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Hitel) 날 짜 (Date): 1994년09월14일(수) 02시24분21초 KDT 제 목(Title): 요즘 하이텔 plaza에서는... 다음은 하이텔에서 퍼 온 글들입니다 읽으시고 참조하시길.. 제목 : 어설픈 친북사고를 경계하며.. 보수언론을 편파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스스로도 그런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자주본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반공적 논조를 냉전적 반통일적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그들은 '극우니 ' '보수니 진보니'하면서 편가르기를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이들의 흑백논리는 보수언론은 조금도 믿을것이 없는 왜곡과 조작보도만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면서 자신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으며 판단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사고가 어느정도인가는 특히 대북관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들이 유일한 정론지로 믿고있는 한겨레신문의 대북논조가 이들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특히나 교수신분인 이모교수의 대북관은 한겨레의 많은 독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 교수의 논리는 한마디로 북한은 북한의 잣대로 바라 보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주 그럴듯한 일반론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북한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포기하자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왜 그 체제를 그제제의 잣대로 봐야하는가? 그런논리라면 나치도 나치즘의 잣대로 보아야하고 파쇼국가도 파시스트의 입장에서 보아야한다는 말인가? 나는 물론 북한을 남한식만의 잣대로 보는것은 옳지않다고 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에 입각 해 북한을 바라보아야한다고 본다. 그것이 어던것이냐의 문제가 또한 있지만 보편적 상식의 기준정도로도 충분하리라 본다. 북한을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는 논리는 결국 북한이 일인독재사회라고 볼때 지도자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는 논리와 같게 되는것이다. 그 교수의 기고를 볼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그는 남북관계나 북미관게에서 항상 북한정권의 입장을 충실하고도 순화된 논리로 남한대중들에게 대변해주는 역할에 매우 열심이다. 그의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그의 논리에 빠져드는 것을 본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그 논리의 허구를 깨달을 수 있을것이다. 그의 대표적 논리중에 북한정권의 숙청과 폐쇄적 독재를 변명한 대목이 있다. 그는 북한의 숙청을 민족자주정권을 세우기위한 과정의 일환이며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한다. 또한 오늘날의 북한이 폐쇄적이고 궁핍한 이유를 단지 자주국가를 세우기 위해 스스로 택한 자랑스런것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흔히 '더디가도 사람생각하느라'그런것이지 결코 정책의 오류나 체제의 모순따위는 전혀 언급조차 없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북한만의 제도들..한예로 여행의 자유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북한인민들 스스로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마치 언젠가 본 평양테레비전의 단막극의 대사를 그대로 흉내내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전 핵위기 때에도 여지없이 그의 북한 변호사 역할은 두드러졌다. 그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를 민족자주성을 지키기위한 유일한 선택이라며 당연시하고 그자 가장 미워하는 박정희마저 단지 핵개발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주국가'를 세운 '존경하는 '김일성과 비교하는 무리를 하기도 했다. 이제 그의 후예들이 이곳 하이텔에도 자주 볼수 있다. 그들은 북한을 동포의 시각에서 민족의 입장에서 보자면서 사실은 그 교수처럼 북한정권의 입장에 서있는 자신들을 알지 못한다. 한겨레 정연주 기자의 오늘자기사중에 이런대목이 눈에 띄었다. 그가 평양에서 미국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수는 있는데 미국에서는 그에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과연 북한이 닫혀있는가 아니면 미국이 더 폐쇠적인가 묻고 잇다. 언듯 보면 그럴듯한 문제제기지만 사실상 한겨레의 고질적인 친북시각에서나 가능한 생각일뿐이다. 그 정연주기자가 미국에 전화를 한것이 과연 미국보다 개방적인 근거로 본다면 일반일도 정기자처럼 누구나 미국의 사람들과 통화를 하는가 묻고 싶다. 만일 그렇다면 분명히 북한은 미국보다 자유스럽고 개방된 사회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있는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간단하게 평야의 아들이 청진의 부모를 만나러 갈때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하며 일체의 외국언론이 일반인민들에게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 사실을 몰라서인지 알고 싶지 않아서인지 정기자는 경박하고도 수선스럽게 단지전화건때문에 북한보다 미국이 더 폐쇄적이 이라는 주장을 쉽게 내뱉고 있다. 이 기사를 본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서 그릇된 인식을 가질지 우려될일이다 . 이런식의 한겨레 논조는 꼬집으러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신문을 보는 독자들이 객관적 사고를 통해 걸려서 소화해야 할일이다. 이번 북한 취재가 무산된것도 한겨레의 논리는 또 남한탓으로만 돌려지고 있다. 그동안의 논조에 비춰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그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하이텔에도 그런 식으로 주장을 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북한이 예전부터 있었던 한겨레의 북한 취재의지를 모르는바가 아니었으며 매우 호의적일것이라는 것도 새삼스러울 것이 못된다. 더구나 이번 단독취재에 어떤 반응이 올지 에상못할만큼 우둔한 북한도 아니다. 그밖에도 이전에 더한 친북 언론인들의 북한취재가 있었다. 그런데 별나게 이번 만은 한겨레의 취재를 거부한 북한의 처사가 비난받지는 못할망정 엉뚱하게 남한의 탓으로 뒤집에 씌우는 것은 그들 특유의 대남전술의 단면일뿐이다. 그리고 쫓겨나서도 오히려 북의 주장에 맞장구를 쳐대는 한겨레의 태도도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다. --------------------------- 방북취재 유감 정확한 사정을 몰라 확신은 없지만 명백한것은 한겨레 밤북취재 에 대한 여타언론의 태도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 니다. '북한태도 하나하나를 냉전식 사고로 보는 언론'이라는 글이 아래 글에 있었는데 이런 문제는 비단 언론의 문제만은 아닌듯 합니다만, 이번 연합통신의 보도자세에는 화가 나는 군요. 제 견해로는 김주석 사후에 특히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나 정치인(대통령을 포함헤서)의 발표문은 그 하나하나가 이번 연합통신처럼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행태를 언론 나름대로 분석하는 내용은 30년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는것 같아요. 이런 냉전적 사고의 고착이 이번 사태의 주범이라 생각되고 우리 모두 이제 통일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북한을 대하고 평가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면에서 밑에 양승환님께서 올리신 내용과는 좀 다른 견해 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강조되어야 할 것은 탈냉전 사고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평가를 북한의 잣대로 라는 생각은 바로 이런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이념의 벽이 없어져 가는 이시대에 상대장의 이념을 존중해주고 대거리 를 해나가는 것은 필수적인 우리의 자세입니다. 나찌와의 비유는 지극히 부적절한것 같은데 탈냉전은 결코 파시슴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사족이군요 죄송합니다). 북한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는 있어야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이제가지 우리나라에서 있어왔던 그 비판은 냉전적 사고의 와중에서 저들의 모든 제도와 정책은 악 이라는 맹목적인 신념에 기초를 둔 연역적인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세를 버리자 이것이 북한과 얘기하고 토론 하고 같이 공존해 나가는데 필요한 우리의 자세입니다. 리영희 교수는 한겨레 논단에서 정기자의 북한 취재에 있어 과거의 방북자들(임수경, 문익환 목사 등)과 는 달리 뜨거운 가슴뿐 아니라 기자다운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고 정기자에게 당부했었습니다. 숭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탈냉전을 추구하 는 분들이 맹목적 친북한 은 아닙니다. 단지 탈냉전적 사고에서 보면 냉전에 사로잡힌 분들이 보기에 '빨갱이"로 보일 가능성이 더 많을 분이죠.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 죄송합니다. 이번 취재무산에서 북한 당국의 취재불허는 어쨋든 유감입니다. 남한언론의 태도에서 보듯이 원치않는 오해때문이라는 설명에 공감하고 싶기도 하지만 최초의 북한 취재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더 넓고 긴 안목으로 완전한 자유로운 공식적 취재를 보장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에 또 다른 방북취재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때에는 완전한 자유로운 취재의 보장을 북한 당국에게 기대합 니다. ----------- 제목 : 북한을 그들 내부의 눈으로 본다는 것 .... 북한 연구 방법론의 하나로서 이른바 그들의 시각에 의해서 접근해가는 내재적 방법은 여타 다른 방법들에 비해 역사가 짧다. 88년 대학가의 통일운동과 더불어 일어난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이러한 내재적 방법으로 북한의 실체에 접근해 간 최초의 시도로 알고 있다. 그 후 황석영씨가 북한에 다녀온 뒤에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내재적 시각을 강조하여 대학생들 사이에 읽혀지고 많은 학생들로 하여금 북한 이해의 방법으로 내재적 접근이라는 방법론을 수용하게 했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을 적으로 바라보는 냉전적 사고의 틀로 인해 오히려 북한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전통적 사고의 틀의 폐해를 해소하는 데 일정정도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사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체제 내부의 눈으로만 보게 되면 그 사회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냉전적 사고와 정반대의 또다른 우를 범하게 된다. 아마 밑에서 누군가가 지적한 내재적 접근법에 대한 비판은 바로 이러한 면에 대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재적 접근방법은 용도폐기해야 할 북한 접근법인가? 아니다. 아직 우리는 냉전적 사고로 북한을 접근하는 비과학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내재적 접근법은 유효하다. 더구나 내재적 접근법은 거기에 비판적 시각을 겸비한 내재적 비판적 연구방법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통적 시각이 40년동안 전혀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데 반해 내재적 방법은 짧은 시기에 변증법적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영희 교수를 비롯한 많은 소장 학자들이 내재적 내재적 비판적 접근으로 북한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이 친북적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은 좀더 이성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려는 노력때문이다. 친북적이라는 소장학자들과 대화해 보면 알것이다. 그들도 얼마나 북한체제 비판적인가를 ... 문제는 오히려 편견으로 인해 사실에 접근하지 못하는 기존 언론에 문제가 있다. 어디 한번 북한 김일성 사망 이후 무슨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북한 내부사정 관련 기사를 스크랩 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그 중에 사실로 밝혀진게 몇%나 될까? 북한을 먼저 안 뒤에야 비판이 이성적일 수 있다. 내재적 비판적 접근법은 이러한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