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Gambler) 날 짜 (Date): 1994년06월20일(월) 02시30분19초 KDT 제 목(Title):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2) 그리하여 청와대를 까부수러 왔다던 김신조 일행 30여명의 공비가 서울 시내와 산속 곳곳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몇명은 가정집 지붕을 뚫고 들어가 대치하다 그집 일가족과 함께 폭사, 몇명은 시내버스에 폭탄을 던지거나 총격을 가함.. ) 저항하다 결국 김신조만이 유일하게 살아 투항하게 된다. 그 전후에도 많은 도발이 있었다. 그런데 박정권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났다. 위장간첩이라고 해서 사형에 처해졌던 모 간첩이 알고보니 제대로 귀순한 경우였으나 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목적으로 그리고 다른 정치적인 소요에 찬물을 끼얹고자 위장간첩 으로 위장되어진 사건.. 한국에 유학온 재일교포 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좋은 청춘 다 지나가도록 되거나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으며, 많은 대학생들이 유신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감옥살이 하게 된다. 군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 간첩이 후방에서 잡혔다. 그 간첩이 철조망을 뚫고 넘어온 루트가 알려졌는데 그 당시 경계근무를 섰던 모 군인은 이미 제대하여 사회인이 되고난 직후였다. 그러나 그 사람및 당시 같은 소속 분대원들을 다 같이 사형에 처했던 것이다. 당시 박찬종 의원(공화당) 만이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후 다른 추잡한 사건들이 많았으나 다들 웬만큼 알고 계시리라 믿고.....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후의 분위기는 사실 살벌했었다. 부마사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대학생들은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었다. 막상 그 일이 터지자 환영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그랬는데 진정으로 슬퍼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국장때 길거리에 앉아 엉엉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참 임금이나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외신기자들은 독재자가 죽었는데 진정으로 슬퍼하는 한국민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글쎄 내가 보기엔 박대통령이 입힌 피해는 피부에 와닿지 않고 육영수 여사의 여러가지 선행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상 살펴본 바로는 박정희라는 인물은 누구에게는 긍정적으로 또 누구에게는(대부분) 부정적으로 각인되어있다. 확실한 것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면 이를 갈며 미워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덕에 가난을 면해본 사람이라면 존경을 할 것 같기도 하고.. 어쨌던 지도력을 갖고 있는 무서운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물러날 때를 놓침으로해서 결국 부하손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군 장교출신이라는 것이 걸렸는지 독립군 장교출신의 장준하(?) (대학생및 지식층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던) 를 내내 탄압하게 되었고... 요새 유신잔당이 아니라 유신 본당이라고 그리고 박정희 교를 신봉한다는 JP가 아직도 세력을 떨치고 있고 아직 JP의 대운이 끝나지 않았다고 점치는 어느 유명한 점장이의 말이 내내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