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10월31일(금) 22시03분48초 ROK 제 목(Title): [여론조사] 이인제 31%로 DJP 바짝 추격 [서울신문] 金大中국민회의총재와 金鍾泌자민련총재의 이른바 DJP연합은 그동안의 대 선구도가 5자 대결에서 4자 대결구도로 옮아갔음을 의미한다. 서울신문은 DJP연합 협상 타결후 처음으로 4자 대결구도를 상정, 지지율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DJP연합후보인 金大中후보가 39.2%로 여전히 1 위를 고수했다.金후보는 지난 10월 중순 5자대결 구도시 35%대를 오르내리던 지지도에 비하면 4%포인트 안팎으로 상승했다. 2위는 역시 국민신당(가칭)의 李仁濟후보로 31.5%를 기록했다.그동안 27∼ 28%대의 지지율을 보였던 李후보는 DJP연합후 4자대결 구도에서 최초로 30% 대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3∼4%포인트의 상승세를 나타냈다. 신한국당 李會昌후보는 17.2%로 3위를 기록했으며 지지율은 지난 10월중 기록한 지지율에서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4위인 민주당의 趙淳후보는 6.7%로 미미한 상승세에 그쳤다. 따라서 DJP연합으로 인한 지지율의 변화는 金大中총재와 李仁濟후보가 각 각 비슷한 소폭의 상승세를 보인 반면 李會昌후보와 趙淳후보는 보합세를 유 지했다.그동안 5자대결 구도상황에서의 지지율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다. 후보별 지지성향을 성별 연령별 직업별로 보면 여성가운데 金大中후보의 지지응답자가 41.9%로 다른 후보보다 가장 앞선 반면 李仁濟후보가 가장 많 은 남성응답자들(36.4%)의 지지를 받았다.연령별 지지율은 20∼50대이상까지 전 연령층에서 金大中후보가 1위를 기록했고, 李會昌후보가 50대 이상에서 2 위, 李仁濟후보는 20대에서 38%를 나타내 金大中후보와 동률 1위를 기록했고 30∼40대에선 2위를 차지했다. 직업별로는 金大中후보가 농.임.어업과 자영업자,주부층에서 지지율 1위를 나타냈고 李仁濟후보가 유일하게 블루컬러인 노동자층에서 1위를 차지했다. 李會昌후보는 모든 계층의 직업별 지지에서 3위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대권레이스는 크게 3자구도 → 4자구도 → 5자구도에서 DJP연합 으로 다시 4자 대결구도로 변했다.李會昌-金大中-金鍾泌 3자구도때였던 지난 7월 21일 李會昌대표가 신한국당후보로 선출된 직후 각종 여론조사 결과, 지 지도는 40%대로 2위였던 金大中총재보다 10∼14%포인트나 앞섰다. 그러나 아들의 병역문제가 제기(7월 22일)된 이후인 7월말부터 1.2위간의 역전현상이 나타났고 李仁濟후보가 신한국당을 탈당(9월13일),출마를 선언한 시점을 전후해서는 2위자리마저 李仁濟후보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후 민주당 趙淳총재가 가세한 5자대결구도때부터 1위 金大中,2위 李仁濟 ,3위 李會昌,4위 趙淳,5위 金鍾泌후보의 순은 10월하순까지 계속되었다. 또 지난 27일 DJP연합이 사실상 타결돼 4자구도로 변한 시점에서도 金大中후보 와 李仁濟후보의 소폭상승, 李會昌후보와 趙淳후보의 보합세 정도의 변화 이 외에는 후보의 지지율 순위는 5자대결때와 변동이 없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 과 나타났다. 그동안의 후보별 지지추이를 보면 李會昌후보는 9월 30일 신한국당총재로 취임한 직후 약간의 상승세를 나타내는 듯 했으나 결국 전체적인 흐름을 바 꾸는데는 못미쳤다. 10월 7일 신한국당에 의한 金大中총재 비자금 폭로도 후 보들의 순위를 바꾸지는 못했다. 金大中후보는 비자금 폭로 직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2∼3% 정도 지지율이 하락했으나 10월 21일 검찰의 비자금수사 유보 발표 시점을 계기로 다시 지 지율을 회복했고 이제 DJP연합으로 다시 2∼3%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발행일 : 97년 10월 31일 |