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yskim (김영식) 날 짜 (Date): 1994년09월10일(토) 18시54분15초 KDT 제 목(Title): 반민특위 ..안두희..그리고 빨갱이 반민특위가 만들어진 동기..... 해방후 일제의 앞잡이를 죽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공민권만은 박탈해서 민족의 정기를 세우자!!!!!!!였음.. 일제시대때 대전지역 거의 모든 땅을 자기것으로 만든 갑부 김갑순이라는 자를 반민특위 검사들이 잡으로 갔어요 검사가 잡으로 오니 말하기를 "좋아 내 가긴 간다마는 나 그 속에 오래 있지 않을 걸세, 내가 나오고 자네가 그 곳에 들어가 있을 날이 머지 않을 걸세"하는 겁니다. 과연 머지않아 장택상(안두희증언에 따르면 김구암살을 총괄한자, 이승만의 측근)이 보낸 경찰과 김창룡이 보낸 특무대가 합동으로 총으로 반민특위 를 해산하였다. 단 한사람의 친일파도 처벌하지 못한체..... 장택상.... 그 아버지는 대지주였는데, 언젠가 상해에서 독립운동가가 찾아와 임시정부증서를 주고 자금을 요청했었다. 그는 독립운동가의 요청을 거부했을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그치지않고 일본 헌병에 밀고해 독립 운동가들이 잡혀 결국 사형을 당하게 했다. 이때 상해 임시정부는 자객을 보내 그 아버지를 살해했다. 이때부터 장택상은 독립운동하는 사람은 모두 죽여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안두희(자신의 증언) "나는 만주에서 일본 헌병을 했는데, 해방후엔 이대통령 밑에서 타공(공산주 의자들을 때려죽인다는 뜻)을 하려고 했다" 역시 김구선생도 빨갱이였기 때문에 죽였다고 합니다. 안두희의 증언에서 나온 김구암살범의 주모자 혹은 배후조종자들은 한결같이 일제하에서 일본군 또는 만주괴뢰군 장교, 지원병,헌병, 독립운동감시첩보원 헌병보조원, 그리고 일본경찰의 독립운동가 전담특고(특별고등경찰), 밀정 아편밀수범, 첩보원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자들이 미군정의 비호아래 이정권하에서 "애국자"로 둔갑 하였으며 그들의 과거를 캐묻는 자들을 모두 "공산주의자"의 딱지가 붙었습 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