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11월08일(토) 03시41분36초 ROK 제 목(Title): DJP에 의한 정권교체 김대중지지... 87년도에 김대중이가 김영삼에게 진 빚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오로지 김대중지지로 계속 한길로 걸어 온 것은 김대중이가 김영삼이보다 더 나은 인물일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겠지. 사실이 그렇다. 건국이후 보수일색의 정치판에서 김대중은 가장 자기색깔이 뚜렷한 정치인이었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계층을 위한 차별화된 정책에 바탕을 둔 그의 존재는 한국정치에서 당연히 빛을 발했다. 김대중이가 죄도 많도 짓고 욕도 엄청 얻어먹었지만, 그래도 그가 가장 뛰어났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군사독재와의 타협없는 대결이라는 원칙만은 끝내 지켰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은 결코 타협할 수 없었다. 마침내 변절을 하고만 김영삼과의 92년 대결은 말그대로 善과 惡의 대결이었다. 김대중은 극에 올랐던 지역감정조장과 용공조작에도 불구하고 원칙대로 재야를 포용하는 선명야당으로 대선에 임해서 결국 패배하고 만다. 김원기를 대표로 재야세력인 전민련과의 정책연합을 해서 결국 김영삼으로부터 "전민련은 김일성을 추종하는 집단"이라는 발언까지 나와서 김대중이가 피를 봤다. 92년에는 지는걸 뻔히 알면서 김대중을 찍어댄 친구들 많이 있었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고 말이지. 이념과 정체성의 내용이 뭐든간에, 원칙을 지키고 일관성을 잃지 않았던 김대중. 김대중지지의 장미빛 꿈... 김대중이가 김종필이와, 그것도 내각책임제를 내걸고 야합함으로써 죄다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한여름밤의 개꿈이 되어버린 셈이다. 여야가 번갈아 정권을 잡는게 민주주의라는 걸 철썩같이 믿기에 그래도 김대중에게 꾸준히 배팅했던 그 엄청난 판돈을 DJP연합으로 한번에 싹슬이 당해 버린 것이다. DJP연합으로의 정권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건 역사의 후퇴로 기록될 것이다. 김대중을 싫어했던 사람들은 분노할 까닭도 이유도 없다. DJ에게 한번도 배팅을 해보지 않았기에, DJ가 무엇을 음모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 덤덤하기만 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김대중의 DJP연합을 야합이라고 주장하려는 사람은, 3당합당당시 구국의 결단이라고 한 것을 먼저 사죄하여야 하고 그후에야 김대중씨의 DJP연합을 야합이라고 비판해야 한다..."고. 정말 그럴 듯한 말이다. 그러나 그말은 결국 DJ나 YS나 똑같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3당합당이 야합이라면 DJP연합도 야합이요, DJP연합이 어떤 결단이라면 3당합당도 결단이다. 결국 차별성 없는 것으로 드러난 양김씨를 두고서 "둘다 똑같으니 후보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87년 당시의 후보단일화론자(대개 YS지지자)와 "둘은 분명 다르며,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DJ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시의 비판적 지지론자 간의 10년간의 싸움은 마침내 후보단일화론자가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왜? 그들은 결국 같은 성격의 길을 갔으니깐... DJP연합을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미화하려 애쓰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DJP연합은 그 몰계급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진보와도 상관없고 대다수 국민의 뜻과도 상관없기에 민주와도 무관하다. DJ는 오로지 자신의 집권만을 위해 그토록 많은 말바꿈과 많은 변신을 행해 왔던 셈이다. 왜 그는 87년에는 양보를 하지 않고, 오늘에 와서는 그리도 쉽게 양보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왜 그는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그리도 어렵게 돌아서 갔던가? 왜 그는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말았던가? 그는 결국 그의 반대자들에게는 경멸을 받고, 그에게 순결한 믿음을 가졌던 이들에게는 지우지 못할 상처만 남겨주고 말았다. 그래도 변함없는 김대중의 지지자들은 마지막 남은 충성심으로 2번에다 붓두껍을 눌러댈 것이 틀림없으니... DJP에게 투표하는 마지막 의미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