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워싱턴사과) 날 짜 (Date): 1999년 1월 8일 금요일 오후 05시 47분 34초 제 목(Title): 한21/빅딜은 재벌개혁의 전부가 아니다. 빅딜, 개혁으로 가고있는가 ‘디제이 노믹스’ 1년… 경제위기 탈출 평가 속 '현실과 타협' 비판도 (사진/삼성자동차와 맞교환에 반대하는 대우전자 직원들. 빅딜 결과에 대한 우려가 높다.) “나는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김대중 대통령), “재벌개혁은 펜스를 넓게 둘러친 뒤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과 같다”(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지금의 재벌들이 국민의 정부는 과거 정부처럼 어리숙하지 않다고 인식해, 개혁에 동참하고 있다”(윤원배 금융감독위부위원장). “결과가 애초의 취지와는 다르다” 말도 많고 혼선도 많았던 5대 재벌 사이의 빅딜(사업교환)이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에 이어, 현대와 LG의 반도체사업 통합도 마무리단계에 들어갔다. 반도체의 경우 경영권을 현대에 넘겨야 하는 LG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결국은 정부의 압박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진/신년사를 하는 김대중 대통령. "어둠의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갈 것"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의 빅딜정책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나름의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되레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5대 재벌 빅딜의 구체적 결과가 애초 취지와는 다르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빅딜이 처음 거론될 당시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던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전개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비판은 보수적 인사들만이 아니라, 재벌개혁을 주창해온 진보적 경제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특히 개혁성향의 경제전문가들이 빅딜정책에 대해 쏟아내는 비판은 현 정부가 취해온 재벌개혁정책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의 성격마저 띠고 있다. 빅딜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핵심당국자들은 “빅딜은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인 만큼, 결단과 실천의 순간이 가까워질수록 비판과 우려가 커지게 마련”이라며 애써 이런 지적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또 “정부정책의 시행은 ‘이상’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는 게 아니며,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부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빅딜정책을 둘러싸고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비판은 귀기울일 대목이 많다. 비판은 먼저 전통적으로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경제전문가들과 정부의 간섭을 회피하려는 재벌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시장원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정부 개입을 최소한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환은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의 핵심은 기업의 경쟁력과 재무구조 향상”이라며 “부채비율과 상호지급보증 줄이는 기존 정책만 확실히 추진해도 재벌구조조정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지금의 빅딜 논란에서 중심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정부의 개입 필요성 여부가 아니라 빅딜의 구체적 방법론과 결과이다. 개혁론자들도 빅딜 효과에 비판 실제 많은 경제계 인사와 전문가들은 5대 재벌의 구조조정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데는 별다른 이론을 달지 않는다. 현재 시장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작동하지 않는 시장메커니즘에 우리 경제를 맡겨둘 수 없다는 인식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셈이다. 5대 재벌이 경제위기 이후에도 과잉투자를 정리하지 않은 채, 시중자금을 몽땅 끌어모아 ‘버티기 작전’을 펴왔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5대 재벌은 누군가 쓰러질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쓰러진 기업의 시장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대마불사’의 신화를 지속하려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경영학)는 “시장원리의 예외지대에 있는 5대 재벌의 구조조정을 시장기능에 맡겼다가는 우리 경제 전체가 결딴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개입론자들도 최근 윤곽이 드러난 5대 재벌 사이의 빅딜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비판한다. 1차적으로 지적하는 점은 빅딜의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사실 빅딜을 애초에 거론할 당시 빅딜을 통해 얻으려고 한 것은 5대 재벌이 턱없이 벌여놓은 중복과잉투자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경쟁력있는 기업에 경쟁력없는 기업을 몰아줘, 중복된 인력과 시설을 조정하고 경쟁력있는 기업을 만들어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래들어 경제전문가들은 대우자동차와 삼성차, 삼성전자와 대우전자,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은 모두 그 효과가 심히 의문스럽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기아경제연구소 이성신 이사는 “대우자동차의 삼성차 인수는 ‘부실’을 확대시킬 뿐이라는 게 자동차업계의 일반적 평가”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자동차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각각 4천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 초 대우가 인수한 쌍용자동차의 적자규모와 합칠 경우 연간 1조원을 훨씬 넘는 규모다. 게다가 삼성차는 차종도 SM5시리즈 하나뿐이고 그마저 대우의 생산차종과 겹친다. 제품력이나 기술력, 시장경쟁 등 어디에서도 이렇다할 만한 시너지효과를 얻을 길이 없다는 게 대우차 관계자의 솔직한 얘기다. 대우전자를 인수하기로 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도 “대우전자를 인수한 뒤에도 5년 동안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면, 도대체 인수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논란을 빚고 있는 현대와 LG의 반도체 빅딜도 효과가 의문시되기는 마찬가지다. 참여연대의 김기식 사무국장은 “제품의 주기가 극히 짧은 반도체 분야에서, 생산시스템이 서로 다른 두 업체를 통합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라면서 “확인된 부채만 20조원에 가까운 이들 기업을 합칠 경우, 자칫 부실만 거대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참여연대 소속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개입으로 생긴 통합법인이 경영난에 빠지면, 정부도 단단히 발목을 잡히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정·재계 일각에선 정부의 개입에 의한 현대와 LG의 반도체부문 통합이 자칫 정치·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컨설팅업체의 평가를 바탕으로 정부가 특정업체(LG)를 일방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와 의혹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해온 현대가 정부 빅딜정책에서 최대 수혜자로 등장하고 있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거창한 맞교환 경쟁력 향상은 없다 외국의 시각도 곱지 않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맞교환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규모의 경제는 물론 기술이나 시장점유율 면에서도 이번 빅딜의 경제적인 이점에는 의문이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일부 사업에서의 철수가 자동적으로 생산설비와 부채를 줄여주지는 않는다”며 “부채를 줄이려면 계열사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거창한 맞교환이 있었지만 해당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될지는 몹시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정작 중요한 것은 합쳐진 과잉 설비와 인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인데, 이에 대한 정부나 해당 재벌기업의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 경제학자는 “지금의 빅딜은 빚도 많고 소득도 줄어든 사람들끼리 단순히 서로 아파트를 바꾼 양상”이라며 “아파트 평수를 줄여 작은 집으로 이사가듯 빅딜이 과잉투자설비의 처리로 이어지지 않는 한 애초의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잉투자설비는 그대로 남고, 실업만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처럼 빅딜의 내용이 애초 취지와 달라지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경제계 인사들 사이에선 재벌구조조정의 한 수단에 불과한 빅딜에 정부가 지나치게 얽매인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나아가 빅딜을 ‘가시적 개혁성과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정치논리가 작용한 탓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 사례는 퇴출대상기업인 삼성차를 빅딜에 포함시킨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대우가 삼성차를 인수한다면 적당한 시점에 뜯어 팔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식의 빅딜은 한마디로 퇴출만 지연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루빨리 빅딜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만들어 낸 결과”라며 “삼성으로서는 정부의 빅딜에 호응하는 외양을 갖추면서, 골칫덩어리였던 삼성자동차의 처리를 대우에 넘긴 셈”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계 증권사 지점장인 ㄴ씨도 “한국 정부가 빅딜의 성과와 시한에 집착하다 빅딜, 워크아웃, 퇴출 대상 기업의 구분을 합리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각한 빅딜정책의 오류는 “과잉중복투자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재벌들에 오히려 혜택을 주고 있는 점”이라고 많은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벌총수들이 낳은 부실경영의 손실을 재정자금, 즉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빅딜을 통해 합쳐진 기업에 대해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부채의 출자전환이나, 상환연기를 해주는 것은 분명 특혜다. 특혜가 어쩔 수 없다면 대신 그릇된 투자결정을 한 총수에게 책임을 분명이 물어야 한다.” 한국방송통신대 김기원 교수(경제학)는 “빅딜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과잉중복투자의 책임이 있는 재벌들에 정부가 불필요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투자결정 주체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특혜를 준다면 이전 정권의 재벌개혁 시늉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을 폈다. 예컨대 삼성자동차만 하더라도 빅딜을 지렛대 삼아 국민의 세금으로 부채를 탕감해줄 게 아니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김 교수의 의견에는 재벌개혁을 요구해온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물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기업인들도 상당수 동의하고 있다. 특히 외국기업인들은 그릇된 경영에 대해 책임을 지는 풍토가 자리잡지 못한다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주로 지적한다. 빅딜은 재벌개혁의 전부가 아니다 “빅딜이 재벌구조조정이나 개혁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빅딜은 결코 재벌개혁의 전부가 아닐뿐더러 핵심도 아니다.” 한국개발원의 한 연구원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빅딜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워낙 세게 밀어붙이고 있어 마땅한 대안이 없다”며 “하지만 그렇더라도 빅딜이 재벌구조조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여론화된다면 재벌구조조정이 졸속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고위관계자들도 각 부처나 출연 연구기관에서 제기되는 빅딜정책 비판을 원천 봉쇄하려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차분히 빅딜의 내실을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활발한 정책토론의 자유가 보장될 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상우 기자 ysw@mail.hani.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