뉴스는 빼거나 약화시키는

속성이 있다

물론 정치인의 주된 이미지를 언론이 처음부터 혼자서 만들어 내는 건 아니

다. 거기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언론은 어떤 과정과 이유에 의해
서 건 (설사 독재에 필요로 해서 만들어  졌을지라도) 어떤 정치인에게 

주된 이미지가 어느정도 형성되었다고 생각되면, 그 이미지를 계속 강화하

는 쪽으로 보도를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 예컨데 ,김대중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만, 모 신문의 가십란에서 내가 만발한 장미꽃을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는 모습을 '잔인한 DJ'라는 내용으로 기사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자가 내가 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모를 
  
  뿐더러, 꽃은 만발한 꽃망을을 잘라줘야 그맡에 있는 눈에서 더 탐스런
  
  꽃망울을 맺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기사를 쓴 것입니다."
  
이 '잔인한 DJ'에피소드가 시사하는 경향은 연예계에서 스타의 이미지를

강화내지 조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중은 스타의 어느 한두가지 이미지에 빠져든다. 그런데, 그 스타가 대중

이 그렇게 받아들인 이미지에 반하는 다른 형태를 보인다면 대중은 혼란을

느낄 것이다 .이럴 때,연예저널리즘은 대중의 비위를 거스르면서까지 진실

보도를 하려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예지들은 그 스타자 풍기고 있는 기

종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종류의 보도만을 양산해내게 된다.

정치보도도 마찬가지이다. 김대중의 주된 이미지는 '강성'이요 '과격하다'

는 것이다. 김대중 스스로 늘 그런 이미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듯이,그건

역대 군사 독재 정권이 조작해낸 이미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미지란 게 묘한 것이다. 이미지엔 역사성이 없다. 무엇에 대해 강

 성이었고 무엇에 대해 과격했느냐 는 내용은 사라지고 ,그저 강성이고 과
격하다는 느낌만 남는 것이다. 그래서 불의에 항거해 싸운 사람은 과격한 

사람이 되고, 불의와 타협해 안일을 추구한 사람은 온화한 사람이 된다.

김대중의 경우에도 바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미지 게임의 덫에 갇혀 있는

것이다.                                              

  '잔인한 DJ'라는 기사를 쓴 기자가 굳이 김대중을 골탕먹이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해도, 과격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대중이 꽃을 사랑한다는 건 
  
  어째 좀 어을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기자
  
  는 원예의 기본이라 할 가위질마저도 김대중의 잔인성으로 연결시키는
  
  탁월한(?) 창작 솜씨를 발휘한 건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황당무계한 해석은 아직도 심심치않게 볼수 있다. 김대중을 

'고독하고 외로운 노력가'로 보는 한국정신분석정치학 회장 백상창의 분석

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백상창은 박정희에게도 고독은 있었지만, 두

사람이 고독을 푸는 방법이 달랐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박대통령은 주어진 국가 체제 내에서 긍정적인 쪽으로 개혁을 추진했으
 
나 DJ는 국가 체제나 관료주의를 거부하고 반항 기질로 표출 했읍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에겐 "주어진 국가
  
체제 내에서 긍정적인 쪽으로 개혁을 추진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민주주

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김대중에겐 "국가 체제나 관료주의를 거부하고

반항 기질로 표출했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박정희가 국가 체제

란 말인가? 백상창의 말을 더이상 반박하는 게 창피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

는 그런 수중 이하의 평가가 김대중에겐 곧잘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나무하는 박정희 예찬론이 대부분 그런식이다.

 나는 차라리 박정희를 예찬하고 김대중을 매도하는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해
 
졌으면 좋겠다. 김대중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박정희를 정당화 미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개발독재의 논리를 옹호하라는 말이다. 거기에다

일본인들이 퍼트린 '엽전 근성'을 추가시키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한국놈들

은 개 돼지처럼 두둘겨패야 말을 잘듣는다. 박정희가 야무지게 국민을 개 

돼지처럼 가둬놓고 일을 시켰으니, 이 정도나마 우리 경제가 발전을 했지,

김대중이 떠드는 민주주의로 했으면 나라 망했을 거다. 이런식으로 말이다

  도대체 누가 강경하고 과격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민주주의하자
  
 는 게 강경하고 과격하다는 소리를 듣는 나라는 아마 전세계를 통틀어 대

 한민국 말고는 없을  게다.
 
 다음은 김대중은 변신에 천재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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