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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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purunsan (강철 새잎)
날 짜 (Date): 1995년03월13일(월) 01시54분48초 KST
제 목(Title): 원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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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진레이온'을 기억하십니까?

   혹시 기억이 없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병 문제로 시끄러웠던  
  회사'하면 생각이 날 것이다. 이렇게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의 일로 쓰고,
  또 잊어버릴 수도 있는 일처럼 물어보는 `원진'은 실제로는 전혀 과거의 
  일로 묻혀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 또 한 명의 원진노동자 장례식이 같은 직업병환자 1백여명
  이 지켜보는 가운데 있었다. 원진레이온에서 직업병으로 판정받은 뒤 작 
  고한 열아홉번째 사람인 그는 홍석봉씨이다. 만 57살되는 생일을 한달여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67년 8월 입사하여 89년 2월까지 21년 6개월간 
  홍씨가 일한 곳은 소방업무를 보는 비상계획부였다. 당시 원진레이온은  
  작업환경의 열악함이 `원진유치원'이라고 불릴 정도였기 때문에 직접 가 
  스가 나오는 곳에서 일하지 않은 홍씨도 직업병에 걸린 것이다. `원진유 
  치원'이라는 말은 출퇴근 할 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동자를 가족들이
  회사버스까지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정신 못차리는 것 같은 노동자가 현장에만 가면 `씽
  씽'하게 일을 했다고 한다. 이황화탄소를 들이마시면 마치 술취한 것 같 
  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 가스에 중독이 됐던 원진노동자들은 알코올중독 
  자가 술을 마신 뒤 더 활동력이 있는 듯한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였던 것 
  이다. 홍씨는 원진에서 나온 지 3년 만인 92년 7월 직업병이 인정되어 장
  애보상금을 받았다. 

   홍씨처럼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지난해까지 총 3백62명이었다.  
  그러나 올해 노동부에서 추가로 직업병 판정을 받은 사람은 모두 1백43명
  으로 지난해 것까지 더하면 무려 5백5명에 이른다.

   노동부가 93년 7월 공장이 완전히 폐쇄된 뒤 정밀검진을 바라는 노동자
  3백64명을 대상으로 93년 12월부터 94년 6월까지 3개 대학병원에서 실시 
  한 이 검진결과는 지난 1월과 이번달에 나왔다.

   이번 판정에서 검사받은 사람 5명 중 2명(39.3%)꼴이 직업병환자로 밝 
  혀진 것이다. 

   원진을 묻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밖에도 많다. 원진레이온이 폐업함 
  으로써 실직한 사람은 8백여명인데, 그중 2백여명이 직업병으로 진단받았
  다.  직업병환자를 제외하고도 6백여명에 이르는 실직자들 대부분은 그나
  마 취직을 한 곳에서 `직업병 치료나 하라'고 쫓겨나오기 일쑤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원진'이라는 공해기업으로 고통을 겪 
  은 우리나라가 우리보다 더 약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에 팔아 넘긴 일이다
  . 이황화탄소를 써서 비스코스레이온을 만드는 산업은 역사적으로 10년이
  지나면 중독환자가 많이 발생해 다른 나라로 넘기기를 거듭해온 대표적인
  공해위험산업이다. 우리나라에 온 기계는 바로 일본 도레이레이온에서 쓰
  다가 중단하였던 것을 떼어온 것으로 이것을 원진폐업과 함께 그대로 중 
  국에 팔아 먹은 것이다. 

   원진은 또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목숨과 건강이 쓰레기처럼 버려질  
  수 없다는 양심을 불러 일으켰던 두가지 사건 가운데 하나라는 데 큰 의 
  미가 있다. 15살 소년이 수은중독으로 목숨을 잃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
  문송면군의 죽음'이 88년 7월2일이었다. 그리고 원진레이온 노동자의 고 
  통이 <한겨레신문>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이 같은달 22일이다. 직
  업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퇴직 노동자의 처지를 <한겨레신문>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 원진의 직업병 투쟁사는 시작되었다. 88년 올림
  픽 횃불 봉송로를 막고서라도 직업병의 피해를 알리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싸운 원진레이온 직업병환자들은 정밀검사를 받을 권리를 얻었고, 그에  
  따른 치료와 보상을 받았다. 91년에는 무려 1백39일간의 장례투쟁으로 1 
  천3백76명이 역학조사를 받는 등 우리나라 산업보건 사상 유례없는 기록 
  을 세운 것도 원진이다. 한마디로 원진은 우리나라 직업병 투쟁의 상징이
  었다. 해서 `원진'은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을 일깨워 주는  
  상징이자, 잣대로 되살아나야 한다.

   지금 노동현장에는 원진 이후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을 위해 만들어진  
  변화를 흔들어버리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다.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기업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이 변화는 대세가 되고 있다. 사 
  건, 사고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지난 2월 부산에서 일어난 산재사고 보 
  도는 그냥 지나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고를 그냥 사고로 넘겨 
  서는 안된다.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불에 타 죽은 19명을 그냥 가게 해 
  서는 절대로 안된다. 단 한명의 소년의 죽음에도 일어서서 외쳤던 그 많 
  은 사람들과 `원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어서서 “아니오”를 함께 외
  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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