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6일 월요일 오후 02시 21분 50초 제 목(Title): 조선/최장집반론에 대한 월간조선의 반박 [논쟁] 최장집위원장 반론에 대한 월간조선의 반박 최장집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측의 주장에 대한 월간조선 의 반박문. ------------------------------------------------------------------------------- - ◇ 최 위원장의 용어 분석 공산폭동→인민항쟁, 남침→민족해방전쟁 ------------------------------------------------------------------------------- - 최 위원장이 대한민국의 건국과 한국전쟁을 어떤 시각으로 평 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에 의하여 극명 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공산폭동을 '인민항쟁' '민중봉기' 등 으로 긍정하고 대한민국 건국세력의 진압을 폭력, 테러, 탄압이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또 그 연장선상에서 좌익을 혁명적 민족세력, 건 국세력을 반혁명적 분단세력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용어 선택의 논리적 귀결로서 그는 김일성의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단 정하여 '미제의 식민지'인 대한민국을 해방시키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또 중공군의 개입 결정에 대 해 '다른선택이 없었다'고 변호하는가 하면 미국 개입 이후 '한국 전의 당사자는 북한과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 및 유엔 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대한민국과 국군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최 위원장이 김일성의 남침 결심을 '역사적 결단'이라 표 현한 것은 그의 논리체계 전체의 맥락에서 파악할 때 자연스러운 용어 선택으로 되는 것이다.최 위원장은 '국민국가의 형성과 근대 화의 문제'란 논문에선 1946년 10월 대구에서 남로당이 선동하여 이루어진 10월 폭동을 10월 인민항쟁이라고 하면서 그 의미를 동 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항해 일으킨 폭동을 '항쟁'이라고 표현한다면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는 타도의 대상이 되며 정통성 또한 부정되는 것이다. 저자는 또 '1947년 3·1절 군중집회, 1948년 2·7구국투쟁, 제 주 4·3 항쟁 등 수많은 대규모 시위와 파업과 군중집회를 통하여 군정 독재와 분단정책에 항거하였고 이에 대해 군정과 극우보수세 력은 탄압과 테러를 강화하는 악순환 속에서 민중세력은 쇠잔하여 갔다'고 썼다. 최 위원장은 일련의 폭동들을 주동한 공산당을 또 민중세력이 란 말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공산당이 포함된 이 민중세력의 행동을 독재에 대한 '항거'라 표현했으며 이의 진압을 '탄압과 테 러'라고 표현했다. 대구폭동을 일으킨 공산당이 경찰관과 경찰관 가족들을 얼마나 무참하게 학살했는가 하는 것은 그의 논문에는 한 줄도 언급되지 않고 마치 공산당이 피해자인 것처럼 기술되고 있다. 관련기사 [왜 문제인가] 대통령자문 핵심공인…검증 마땅 ◇ 최장집 교수측 반론 내용에 대한 반박. ----------------------------------------------- ◆'개전 초반은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부분 6.25전엔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였다는 논리 ----------------------------------------------- ▲최위원장측 반론:저자가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 자신이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였다는 의미이지 필자의 견해가 그러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저자는 "첫번째 시기에서 의 전쟁은 전쟁을 유발한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었던'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를 달리 표현하여 "한국전쟁은 전쟁을 통한 공산주의 통일을 지향했 던 전쟁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월간조선 반박:'민족해방전쟁'은 최 위원장의 한국전쟁관 전 체를 보여주는 핵심 단어이다. 문제의 문장을 인용한다. "첫번째 시기(월간조선 주-남침부터 미국이 개입결정을 내릴때 까지의 시기)에서의 전쟁은 전쟁을 유발한 북한 지도부가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었던 반면, 두번째 시기(주-미국개입결정에서 유엔군이 38선을 넘기까지의 시기)부터 전쟁은 혁명적 민족주의세 력 대 분단세력이라는 민족 내부의 모순이 폭발하여 표면화되는 내전일 수가 없게 된다. 이때부터 전쟁의 당사국으로서 미국이 전 면에 나서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과 싸우는 전쟁으로 변질 된다.". 저자는 6·25남침을 '북한 지도부가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 이라고 성격 규정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의 시각을 인용하면서 동 시에 그 해석에 동조하고 있는 표현법이다. 최 위원장은 이같은 논법이 북측의 주장을 소개한 것이라고 했 으나 1990년 9월 15일 태암출판사에서 펴낸 '최장집 편 한국전쟁 연구'란 책에 수록된 자신의 '한국전쟁에 대한 하나의 이해'란 논 문에서 직접적으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논문 에서 최위원장은 "첫번째 시기에서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민족해방 전쟁이었던 반면, 두번째 시기부터…(이하 위의 인용문과 같음)" 라고 썼다. 이 문장에서는 더 확실하게 최 위원장의 전쟁관이 그 어떤 오 해의 소지도 허용하지 않고 확실하게 피력되고 있는 것이다. 최 위원장이 김일성의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해석하고 있 는 것은 그의 전체 전쟁관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왜냐 하면 최 위원장은 김일성 일파를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 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 때 우리가 상대하여 싸운 적은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이 아니었다. 우리는 김일성 일파, 즉 공산당과 싸운 것이다. 김일성과 그 추종자들이 왜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으 로 불려야하는가. 어쨌든 김일성의 공산당을 혁명적 민족주의자라 고 했으니 그런 민족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 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다. 6·25를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보면 심각한 역사 해석이 등장하 게 된다. 북한이 미 제국주의자의 압제를 받는 '식민지 남한'을 해방하기 위한 의로운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리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6·25 이전에 대한민국이 미국의 식민지였다는 논리를 수긍할 수 없는 한 6·25가 민족해방전쟁이란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6·25를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한다면 6·25를 일으킨 세력은 면죄부를 받게 되고 대한민국은 미제의 식민지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태를 야기한다. 용어가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띠고 있는지 이 경우에 여실히 증명되는 것이다. 북한은 6·25를 민족해방전쟁으 로 보는 시각의 연장 선상에서 지금도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 면서 남조선 해방을 정권의 목표로 삼고 있다. 최 위원장은 또 이런 표현을 한다. "이제, 즉 미국의 개입결정 이후 교전 당사자는 북한과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북한 대 미국과 그 외피로서의 유엔군이 되었다.". 미국의 개입 이후 새로운 양상으로 벌어진 전쟁의 당사자를 북 한과 미국이라고 한 것은 6·25 전쟁을 수행한 우리 국군의 역할 을 무시하는 논리이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6·25동란에서 국군은 약 30만명이 전사했고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전사자는 약 5만이 었다. 대한민국과 국군이 6·25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논리는 또 대한민국과 국군이 미국의 식민지이고 괴뢰라는 북한식 인식을 반 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는 민족해방 전쟁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정통성마저 부인 하는 논리이다. ----------------------------------------- ◆ "6.25 최대 희생자는 북민중이 1차 수혜자는 이승만정부" 국민의 상식적 역사해석 뒤엎는 궤변 ---------------------------------------- ▲최위원장측 반론:필자는 누차에 걸쳐 한국전쟁을 개전한 것 은 북한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한국전쟁 최대의 피해자가 북한 민중이라는 지적은, 남한의 민중들의 희생이 더 적다는 점을 강조 하려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이최대 수혜자였음을 대조하여 강조하 기 위한 것임. ▲월간조선의 반박:최 위원장의 논문(국민국가 형성과 근대화 의 문제)을 인용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남한에서의 민중들은 참담한 피해를 입었지만 이와는 대조적 으로 이승만정부는 누구보다도 일차적인 수혜자가 되었다. 전쟁은 이승만에 위협을 주었던 국내의 반체제세력과 정치적 반대자들을 일거에 약화시키거나 제거하면서 반공국가의 안정적 기반을 조성 케 했다. 북한에서의 사태는 더욱 나쁜 것이었다. 아마도 이 전쟁 에서의 가장 최대의 희생자는 북한의 민중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 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었던 미국 의 군사력이 무차별적으로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북한의 민중과 그 시설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의 직접적인 살상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사에서도 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운 가 장 참혹한 파괴를 이들이 전후에 주로 자력갱생이라는 방법의 노 력을 통하여 재건해야 하는 임무까지도 떠맡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에서도 가장 큰 수혜자는 김일 성 그 자신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북한정권을 구성하였던 모든 세력들은 남로당을 필두로 하여 모두 숙청되었고, 북한은 김일성 유일체제를 향하여 치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이 과연 김일성이 최대 수혜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 미군의 북한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주로 비난할 목적으로 쓰 여졌는지는 문장의 양과 질을 계산해 보면 분명해진다. 불법 기습 남침을 당한 대한민국 국민과 이승만 정부가 가장 큰 피해자이고 희생자이다. -------------------------------------- ◆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왜 남침을 역사적 오판이라 하지 않았나 --------------------------------------- ▲최 위원장측 반론:이는 월간조선이 필자를 공격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근거로 주장하는 대목.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역 사적'이라는 표현을 월간조선이 주장하는 바대로 긍정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님. '역사적'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이후 한국사회 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일 뿐임. 필 자는 바로 그 뒷 문장에서 그같은 '역사적 결단'이 오판에 불과한 사실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음. "그(김일성)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였고, 결국 그는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하였던 요소는 한반도의 국내 정치적 조건이라기보다 는 국제 정치적 조건, 즉 급속하게 변하고 있었던 냉전체제의 성 격과 그곳에서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국의힘이었다. 국제 정치와 전후 국가체계의 성격을 이해하는 시야의 협애함이라는 면 에서 김일성과 박헌영은 약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필자는 김일성이 지나친 과신으로 전쟁을 개시하게 되는 오판 상황을 설명한 것임. ▲월간조선 반박:최 위원장이 '오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란 표현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왜 간단 하게 '역사적 오판'이라고 쓰지 않았는가. 역사적이란 말과 결단 이란 말에는 긍정적 의미가 들어있다. 지존파가 살인이라는 결단 을 내렸다거나,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이란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역사적이란 말에는 '역사에 남을 만한 위 대한'이란뜻이 숨어 있고 결단이란 말도 좋은 것, 또는 위대한 것 을 결심할 때의 심리를 묘사할 때 쓰는 것이 보통이다.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간 계기를 만든 김일성의 남침에 대하여 역사적 결단 이란 말을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쓸 수 있나. ---------------------------------------- ◆ 김일성 남침의미 애매하게 축소 기습남침 분명한데 `자연발생'으로 몰아 ---------------------------------------- ▲최 위원장측 반론:글 전체를 통해 필자는 북한의 남침을 분 명히 지적하고 있으며, 그 책임을 엄중히 묻고 있다. '우리는 6월 25일 새벽 4시반경 북한이 38도선으로부터 선제 공격을 감행하면서 한국전쟁이 개시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의 표현이 일견 유보적으로 보인 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북한의 남침 사실에 대한 유보 적 평가가 결코 아니라, 한국전쟁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6월 25일'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전쟁의 역사적 구조 배경 과 함께 전쟁이 전개되는 전체 과정을 살피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 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월간조선 반박:'한국전쟁의 한 해석'이란 논문에서 최 위원 장은 이런 설명을 하고 있다. "1949년 이래 38도선상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남북간 양군의 무장충돌과 해상사건은 많은 부분이 남한측의 공격에 의해 야기되 었다. 5월초 미군 당국은 남한군이 개성, 춘천 지역에서 4km나 북 상하여 여러 마을을 공격한 사태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전쟁발발 1년 전에 이미 준전시 상태 또는 내전상태가 시작되 고 있었음을 뜻한다.이러한 사태발전은 남한내 지배세력과 민족운 동세력간의 대립상황이 남한내 민족세력의 궤멸과 더불어 정부 수 립 이후에는 남한내 게릴라전의 양상으로 변하고 이는 다시 다음 단계에서 남북간의 내전상태로 변해가고 있었음을 뜻한다.". 최 위원장은 우선 한국전쟁의 원인을 이야기하면서 남한내의 남로당 세력을 '남한내 민족세력'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또 민족 의 이익을 희생시켜가면서 소련을 추종하고 계급이익에 봉사하는 공산세력을 '혁명적 민족주의세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둘째, 6·25 개전 이전에 우리 국군이 더 많이 북한을 공격했다는 최 위원장의 주장도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 옹진전투, 개성전투 등은 모두 북 한측의 공격에 의하여 촉발된 것이고 국군이 자위조치로서 북한 지역으로 넘어간 적은 있을지 모르지만 압도적 다수의 사건은 북 한측이 도발한 경우이다. 6·25 전에 있었던 북한측으로부터의 끊 임없는 게릴라 남파는 도발이 아니고 무엇인가. 남한이 언제 반공 게릴라를 북으로 보냈는가. 최 위원장은 6·25 남침의 원인을 남 한내의 좌익세력 궤멸과 남한내 공산 게릴라전의 확대, 남한이 주 로 촉발했다는 남북한간의 충돌, 그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6·25의 순서로 설명함으로써 김일성에 의한 명백하고도 비겁한 남침 기습 전쟁의 의미를 마치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애매하게 축소하려 하고 있다. 6·25는 38도선상의 소소한 충돌이 확대되어 자연스럽게 일어 난 것이 아니고 김일성이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약속받은 뒤 일으 킨 전연 새로운 차원의 전면남침인 것이다. 최 위원장은 6·25 전 에는 북한측에 대한 남한의 공격이 많았다고 쓰고 있는데 이런 통 계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최근에 공개 된 소련의 비밀문서들은 이런 남북한간의 충돌도 대부분 북한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다. --------------------------------------- ◆ "좌파는 혁명추구, 우파는 혁명반대" 우파를 친일세력과 야합한 집단으로 규정 --------------------------------------- ◆<'혁명'과 '반혁명'이 설령 가치중립적인 정치학 용어라 할 지라도 학문적배경이 얕은 사람들에게 혁명은 좋고 따라서 혁명을 추구하는 좌파도 좋은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줄까봐 우려되는 대목 이다>에 대한 최위원장측 반론 = 기자가 인정하고 있듯이 '혁명', '반혁명' 등의 용어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객관적인 사회과학 용어일 뿐이다. 학문적 배경이 얕은 사람 운운의 우려는 기자만의 기우일 뿐 우리 국민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우매하지 않다. 해방 과 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대해 연구를 하다보면 누구나 부득불 당 시 사람들이 사용한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하게 된다. 당시 좌파들이 혁명을 추구했다면 우파들은 혁명에 반 대하는 입장이다. ▲월간조선의 반박=혁명이 긍정적인 통념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지식인들이 왜 4·19 의거를 혁명으로 격상시키고 5·16 군사혁명 을 쿠데타니 정변으로 격하시키는건가.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 중 혁명이 붙은 말 가운데서 긍정적인 의미를 띠지 않는 것이 어 디 있는가. 근대화 혁명, 동학혁명, 4·19혁명 등등이 그런 경우 다. 최 위원장은 '한국민주주의의 이론'이란저서에서 이렇게 썼다. <미군정이 수립되는 것과 동시에 친일파 세력과 우파들은 조직 화된 혁명적 민족주의세력에 대항하는 일련의 반혁명적 집단을 서 둘러서 조직하기 시작했다.>. 친일 세력이 조직한 것이 '반혁명적' 세력이라면 '반혁명적'이 란 말에는 분명히 나쁜 의미가 깔려 있다. 문제는 우파가 조직한 것은 반근대화 혁명 조직도 아니고 반민주화 혁명 조직도 아닌 반 공산혁명 조직이었다는 점이다. 우파는 농지개혁 같은 근대화 혁 명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공산혁명에 반대한 것이다. 10/23(금) 19:46 입력 ◀이전화면 ∥ ▲초기화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