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생각해보죠��) 날 짜 (Date): 1994년07월27일(수) 03시58분21초 KDT 제 목(Title): [한겨레]언제까지 '냉전'인가(칼럼) 언론인의 54.6%가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에 대한 정부의 조의 표명'에 찬성하고, 87.5%가 보도에서 `주석' 칭호를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도(<언론노보> 23일치 `조합원 여론조사'), 정작 신문.방송은 조문을 거 론한 국회의원들에게 인신공격에다 공갈까지 서슴지 않는 것을 보고 일반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언론인의 생각과 그들이 만드 는 지면에 나타나는 논조의 이런 괴리현상은 언론계 내부사정을 약간이라 도 아는 이에게는 하등 놀랄 일이 아니다. 신문의 논조가 사주 한사람 또 는 소수 핵심적인 편집간부의 상황인식과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고 이들이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 젖어 있는 오늘의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언론계 내부에 구조적 이견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어쩌면 바람 직한 현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견을 대화와 조정을 통해 해소하느 냐, 아니면 어느 한쪽의 강요와 다른 쪽의 굴복으로 덮어버리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 언론에 나타난 조문논쟁에서는 내부 대화가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만일 대화가 있었다면, 설사 조 문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더라도 지금과 같은 균형 잃은 논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박홍 서강대 총장의 `발언'이 대학내에서 학생대표들과의 진지한 토론을 통해 먼저 나오지 않고, 청와대에서 열린 총장모임에서 불쑥 나왔 다는 사실은 대학내 대화부재 현상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그의 발언에 대 한 서강대 경영대 교수들과 20개 대학 총장들의 `지지성명'은 그동안의 ` 강요된 침묵'에 대한 반발로 이해된다. 학생들의 대자보에 이름이 올라버 리면 끝장이니까 아무도 학생들에게 따끔한 소리를 못했다는 어느 교수의 고백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총장들은 박 총장의 말에 `체험적 공 감'을 표시하기 전에 그 말의 사실 여부와 비중을 냉철하게 검토하고, 가 장 적절한 수준의 `조처'가 어떤 것인지 숙고하는 지성을 보였으면 좋았 을 뻔했다. 박 총장의 말은 설사 그 취지가 교수들의 공감을 샀다고 해도 주사파가 간첩들처럼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는다고 말한 대목은 `사실' 로 단정하기 전에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총장 들이 "다 아는 일인데 증거는 무슨 증거"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은 그들이 민주적인 대화와 토론에 얼마나 미숙한지를 말해준다. 대화부재의 일방통행이 언론과 대학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사회 전 체가 크고 작은 이견에 시달리고, 어느 한쪽에 의한 강압적 `통합'이 갈 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따라서 일부 언론의 주장대로 만일 누군가가 조문 을 반대한다고 해서, 북한을 비판한다고 해서 `매카시즘'으로 몰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반면에 조문에 찬성한다고 해서 친북세력으로 몰 거나, 박 총장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비판한다고 해서 `주사파' 를 옹호하는 것으로 몬다면 그것 또한 분명한 `매카시즘'이다. 오늘과 같이 `탈냉전'이 급격히 진행되는 속에서도 냉전적 사고를 견지 하는 사람들은 흔히 `6.25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로 이견을 제 압하려고 든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에는 6.25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미래는 소수 `냉전세대'의 것이 아니라 이들 절대다수의 것이다. `냉전'을 팔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더 이상 절대다수의 것이다. `냉전'을 팔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더 이상 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냉전적 사고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을 걱정하기보 다는 스스로 냉전적 사고에서 헤어나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