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6일 월요일 오후 02시 08분 52초 제 목(Title): 조선/ 한국전쟁관련 최장집논문 발췌 [최장집 역사관논란] 한국전쟁 관련 최장집 논문 발췌 "마치 북의 공격 기다린듯 미, 전광석화처럼 개입" . ------------------------------------------------------------------------------- - 관련기사 : ------------------------------------------------------------------------------- - 최장집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역사관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월간조선이 11월호에서 최 위원장의 저서와 논 문을 통해 본 역사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일부 정당과 언론 은 그의 공직사퇴를 주장한 반면, 일부 언론과 단체 등에선 이 를 '매카시적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는 등 공방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핵심은 국가 최고정책을 결정하는 공직자로서 최 위원장 이 우리 현대사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 모아진다. 최 위원장의 1993년 저서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제1부에 실린 논문 '한국전쟁의 한 해석(이하 한 해석)'과 1990년 태암출판사에서 펴낸 최장집 편 '한국전쟁 연구' 중에 실린 논문 '한국전쟁의 하나의 이해(이하 하나의 이해)'에서 그의 현대사 인식과 관련 된 부분을 발췌했다. 두 논문은 사실상 내용이 거의 같은 것이 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하나의 이해'에는 있었지만 '한 해석' 에서는 사라진 부분들이 대부분 민감한 내용들이어서 주목된 다. (편집자). ------------------------------------------------------------------------------- - 사진설명 : '한국전쟁의 한 해석'이 실린 최교수의 93년 저서. ------------------------------------------------------------------------------- - 김일성에 대하여=사실 김일성은 공산주의적이기보다 열렬한 민족주의자로서 민족통일의 사명감을 가졌고, 이러한 통일에의 의지는 중국내전에 참여하였던 참전용사들이 귀국하면서 북한군 이 강화됨으로써 실현될 계기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하나의 이해'·최교수는 이 문장 다음에 한 문장을 더한 다음 각주·각 주를 달아 브루스 커밍스의 Child of Conflict pp 38∼44라고 밝히고 있으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인용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남북한 군정에 대한 평가="미군정하 남한사회에서 무수한 집 회, 소요, 봉기, 노동자파업, 학생동맹휴업, 미군 및 경찰과의 충돌사건은 열거하기조차 어렵다. 그 가운데서도 1946년 8월 철 도파업으로 시작된 총파업, 10월 초순부터 11월 중순까지 거의 남한 전역으로 확대된 10월 항쟁은 거대한 민중투쟁으로 특기할 만하다", "소련군 정하의 정치권력은 일제식민지 국가기구의 해 체, 식민잔재 청산, 혁명적 토지개혁을 통한 지배적 사회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급진적 개혁과 급진리더십의 권력장악 은 북한이 1945년 10월 이미 남한에 대한 민족민주혁명의 정통 성과 민족통일 과업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 면서 이른바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담보하는 책원지"로서의 '민주기지노선'을 천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 였다."('한해석'). 6·25를 김일성의 남침에 의한 전쟁으로 보는 기존 정통시각 에 관하여= "이러한 냉전 반공 모럴리스트적 접근은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이후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정당화하고 남한단독정 부의 존재이유를 뒷받침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제 하의 민족해방운동과 압도적 다수의 민중들의 민족자주독립국가 형성을 위한 투쟁과 희생, 열망을 상대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좁 은 문제틀을 통한 접근이며 이데올로기적 접근이다."('한 해석'). 전시 북한주민 남한대량탈출에 관하여="원산의 경우 이때부 터 휴전협정조인 바로 이틀전까지 미 해군사상 861일이라는 최 장의 해안봉쇄와 연속적인 함포사격으로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 처참한 상황은 전쟁 당시 남한사람들 사이에서도 원산이 지도에서 없어졌다는 소문을 퍼지게 했던 것이다. 500만명이 훨 씬 넘는 피란민들이 북한지역으로부터 남한으로 넘어온 것은 이 런 전황하에서였다. 물론 거기에는 다수의 기독교 신자들을 비 롯하여 공산통치를 거부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동시에 원폭투하 의 소문과 폭격의 두려움, 초토화되어가는 북한지역에서 집과 먹을 것을 찾아 남하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 해석'). 6·25에 대한 성격규정에 관하여="하나의 질문이나 기준을 적용하여 설명하려는 방법은 한국전쟁의 복합적이면서도 시기에 따라 변하는 본질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식적이고 일면 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시기구분을 통하여 전쟁의 성격을 총 체적이며 역동적 측면을 보려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시기에서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민족해방전쟁이었던 반면, 두번째 시기부터 전쟁은 혁명적 민족주의세력과 분단세력이라는 민족내부의 모순이 폭발하여 표면화되는 내전일 수가 없게 된다. 이때부터 전쟁의 당사국으로서 미국이 전면에 나서 한국의 혁명적 민족주의 세력과 싸우는 전쟁으로 변질된다." ('하나의 이해'). 김일성은 전면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박명림 박사의 제한전 론을 소개하며 별다른 논평이 없는데 관하여="제한전이라고 볼 만한 근거로서 병력의 부분적 동원, 모집, 후퇴계획의 부재와 장비의 대비등 매우 미흡한 전쟁준비상태, 전면적 남침이 아닌 서울 포위를 중심으로 한 초기 공격양상, 남한지역에 있어 광범 한 민중봉기를 기대한 서울 일원에만 한정된 군사작전 등을 제 시한다. 실제로 전쟁 초기에 북한군에 대한 환영과 지지가 광범 위하게 관찰된다."('하나의 이해'). 6·25때의 미군개입에 관하여="미국의 개입결정은 전광석화 와 같아서 마치 덫을 놓고 걸리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북한 이 공격해주기를 기다린듯한 형국이었다."('하나의 이해'). 미군과 한국군에 의한 38선 돌파에 관하여="전쟁의 쌍방은 공격되기 이전의 원상을 회복할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는다. 이 점에서 미국은 내전에 대한 외세의 참전이라는 명분없는 일방적 개입에 원상회복이라는 명분으로 그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점에서 38도선 이북으로의 북진은 공격적 팽창주의 의 발로라고 밖에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하나의 이해').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에 관하여="53년 5월에는 덕산댐을 비 롯한 4개 댐이 공습으로 폭파됨으로써 때아닌 홍수로 광역의 전 답이 물에 잠겼다. 그것이 어느 편에 대해서이든간에 우리는 미 국의 이 가공할 파괴력과 야만적 폭력성 앞에서 전율하게 된다. 이 암흑의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서구의 과학문명으로부터인 가, 미국의 제국주의로부터인가."('하나의 이해'). 전쟁 및 휴전을 둘러싼 이승만과 미국의 대립에 대해= "어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전시중 북한점령정책, 휴전협정, 미일동 맹체제의 강화 등의 내용을 둘러싸고 미국의 전쟁수행정책에 대 해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미국의 위압적 자세에 맞서는 등 그의 완강한 자세에 대해 민족주의자라고 높이 평가할지 모른다. 그 러나 만약 그것이 민족주의라면 다만 파시스트적 민족주의일 뿐 이다."('하나의 이해'). ( 정리=이한우기자 : hwlee@chosun.com)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