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News) 날 짜 (Date): 1994년09월03일(토) 02시30분55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한국사회의 이해'를 이해한 판사 [사설] `한국사회의 이해'를 이해한 판사 경상대 교수들이 공동집필한 <한국사회의 이해>에 대한 검찰의 사법적 공세가 한 법관의 결정에 따라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8월이 시작되 자마자 공안당국과 대부분의 언론이 합작으로 펼친 이 책의 `이적성'에 대한 비난과 극언을 마다않은 공격이 뜻밖에도 사법의 준엄한 제동에 걸 린 것이다. 창원 지검은 지난 30일 밤 그 책의 공동집필자 가운데 장상환.정진상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이적표현물 제작 및 반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창원 지법 최인석 판사는 "교재의 내용이 시중 서점에 서 유통되는 진보적 사회과학 서적이나 간행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 들이며, 우리 사회의 사상적 건강상태가 그 정도의 내용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라면서 영장을 기각했다. `신공안정국'의 차고 매 운 바람 속에서 권력이 몰아붙이는 대로, 언론이 확성기를 틀어대는 대로 휘말려갈 수밖에 없던 국민들에게는 뜻밖의 결정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 고 한달 가까이 언론이 펼친 여론재판에 힘입어 그 교수들을 철창 안에 넣는 일만 남았다고 자신했을 검찰로서는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닐 것이 다. 그러나 이번의 영장 기각은 박홍 총장이 주연을 맡고 공권력이 지원하 는 `한국판 매카시 소동'에 대해 아주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명 백한 판정을 내린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최 판사는 "학문의 자유 또한 법이 보호해야 할 중요한 국민의 기본권이므로 이 문제는 대학의 자 율적 조절 기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누가 듣기 에도 당연한 이런 논리가 `공안 몰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설 자리를 찾 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검찰이 아니라 교육부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세로 경상대 교수들, 나아가서 사회과학계 전체를 대상으로 <한국사회의 이해>를 어떻 게 볼 것인가를 묻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만약 그 책이 우리 사회와 학생들에게 해독을 끼칠 수도 있다는 평가와 분석이 우 세했다면 대학이 자율적으로 그런 교재의 사용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 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모두 기독교신자가 되지는 않는다. 불경도 마찬가 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모든 독자를 사회주의자로 만드는 것도 아 니다. 논리적 사고력과 합리적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책이 주장 하는 대로만 살거나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헌법은 그래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정한 것이다. 이제는 이 단순한 진리가 제자리 를 찾을 때이다. 최 판사의 결정은 그 제자리를 찾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