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learsea (晴海) 날 짜 (Date): 2008년 06월 21일 (토) 오전 04시 57분 20초 제 목(Title): 최장집 교수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최 교수의 "화려한" 마지막 강의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먼저 드는 생각은 최 교수가 과연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어떤 이해를 하고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나같은 아마츄어가 최 교수와 같은 "대" 학자의 주장에 시비를 거는 것이 무모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배운 자유민주주의와는 일치하지 않는 주장을 최 교수가 한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듣지 않고 언론보도에 의존한 내 주장의 핀트가 어긋난 것이 있다면 강호제현들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1.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인가?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어떤 사회가 일정한 크기를 넘어서면 직접 민주주의를 정치 일반에 적용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인 측면이 많아서 그런 것이지, 직접 민주주의 자체가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옳다/그르다 등의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 점은 간단한 연역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선출된 대표자들이 극악무도한 자들이라면 그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과는 참담한 것이 될 것이다. 즉, 현대 민주주의에서 간접적 요소가 더 많이 채택되는 쪽으로 "선택"된 것이지 현대 민주주의 자체가 간접(대의제) 민주주의라고 강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확한 표현은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채택하지만 직접 민주주의 요소도 병존하는 혼합형이다" 정도가 될 것이다. 주민 투표, 주민 소환, 주민 발안 등의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정치에서 아직 뿌리를 못 내리고 있지만, 그런 제도들도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우리 대통령 선거는 어떤가?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것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가? 이런 예들은 직접 민주주의가 오히려 더 중요한 의사결정에 적용됨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에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음을 잘 나타낸다. 또한 "절차적 정당성"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인민 주권"의 직접 민주주의가 부닥치면 직접 민주주의가 당연히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항쟁, 6.10 직선제 쟁취 민주화 항쟁 등의 국민 저항이 폄훼될 수도 있다. 2. "정권 퇴진" 요청은 "잘못"된 것인가? 최 교수가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강변한 이유는 아마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 시위의 "정권 퇴진" 구호를 에둘러서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나는 최 교수에게 묻고 싶다. 최 교수는 무슨 근거로 일부 시민들의 "정권 퇴진" 요청을 "잘못" 되었다고 주장하는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서? "정권 퇴진" 촛불들이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어서? "정권 퇴진"을 외치면 남한이 북한에게 먹히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절단나서? 대통령이 임기를 못 채우고 밀려나고 한나라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국회가 해산될 가능성이 있어서? 우리 민주주의가 유신이나 5공 시절로 되돌아 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실패가 대통령을 끌어내릴 조건은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정치학자가 무슨 증명을 하듯이 명쾌한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나는 최 교수와 같은 "대" 정치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명박 OUT"이 왜 "잘못"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시민도 어떤 정권에 대해서도 OUT을 외칠 수 있다. 그런 운동도 합법적으로 조직할 수 있다. 그 요청이나 운동의 목적이 구현되면 정권이 바뀌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촛불들이 요구하는 것이 대통령을 다시 뽑자는 것인지, 따끔하게 대통령을 꾸짖는 정도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설사 대통령을 다시 뽑자고 주장한들 그것이 무슨 "잘못"인가? 최 교수가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강변하면서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더욱 의아할 뿐이다. 나는 시민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는 전혀 자유민주주의(대의제든 직접이든)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 정당정치의 발전? 최 교수는 우리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라는 질문을 자동적으로 던질 수 밖에 없다. "정권 퇴진"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 정당정치가 더 발전하는 것일까? 가능성은 없지만 시나리오를 하나 상상해보자. 평화적 촛불 시위의 거센 요청에 의해서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재신임되지 않아서 새 대통령을 뽑는다면 이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정치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금의 촛불 시위가 정당정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촛불 때문에 여의도 국회 의사당이 불타는 정도는 아닌 것이다. 만약 촛불과 정당정치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정치인들이 시민 사회의 입력을 더 잘 받들어야 되겠다고 깨닫는 긍정적인 효과도 포함될 것이다. 촛불 시위 이후 한나라당이 보여준 쇠고기 수입 쟁점에 대한 태도 변화를 참조하면, 그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도움을 줬다고 볼 수도 있다. "정권 퇴진" 구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발전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4. 정치적 표현으로서 촛불 촛불에 대해서 그것이 횃불이 될 지, 성냥불이 될 지, 그냥 사그러들 지 노심초사하는 유력 인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오버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 과도한 주장은 침묵보다 못 할 수 있다. 뭐,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 정치적 주장을 할 수도 있는데, 그들이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의 "과분한 위치(한 마디만 하면 주요 언론에서 대문짝만 하게 취급함)"와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자중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정 자유민주주의의 합의된 틀 안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촛불들이 정권 퇴진을 외치는 것도 민주주의의 한 발현으로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반드시 대의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특정 시민들의 정치적 선호에 관한 문제이고, 그런 주장이 사회 전체의 결정으로 채택된다는 보장도 없다. 결론적으로 최 교수가 마지막 강의에서 주장했다는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 발전의 촛불 시위 관련 부분은 적확한 분석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최 교수가 촛불과 대의제/정당정치를 이분법적으로 너무 단순하게 분석했기 때문에 생긴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최 교수 주장의 핵심이 우리 민주주의가 더 발전하려면 대의제/정당정치가 더 성숙해야 된다는 일반론이었다면 그것은 1+1=2라는 설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